워라밸과 워라하모니

by Joongi Kim

올해 7월 1일부로 주 52시간 근로제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도 확대 적용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회사를 비롯하여 많은 회사들이 그 적용대상이 되었다. 주 52시간제는 표준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포함하여 초과근무 시간까지 합쳤을 때 주당 52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는 법률이다. 기존에는 표준근무와 초과근무를 합쳐 68시간까지 인정했으니 이제는 초과근무하더라도 52시간은 넘지 말라는 것이다.1

장시간 노동에 의한 폐해야 그동안 수없이 논의되어 왔던 것이고, 그것이 가져오는 사회적 문제가 많다는 점과 이제는 개선할 때가 되었다는 대전제에는 아마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내 주변 SNS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어서 몇 가지 논란 포인트를 한번 모아보았다.

  • 52시간제 법률에 대해서
    • 관찰 사항
      • 자발적으로 회사에 알리지 않고 사업장 외부에서 추가 업무를 한 경우라도 근로감독에서 업무 소프트웨어 사용 기록 등으로 적발 시 법적 처벌 대상이 됨
      • 실질적으로 근로감독만 잘 넘기면 되는 문제일 수도 있으나, 경영진 입장에서 편법을 쓰지 않고 양심적·합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근태관리를 빡세게 할 수밖에 없음
      • 이를 먼저 도입한 곳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에 근로시간이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원들을 강제로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실제 발생하고 있음
    • 주장1반: 회사를 자아실현의 장으로 활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초과근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 이걸 굳이 법률로써 제한해야 하는가? 이런 근무 형태를 인정하지 않고 시대를 후퇴하는 발상이다. 또한 이를 편법으로 회피할 수 있다 해서 그걸 권장한다면, 실질적으로 이는 범법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 주장1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나마 이런 강제사항이 있기 때문에 워라밸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 몇몇 스타트업을 위해서 자꾸 예외를 허용하면 다른 다수가 피해를 보게 된다.
    • 생각해볼 포인트 (시스템)
      • 형사 처벌 vs. 행정 처벌
      • 일단 baseline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이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재심의나 쟁의를 할 수 있는 구조의 필요성과 현실성
      • 부작용 사례를 막는 방법론 : 아예 못하게 막기 vs. 사후 모니터링 및 징벌적 처벌
      • 자발적으로 포장한 비자발적 연장근로를 막기 위한 방법의 필요성 (기본급 인상 등)
      • 적발 또는 고발 시 입증 책임의 주체
  • 회사일과 자아실현의 일치 여부
    • 주장2반: 개발, 연구, 공부, 취미, 놀이가 구분되지 않는데 어떻게 어떤 활동을 딱 잘라서 노동이라고 하고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주장2찬: 어떻게 회사일이 자아실현과 일치할 수 있지?!?! (또는, 어떻게 업무가 자발적일 수 있지?) 그냥 자아실현은 집에 가서 알아서 하라고 하고 신경 끄세요.
    • 주장3찬: 52시간을 지키면서 성장과 자아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직원의 성장을 최대한 도와주는 것은 경영진의 의무. 주어진 조건이 조금 더 제약이 강해졌다고 해서 불만을 내보일 게 아니라 거기 적응하는 것이 맞다.
    • 생각해볼 포인트 (인식과 정의(definition))
      • 오픈소스 시대의 지식노동의 본질
      •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 vs. 중견·대기업에서 일한다는 것
  • 인간의 물리적 한계
    • 주장4찬: 자발적으로 업무를 하는 경우라도 사람이 본인도 모르게 번아웃이나 우울증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으므로, 이를 회사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건강 문제를 생각했을 때 회사가 강제로라도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
    • 생각해볼 포인트 (생산성)
      • 사람이 하루에 몰입하여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4~5시간이 한계
      • 몰입시간과 업무시간의 괴리 가능성
      • 업무가 과몰입 대상이 될 수 있는가
      • 업무 과몰입 방지를 위한 강제성의 범위 (법률 vs. 프로토콜 vs. 회사 또는 매니저의 판단 vs. 개인의 판단)

대략 위와 같이 정리되는 것 같다. 각각의 생각해볼 포인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생각해볼 포인트 (시스템)

게임 셧다운제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부작용이 있으니 못하게 한다는 식의 해결방법이 많다. 연구비를 집행할 때도 예를 들어 실물도서는 구입이 되는데 전자책은 안 된다거나 하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규정이 있으면 보통 누군가 그 경로로 연구비를 횡령하고 걸린 적이 있어서다.

이렇게 되는 원인이 몇 가지 있다:

  • 일반적으로 오남용으로 인해 잘못되는 경우에 대한 두려움을 설득하는 것이 포용적·허용적 해결책을 설득하기보다 쉽다
  • 법률이나 규정을 만들어 일단 못하게 만들어두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씌우기 쉽다
  • 개별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일단 법을 만들면, 개별 사안의 특징을 떠나 조문의 해석에 따르면 그만이다. 그렇게 되면 개별 사안별로 심도있는 논의를 해보고 특징을 살려서 판단하는 것보다, 법조문을 해석할 판사와 검사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세상 모든 기술과 문화 발전에 따른 이슈를 다 그들에게 맡겨도 될까?

물론 연장근로 문제는 그동안 부작용이 너무나 심했던 사례이기에 그에 대한 상대적 반동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근무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사회적 방향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걸 “어떻게” 강제할 것이냐는 방법론에서는 좀더 숙의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근로시간 초과로 인해 고용노동부가 어떤 사업장을 감독하러 나왔고 실제로 적발이 되었다고 해보자. 이때 처벌은 회사의 경영진이나 대표자를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게 맞는 것일까 아니면 민사(초과근무에 대한 손해배상)나 행정지도로 처벌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실제 근로자가 자발적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어디까지 믿어줘야 할까.

나는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국가는 근로규칙의 "기본값"을 제공하고(별도 합의가 없는 경우 적용되는 fallback 규칙), 각 사업장이 노사 합의에 의해 근로규칙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장별로 특징이 다 다르고, 또 미래에 어떤 새로운 유형의 업무 형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그 시행이 잘 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이 감독관청의 주 업무가 되어야 하고, 이전에 합의된 것이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마다 또는 노동자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를 다시 리뷰 및 수정하도록 하는 절차를 만들어서 변화 및 오용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핵심은 개별성을 인정해주되, 부작용 사례에 대해서는 적극적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업재해에 대한 보장을 좀더 강력하게 한다거나 이런 형태면 좋겠다.

이렇게 할 경우 장점은, 세부적인 규칙을 법률로 정하지 않으므로 판례 등에 의해서 그 법률의 해석이 고정되었을 때 이후 사회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법률을 개정하는 등의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별 사안별로 새로운 판단을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이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감독관청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므로, 그러한 감독 결과에 대한 쟁의 프로세스 등을 포함하여 법률 설계를 정밀하게 잘 해야 할 것이다. 즉, 법률 스스로가 규칙을 정의하려 하지 말고, 최소한의 프로세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플랫폼이 되고, 세부 규칙은 가능하면 민간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다만 민간의 노사 간 합의를 국가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데, 이게 어떻게 결정되느냐가 바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신뢰 자본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약의 중요성을 알고 인정하는 나라라면, 근로계약도 마찬가지로 다룰 수는 없는 것일까.

생각해볼 포인트 (인식과 정의(definition))

내가 아는 대로라면, 보통 법률적 의미로 정의하는 노동은, 고용 계약 관계에서 고용주(사용자)의 지시와 감독 하에서 이뤄지는 피고용인의 업무 활동이다. 이런 관점은 고정된 사업장 안에서 이뤄지는 육체노동이나 제조업에는 잘 어울리지만, 일하는 과정 자체가 물리적 제약이 적고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의 리소스를 동원하는 지식노동에서는 뭔가 애매해지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취미 차원에서 오픈소스 활동을 통해 Python의 성능 개선을 했다고 해보자. 근데 마침 이게 우리 회사 제품에서도 Python을 쓰고 있어서 제품 개발에도 기여를 한 셈이 되었다. 그러면 이것은 노동일까 아닐까? 회사 프로젝트를 오픈소스로 진행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프로젝트에 코드를 기여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돈도 안 주고 공짜 노동을 시킨 것에 해당할까? 회사일을 하다가 사용 중인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버그를 발견했다. 내 코드로 그걸 우회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기왕이면 오픈소스 기여도 해보고 싶어서 주말에 혼자 작업해서 패치를 만들어서 보냈다. 그러면서 회사 코드도 비슷하게 수정하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이 있어 생각난 김에 같이 고쳤다. 그러면 이것도 노동일까? 낮 업무시간에 고민하던 문제가 잘 안 풀려서 퇴근하고 나서 샤워하면서 계속 문제를 고민하고, 관련된 논문을 검색해서 읽어보았다. 그럼 이것도 노동일까?

이런 활동들을 사람에 따라서는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정말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래 업무의 시작은 회사의 지시에 의해서 시작을 하였지만, 하다보니 더 파보고 싶어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혹은 딱 시킨 것만 해야지 하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닌데 어떤 일말의 책임감 때문에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계속 집에 가서 찾아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같은 한 사람조차도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저런 행위의 자발성에 대한 판단이 스스로 바뀔 때도 있다. 이런 '초과' 활동이 자아실현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노동시간이라는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 이 포인트에 있어서는, 52시간이라는 절대적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이것은 아래 포인트에서 다루겠다), 해석 자체가 불분명한 노동시간의 양을 법적 강제사항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고용주가 아무리 법을 지키고 싶어도 노동의 의미 해석에 따라 초과할지 안할지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상자가 되어버리면, 법적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여러 갈등과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용어 정의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지식노동에 대한 노동시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더군다나 그것이 법률로 연결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시간을 굳이 정밀하게 정의해야 할 만큼 법률에서 중요한 요소로 다루지 않는 것(위에서 얘기한 대로 가능하면 세부 규칙은 민간 자율에 맡기고 규칙의 실행 여부를 감시하는 방향)이 한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관련 논의에서 보이는 것은, 스타트업과 같은 조직을 긍정적으로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부작용에 대해서 좀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험과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당연한 것인데, 대체로 부정적 경험이 긍정적 경험보다 전달·이해하기 쉽다보니 긍정적 경험을 전파하고 싶은 사람들은 좀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줘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볼 부분은, 대체로 조직 규모가 작은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일수록 이런 초과 활동들을 초과라 생각하지 않고 자아실현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조직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건 개인의 성격·성향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고, 어떤 성향이 항상 바람직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대체로 경영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초기 멤버들이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가 사람이 많아졌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같은 성향을 요구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채용 과정에서 가능하면 그런 성향(그리고 그에 따른 근로계약)에 동의하는 사람만 뽑아 기업 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채용이 100% 정확도로 그런 필터링이 가능하지도 않고, 회사가 커지면 기존 멤버들 중에서도 다른 성향으로 바뀌거나 회사에 대해 다른 기대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법률 규제를 떠나 조직의 규모와 성장에 따라서도 접근 방법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맞고, 경영진이 이런 부분을 최소한 인지는 하고 있기는 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ㅠ_ㅠ

생각해볼 포인트 (생산성)

사람이 하루에 몰입하여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4~5시간 정도가 한계라고들 한다. 실제로 내 경험으로도 개발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하루에 6시간 넘기는 것도 힘들다. 아무리 운동선수라도 밥먹고 자는 시간, 경기 나가는 시간 빼고 운동만 한다면 아마 나가떨어질 것이다. 근력운동도 쉬는 날이 있어야 근육이 회복 및 성장할 수 있듯이, 지식노동도 마찬가지로 적절한 휴식이 있어야 생산성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2

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정에 차서 일하다보면, 누가 그걸 억지로 시킨 것이든 아니든 그렇다고 생각하든 아니든 상관 없이,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게임처럼 업무도 과몰입을 할 수 있다. (이게 믿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진짜다.) 이것을 회사 차원에서 52시간제처럼 강제로 쉬게 해서라도 관리해줘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데, 나도 회사 입장에서 (특히 조직이 커질수록) 비교적 예측 가능한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정신 건강(소위 '멘탈') 유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만 그걸 '강제'로 해야 한다면 누가 강제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법률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위에서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볼 포인트와 비슷한데, 법률보다는 역시 민간 자율에 맡기는 편이 낫다고 보는 편으로, 대략 이런 유형의 업무는 이런 패턴을 가져가면 좋더라-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결론을 내지 않는 한 적정선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 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연구를 실제 시도한다 하더라도 변인 통제가 효과적으로 가능할지, 새로운 유형의 업무가 등장하면 매번 새로 할 것인지 등등 '완벽'을 기하기가 쉽지 않다) 여태껏 본 사례로는 보통 일정 기간 이상 근속하거나 빡센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리프레시 휴가를 보내주는 제도를 시행하는 경우들을 보았는데, 좋은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걸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생산성이 꼭 일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점에서도 약간의 의문도 있다. 안정적 직장 생활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사과정을 해보면서도 느꼈지만,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성취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극도의 집중을 하는 기간이 필요하 다. (마치 아이를 낳으면 일정 기간 육아에만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있는 것이고.) 재밌는 것은 특히 스타트업이 그러하다는 점이다.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우선 가치로 삼는다면 그것은 스타트업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전투 조직에서는 때로는 생산성을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만 그 희생이 강요에 의한 것인지 자발적인 것인지가 중요할 텐데, 현재의 제도는 그걸 판단하기 어려우니 일단 못하게 한다는 접근 방법이라는 점에서 문제라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스타트업이 성장할수록 지속 가능성의 우선순위를 올려야 하므로 언제까지나 전투조직으로 남아있을 순 없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변화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변화 과정을 과연 법률로 적절하게 담아낼 수 있는가?

스타트업을 차리면 주당 100시간은 일해야지 말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그 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스타트업을 하려면 그 정도의 헌신과 집중을 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라 본다. 100시간 일하지 않고도 잘 할 수 있으면 좋다. 실제로 나도 래블업을 창업하고 나서 100시간을 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이라 이틀만 넘어가도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 게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살면서 그에 준하는 강도로 일해본 것은 박사 디펜스나 논문 데드라인 전 몇 주 정도인 듯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되는 회사임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근데 여기서도 두 번째 포인트에서와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100시간이 '노동시간'을 얘기한 것이라면 애초에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같이 그냥 머릿속에 항상 백그라운드 프로세스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의 정의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는 100시간을 얘기한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을 말했다기보다는 머릿속에 고민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얘기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물론 사무실에 침대 놓고 밤새고 했다는 전설적 이야기들도 들려오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도 몰입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동시에 노동시간의 정의에 따라서 52시간과 마찬가지로 100시간도 혹은 30시간도 얼마든지 들쭉날쭉 넘나들 수 있는 경계선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하고 싶다.

워라밸과 워라하모니

이번 논의를 지켜보면서 워라밸(work-life balance)뿐만 아니라 워라하모니(work-life harmony)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지만, 나로서는 실제로 회사가 자아실현의 장이고, 직원들에게도 그러한 회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회사일이 워라밸을 위해서 삶의 재미와 trade-off하는 대상이 되기보다는, 워라하모니로 삶의 재미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가정과 가족, 건강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들이 있고, 그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믿으며 그렇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단지 직원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내가 부족한 탓이다.

엊그제 뉴스에서 UN 무역개발회의에서 창설 이래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재분류했다고 한다. 이제 빼박(...) 선진국이 된 만큼,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좀더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법률이라는 것은 사회 제도를 구현하는 하나의 장치이며 법률 고유의 어떤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과잉입법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인데, 법률만이 꼭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좀더 다양한 방향의 제도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현행 법률에 덧붙여 (2021.7.4 21:46 추가)

분명히 법률에서 정의하는 의미로의 노동시간이 유의미한 경우, 그리고 그 노동시간을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봤을 때 공동체에 더 이익이라고 판단할 만한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게 대다수의 상황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행 법률 자체가 완전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뭐 맘에 안들어도 법이니 일단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게 내 상황에 좀 안 맞더라도 사회 전체에서 기존의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면 인정할 수는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현행 52시간제를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능한 방법 중의 하나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하나의 해결책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방법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당위성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여러 가능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큰 의미를 둘 이유가 없다. 그저 바뀐 조건에 적응하면 되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앞으로 다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글에서 계속 얘기했던 것은 법률이 과연 그렇게 변화 가능성을 내재한 해결책을 담는 좋은 그릇일까 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사회가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해주면서 오는 부작용을 염려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어떤 미래의 가능성을 좀더 생각하는 방향으로, 앞으로라도 사회적 논의와 숙고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가치를 보호하면서도 노동의 본질과 의미를 계속 쇄신하며—노동시간을 왜 단축해왔는지부터 살펴보고 그것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노동의 의미와 맞물려 어떻게 다르게 정의될 수 있는지까지 바라봐야 한다—점진적으로 if-else 방식보다는 try-catch 방식으로, 규칙보다는 프로세스를 담는 방식으로 법률을 전환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서, 52시간제를 전면적으로 확대했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떤 마일스톤일 뿐.


  1. (7월 5일 새벽 추가) 68시간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왜 갑자기 52시간이 되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68시간일 때는 스타트업 조직의 특징과 자발적 지식노동의 특징을 고려하여 포괄적으로 노동으로 간주하더라도 그 제한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적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이번 법 개정 및 시행 시점 이후로 초과하는 경우를 적극적으로 불법으로 해석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70시간을 일한다고 했을 때 기존에도 불법이었지만 정부가 암묵적 허용을 한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법 내용은 둘째치고) 일단 법이 있는 상황에서 법치주의를 강화하고자 한다는 점만 보면 바람직한 변화다.

  2. (7월 5일 새벽 추가) 이런 의미에서 온전히 일에 몰입한다는 가정을 하면 현실적으로 52시간이 아니라 30시간, 40시간도 빡세다. 52시간이라는 숫자에 집중한다면 그나마 이게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어떤 hard limit을 잡은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내가 이 법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면 52시간보다 더 적은 시간으로 하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민간 자율에 맡긴다고 해서 내가 막 100시간씩 사람 부려먹는 상황을 찬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원치 않는 사람이 hard limit을 넘어 강요당할 가능성을 법률로써 없애주는 것은 대찬성이나, 그와 동시에 자발적 의지에 의한 지식노동의 다양한 형태를 고려했을 때 기준선을 초과하는 경우를 꼭 법률로써 막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모든 조직이 스타트업 같을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노동시간을 제약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노동시간에서 자유로운 스타트업 같은 조직이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모든 회사를 단지 인원 규모에 따라서 동일하게 취급하는 현재 체계에서는 아주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이것이 모순이 아니게끔 하는 방향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이것을 매번 예외조항, 한시규정, 특례규정 같은 방법으로—예를 들어 스타트업 인증을 만들고 그 인증을 받은 회사들만 예외를 허용한다고 해준다거나—해결하려고 한다면 딱 if-else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근본적인 법의 설계 철학과 방법론부터 try-catch가 될 수 있도록 다시 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