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관점에서의 사업과 사기

by Joongi Kim

엄밀한 과학적 관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는 어떤 하나의 오래된 방법론이, 컴퓨팅 성능의 급격한 증가라는 환경과 거기서 파생한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만나, 과거에 사람들이 컴퓨터로 풀어내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특정 종류의 문제들을 보다 빠르고 나은 정확도로 풀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아이디어를 얻어 그 방법론에 대한 다양한 변용과 변주가 나오고 있다. 이게 IT 업계에서 말하는 AI의 실체다.

IT 업계는 기본적으로 기술의 발전 때문에 어떤 원리의 사용처가 넓어지고 그것이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는 분야다. 관점에 따라서는, 10년 전에 유행했던 웹 2.0부터 빅데이터, 그리고 AI와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IT 산업은 온통 "사기"스러운 마케팅 용어로 점철된 분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도전과 실패 속에서 결국 각 흐름을 타고 유의미한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기업들은 반드시 나타난다.

방법론을 만들고 이용하면서 그걸로 논문을 쓰는 학문 분야에서는 반드시 확인된 + 다른 누구나 동일한 방법으로 확인 가능한 사실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다행히 논문은 같은 용어와 도메인 언어를 사용하며 전문 배경지식을 갖춘 독자과 동료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사실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이 장려되며 또한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술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기술의 가치를 설득해야 하는데, 때로는 자신에게 자금을 댈 수 있는 투자자나 돈을 낼 잠재 고객들은 사실로서의 완전한 이해에 필요한 전문 배경지식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알아듣기 쉬운 말을 사용하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적절히 통용되는 비유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다양한 마케팅 용어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AI라는 것도, "지능의 실체와 원리를 밝혀서 그걸 컴퓨터로 구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컴퓨터로 잘 안 풀리리라 생각했던 몇몇 문제들을 잘 푸는 프로그램"이라는 뜻에 가깝다. (중요한 건 "기존에 컴퓨터로 잘 안 풀리리라"라고 생각하는 주체가 과학자들이 아니라 고객이나 투자자들이라는 점이다!1 과학자들은, '충분히 빠른' 컴퓨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라고 30년 전에도 생각했고 지금도 똑같이 생각한다.2) 그러니까 IT 업계에서 사용하는 많은 용어의 사용 목적은, 사실을 이해시키기보다는 기존보다 좋은 거니까 구매 또는 투자해달라는 설득을 하는 것이다. 사용자 관점에서 기존보다 좋기만 하다면(혹은 좋다고 느끼기만 한다면3), 비즈니스가 될 수 있으니까.

웹 2.0이나 빅데이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웹 2.0은, 서버와의 요청·응답을 페이지 전환 없이 백그라운드로 숨기고 당시 점점 표준화가 이뤄지고 있던 CSS와 자바스크립트의 발전으로 "기존의 웹에서 구현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몇몇 상호작용들을 구현한 웹"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웹의 등장"이란 뜻이 아니다. 당시에도 이 용어를 사실을 설명하는 용어로 이해한 사람들은 무지한 마케팅 용어라며 사기치지 말라고 대차게 깠었다. (사실 웹의 업그레이드라면 오히려 2015년에 등장한 HTTP 2.0이야말로 웹 2.0에 더 어울릴 것이다.) 빅데이터는, 클라우드의 등장과 온라인 서비스의 보급으로 점점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의 행동 데이터를 대규모로 쌓고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의 데이터 처리에서 얻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통찰을 얻거나, 적용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분석 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된 데이터 처리 기법"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데이터만 많이 있으면 만능"이란 뜻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사업과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이야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곤 한다. 사실적 전달을 중요시하는 관점에서는 대부분의 사업(특히 스타트업)은 실현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아이템을 팔려고 하는 '사기'고, 비즈니스 기회를 중요시하는 관점에서는 대부분의 사기는 한쪽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사업'(제도가 그걸 불법으로 규정하는지와는 별개로)이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 AI 기반 비즈니스는 사기이기도 하고 사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AI 기술에 대해서 사기 여부를 우려하는 것은, IT 분야가 진지한 현실 삶의 한 요소가 되었고 따라서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적 전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함께 커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금융이나 의료, 자율주행 등과 같은 분야들에서 안전과 책임, 보안과 관련된 이슈들은 꼭 짚고 넘어가야만 진정한 사업이자 혁신이 될 것이다. 현재의 딥러닝에 기반한 AI 기술이 사실은 여러 문제들에서 잘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사람들이 정직하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적용 사례와 응용 방법을 계속 탐색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이 AI라는 기술 트렌드가 언제까지 어떤 모습으로 지속될지는 아직 모른다. 과거처럼 다시 한번 붐이 꺼질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프로그래밍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가 되거나, 이도저도 아니지만 그냥 수요 자체가 계속 늘어나서 기술적 한계에 도달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의미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세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래보다는 현재 있는 것을 파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사업가로서 완성되지 않은 것을 설득해야 할 때가 많이 생긴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같은 용어와 표현이라도 사람마다 참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 싶은데,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스스로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특히 다른 분야와 도메인의 이야기를 끌어와야 할 때는 더더욱. 이렇게나마 가끔씩 한번 돌아봐야지.


  1. 물론 고객이나 투자자를 직접 만나서 직접 물어보면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경험적으로 '컴퓨터가 잘 못하던 게 어느 순간 갑자기 잘 되네?'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걸 느끼고 있지만 당연하게 느끼기 전이 바로 사업 기회다.

  2. 가능성의 범위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지성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 일상인 곳에서는 당연하다. 컴퓨터가 조금 빠르고 느린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물론, 같은 과학자라도 컴퓨터를 일에 활용하는 사람들은 컴퓨터의 성능에 따라 일을 할 수 있고 없고가 결정되므로 좋은 성능의 컴퓨터를 마다하지 않는다.

  3. 이게 참 어려운 부분인데, 사업가의 믿음을 믿고 사는 투자자나 구매자 입장에서 그 믿음이 실현되었을 때는 괜찮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그것이 사기냐 아니냐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믿음이 틀린 경우 그것은 거짓말인가? 거짓말이면 사기일까? 아니면 구매·투자 실패일까? 미래의 실현 약속에 대한 진실과 거짓은 누가 판단하며 항상 객관적으로 구분 가능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