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결국 해를 넘겨서야 회고글을 쓰게 되었다. 작년 회고글을 돌아보니, 기술조직 리더로서의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올해는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backend chapter도 팀 매니징을 맡아주실 분과 technical writer를 모시게 되어 한시름 덜었다. 기존에는 팀 자체의 매니징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고민 때문에 다른 것에 상대적으로 집중이 어려웠다면, 이제는 해외세일즈와 정부과제,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 기술적 이슈를 살펴보거나 앞으로의 개발 방향 설정 등에 심리적으로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CFO님도 모시게 되어 여러가지로 회사가 조금 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올해도 정말 많은 출장을 다녀왔다. CES를 시작으로 GTC를 거쳐 아부다비의 AIM Congress,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GPMF (Global Project Management Forum)으로 상반기를 보냈고, 공식 출장이 아니라 리프레시 휴가를 겸하여 갔던 PyCon US도 중간에 끼어있었다. 하반기에는 K-Global Silicon Valley 행사와 싱가포르에서 열린 BigData + AI World Asia 행사 및 VAST Data World Tour 행사(한달 사이에 싱가포르를 두번이나 갔다...)에 이어 11월에는 KubeCon + CloudNativeCon과 SC (Supercomputing Conference)으로 작년에 갔던 솔트레이크 시티를 또(!) 갔다가 애틀란타까지 찍고 오는 일정이었다. GTC에서는 CUDA tech briefing 등 NVIDIA 본사 개발팀들과 좀더 긴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서 여러 요구사항들을 나눌 수 있었고, 싱가포르 출장과 슈퍼컴퓨팅 컨퍼런스에서는 여러 follow-up 건을 만들게 되어 나름 소기의 영업/협력 성과도 있었다. KubeCon에서는 GPU 기반의 배치·추론 워크로드를 좀더 잘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사례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약간은 내가 이미 Backend.AI 만들면서 했던 고민을 이제서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페이스북 KubeCon 회고글 참조). 개발 속도는 느려도 공통 프레임워크와 공통 표준이 갖는 장점이 있지만, AI 분야 자체가 모두가 차력쇼를 하는 상황인지라 시장에서 제품으로 어필하기에는 아직 한계도 많이 있어보였다(페이스북 SC 회고글 참조).
이런 관계로 올해는 휴가를 조용히 국내에서 보내고 싶었는데, 4월 말에 부모님과 울릉도·독도 여행을 다녀왔고 7월에는 남해섬에 다녀왔다. 국내도 돈을 좀 쓰면 즐기고 쉴 만한 곳이 많다. 독도는 날씨가 조금만 안 좋으면 가기 힘든데, 정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바로 전날 배편 예약까지 바꿔가며 대성공. 남해섬의 독일마을이나, 전라남도 보성군에 있는 흑초 체험장인 초루도 좋았다. 20대 때 스웨덴 교환학생 하고 그러던 시절이야 8명이 한방에서 자는 유스호스텔에서 묵기도 하고 밤새 야간열차 타고 다니기도 하고 그랬지만, 이제는 돈을 좀 쓰더라도 잘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듯. 2월에는 독서모임 친구들과 제주도도 다녀왔는데, 특히 제주도에 일가친척들이 많이 사는 민석님 덕분에 현지인 맛집 투어를 제대로 해서 정말 좋았다.
11월에는 5년 간 있었던 회사 사무실을 보다 큰 대로변 건물로 이사하였다. 뭐랄까, 기존에는 소호 사무실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진짜 '회사' 같은 느낌의 사무실이라고나 할까. 성대한 '래블업글식' (이전 기념식) 행사도 치렀는데, 오신 손님분들 중에 '사무실 안에 화장실이 있으면 성공한 회사라 생각하는데, 성공하셨네요~'라고 한 말씀이 기억난다. 다른 것보다 공간이 하나로 합쳐지고 라운지 공간도 넓어져 원래 정규님이 목표하셨던 '오다가다 자연스럽게 대화 나누기'도 좀더 잘 되고, 공조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보니 환기도 잘 되어 훨씬 쾌적한 느낌이다. 입주한 건물은 포항제철과 함께 성장한 오랜 업력을 가진 조선내화의 본사 사옥이자 현재도 지주사 회장님이 있는 건물이라, 건물 자체도 깔끔하게 짓고 관리가 잘 되는 느낌이라 좋다.
올해는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UI/UX 개선 프로젝트도 할 기회가 있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 된 묘영님의 바이스버사 스튜디오와 함께 서울시 중소기업 산업디자인 개발지원사업을 통해 6개월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제품을 개선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과제 우수상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다양한 상을 수상하게 되어 큰 활력소가 되었다(묘영님 페이스북 참조). 물론 우리가 잘해서 받은 상이라기보다는 바이스버사에서 잘 해주셔서 받은 상들이지만. 이 외에도 KPAS (Korea Promising AI Startup) 수상이라든지, IT기술사업화 페스티벌에서 받은 과기부 장관상이라든지 등등...
그동안 계속 SC 출장과 겹쳐서 못갔던 스팍스 동아리 홈커밍도 올해는 참석할 수 있었고, 또 그 전에도 대전 사이언스페스티벌 해커톤 후원을 하게 되어 오랜만에 대전에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완전 업그레이드된(?) 쪽문과, 학생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 크래프톤에서 아예 건물까지 지어주고 있는 전산과... 내가 있을 땐 동아리 학부생 전체 합쳐서 20명 정도가 활동멤버였는데, 이제는 80명? 쯤 되는 것 같다. 프로젝트별로 인원이 20명쯤 되고, 인원 중복이 있긴 하지만 그런 프로젝트가 한 너댓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서버관리자 그룹인 wheel에서는 아예 단독 AS (autonomouse system) 번호를 받아 100Gbps급 네트워크까지 구축해놨다. 거기에 행사기획팀이 따로 있을 정도니... 뭔가 스케일이 많이 달라졌다. 열심히 하는 후배들을 보니, 대학원 생활을 할 때는 참 힘들었음에도(?) 다시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젊은 날의 치열한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어서일까. 특히 박사과정 때 논문 작업하러 혹은 코딩하러 자주 갔던 어은동의 콘트라커피 사장님도 거의 9년만에 뵙고 인사드릴 수 있었는데, 졸업하고 나서도 이렇게 기억하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며 너무 반가워하셨다. 지금도 부모님댁 커피 원두는 여기서 주문해서 먹는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께서 1979년 1월 입사하신 정림건축에서 2024년 12월까지 거의 47년을 일하고 퇴임하셨다. 신입사원 공채 1기로 들어가 회사 대표를 지낸 후 고문으로도 10년 가까이 더 일하셨는데, 회사에서나 그쪽 업계에서나 전무후무한 케이스이다. 이제 막 창업 10년차에 다다르는 나로서는 잘 상상도 되지 않는 세월이다. 아버지도 오랜 시간 생각을 해오셨겠지만, 나도 일을 놓고 자연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일이 많았고 한층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한 해였지만, 12월의 아닌 밤중에 홍두깨... 으어억.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도 어려운데 여러 사람 추위에 고생하게 만드는... 전에도 언급했던, "constructive confrontation" 같은 걸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필수 교육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연말에 날아든 안타까운 사고 소식은... 위에 쓴 것처럼 나름 비행기 좀 꽤나 타고 다니는 사람인지라, 비행기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여러 방면으로 개선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25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일단은 모두가 안전했으면 좋겠고, 모두가 조금 더 평온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