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의자를 질렀다. 컴퓨터 작업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허먼밀러에서 만든 코즘(Cosm) 모델.
원래는 네이버 의자라고도 불리는(...) 에어론을 살까 했었는데 알아보니 에어론 말고도 다른 모델들이 더 있었다. 사무용으로 나온 것으로는 미라2와 엠바디, 세투 등등. 그리고 허먼밀러 말고도 스틸케이스니 휴먼스케일이니 해서 이런 고급 사무용 의자들을 만드는 브랜드들이 더 있더라. (국산으로는 시디즈가 사실상 독보적이고 T80 모델이 가장 상위급이라고 함)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그렇다고 저 많은 모델들의 의자들을 다 일일이 전시장이나 딜러 매장들을 찾아다니면서 앉아보고 비교하기에는 시간적 비용이 너무 클 것 같았다. 다행히(?) 허먼밀러의 국내 딜러사 중 하나인 인노바드의 체험존이 알고보니 구글캠퍼스가 있는 오토웨이타워 바로 옆이라는 걸 알게 돼서, 주말을 이용해 방문해보았고, 에어론과 코즘 중에서 코즘으로 구매하였다. 애초부터 이런 비싼 브랜드를 선택한 것은, 기존에 에어론을 써본 경험이 있기도 했고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사서 써보고 바꿔보고 하느니 한방에 끝판왕으로 가서 시간을 아끼자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의자는 퍼시스 브랜드를 달고 나왔지만 실제론 시디즈에서 만든 T50에서 몇가지 옵션을 뺀 기본 모델이다. 대학원 땐가 기숙사에 기본으로 제공되었던 듀오백 의자가 너무 상태가 안 좋아서 사제(...)로 하나 들여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기숙사에서부터 썼으면 10년, 오피스텔로 독립했을 때부터 썼으면 7년 이상 된 물건이다. 아무튼, 그 의자를 써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장기간 재택근무를 해오던 참에, 높낮이 조절 범위가 작아서 그런지(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오래 써서 가스실린더의 압력이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음) 주말 마라톤 코딩을 한번 하고 나니 어깨가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던 중 포워드틸트 기능을 이용하면 부족한 높이를 보완해서 어깨가 훨씬 덜 아프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으나, 좌판만 움직이는 방식의 포워드틸트라서 허리를 받쳐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스탠딩 데스크를 하루 종일 쓰는 것 같은 결과가 되어 상당한 피로감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내 선택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매장에서 앉아본 의자들 중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에어론, 코즘, 미라2뿐이었다. 에어론은 뭐 듣던대로 훌륭하나 딱 하나 단점이 뒤로 기대기가 어렵다는 점과 써드파티에서 나오는 헤드레스트가 영 맘에 안 든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 헤드레스트가 정품도 아니면서 무려 25만원..-_-) 미라2는 상당히 편안했으나, 등판이 너무 평평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받쳐주는 느낌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사실 그런 느낌이 들게 만든 게 정말 고급기술일 수도 있겠다.) 코즘은 뒤로 기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맘에 들었고 동시에 허리를 받쳐주는 부분이나 기대는 자세를 두어가지 바꿔가면서 쓸 수 있는 느낌이었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은 틸트고정 등 각종 조절기능이 하나도 없고 딱 높이조절만 된다는 것인데, 포워드틸트 같은 자세로 앉으면 그런 느낌이 들고, 정자세로 앉으면 그런 느낌이 들고, 뒤로 기대면 나름 기대는 느낌도 나고 이런 것이 광고대로 '자동 셀프 조절' 기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여튼 그래서 과감하게 질렀고 토요일에 매장에서 구매계약을 하고 그 다음 목요일 오전에 기사님이 배송해주셨다. 원래는 전문 기사님이 의자 작동법도 알려주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이 의자는 딱 높이조절 기능밖에 없어서 그런지 포장 뜯어주고 '다 아시죠?' 이러고 정품스티커 붙여주시고는 휙. ㅋㅋ
며칠 앉아보니 약간의 적응이 필요한 의자다. 이게 짱짱한 메쉬로 허리와 엉덩이를 받쳐주는 것이다보니 몸에 힘을 적절히 빼고 의자에 몸을 맡긴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메쉬의 짱짱함에 대응하는 반작용 힘을 나도 모르게 가하면서 몸이 긴장하는데, 에어론은 틸트 조정을 통해 의자를 몸에 맞추면서 그 부분이 편해지는 느낌이고, 코즘은 몸을 의자에 맡기면서 그 부분이 편해지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틀 정도 지나니 몸이 적응을 하면서 불필요하게 힘을 주는 부분이 사라지자 훨씬 편해졌다. 처음에는 엉덩이를 너무 뒤로 붙이려고 하니까 허리를 받쳐주는 부분의 압박감이 불편했는데 엉덩이를 적당히 편하게 앞으로 가져오자 적정한 수준이 되었다.
'몸에 나쁜 의자는 있어도 몸에 좋은 의자는 없다'며 애초에 장시간 같은 자세로 있는 것 자체가 몸에 안 좋기 때문에 굳이 비싼 의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도 그 이야기에 동의하며, 기본적으로 코어운동을 통해 허리근육을 강화하고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가끔씩 초집중 모드로 5시간 이상 연속 코딩 작업을 할 때가 있는데(항상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몸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괜찮지 않을까. 오래오래(무려 12년...) A/S가 된다고 하니 잘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