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회사에서 수행 중인 모 과제의 한달치 카드값 정산 때문에 하루를 넘게 날려먹은 게 너무 빡쳐서 분노했는데, 이게 분노만 할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 생각난 바가 있어 글로 정리해본다.
빡침의 주된 이유는 사실 사업비관리시스템 서버가 20일을 맞이하여(...) 많은 과제담당자들이 모두 결의집행정보와 정산증빙자료를 등록한답시고 과부하가 걸린 것과 그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고 30분에 한번씩 서버가 죽어나가고 느려진 서버와 통신하느라 ActiveX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이 자꾸 브라우저와 운영체제를 죽여서(...) 그런 것이긴 하다. 하지만 단지 서버의 구현 문제 말고도 좀더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싶은 것이다. 특히 수행기관이 왜 과제의 정산시스템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지—이걸 위해 하루나 시간을 내서 과제수행설명회(...)에도 다녀와야하고 백페이지가 넘는 매뉴얼을 받아들고 와서도 그 매뉴얼에 써있지 않은 경우는 꼭 매번 과제담당자와 담당회계사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야 함—모르겠다.
예전에 김국현님이 if-else 사회에서 try-catch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하셨고, 요즘은 약간 표현이 바뀌어서 신뢰자본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기차표를 들어갈 때 검사하지 않고 열차의 예약되지 않은 좌석에 사람이 있는 경우만 검표를 진행하도록 바뀐 것은 IT 기술을 활용해 이용자의 불편함과 관리비용을 동시에 줄인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연구비 정산 방식을 변경하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현재 방식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려면 가장 먼저 사업관리기관이 좀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관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은 예외사항이나 처음 보는 경우만 관여하고 한번 기록이 남으면 나머지는 기계가 하도록 만드는 게 맞다. 이렇게 해서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그 경험이 이어질 수 있도록 완전히 시스템화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바꾸고 나서 처음 1~2년 동안은 지출항목에 대한 DB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예외사항이 발생하겠지만, 내 예상으로는 3년 이상 흐르고 DB화·자동화만 어느 정도 된다면 수행기관과 사업관리기관 양측 모두 지금보다 잡일이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다. 중요한 건 여기서 기계가 100% 모든 경우를 처리하도록 완벽해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95% 정도만 기계가 해줘도 사업관리기관은 새로운 지출 항목에 대해서 보다 정밀하게 판단하고 규정을 보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수행기관도 잡일에 대한 부담을 훨씬 덜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처음에는 손이 많이 가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손이 덜 가는 것이야말로 좋은 시스템 아닐까? 물론 규정과 제도가 계속 조금씩 바뀌고 새로운 지출 항목이 항상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전혀 필요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정부 부처별로 사업비관리시스템에 쌓여있는 정산·증빙 데이터베이스만 해도 엄청날 것인데, 머신러닝 같은 것까지 안 가더라도 이걸 적당히 구조화, 분석, 패턴매칭 및 검색 정도만 가능하게 해놔도 일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행정업무를 하다보면 매번 새로 배우고 매번 삽질을 반복하는데, 바로 그 "반복"을 없애는 것이 IT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거다.: 이런 의견을 누구한테 얘기해야 할까? 아마도 사업관리기관에 바로 이야기하면 내 가정이 아무리 맞더라도 처음 몇년간은 자기네 업무가 늘어날 테니 싫어할 가능성이 높고, 어딘가 상위 주체를 찔러야 할 텐데... 사실 이런 생각을 한 게 내가 처음도 아닐 것 같은데,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뭘 해야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