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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돌아보기

by Joongi Kim

지난 4월 이후 반년 넘게 쉬고 나서 쓰는 블로그 글이다. 아무리 글을 안 쓰더라도 한 해 마무리는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스스로의 정리 차원에서 글을 써본다.

Lablup

완전한 full-time으로 1년 동안 일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불과 1년 반 전까지 대전에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봄에 Seed라기에는 좀 많고 본격 Series A라기에는 조금 작을 수도 있는 액수의 투자 유치를 진행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연히, 이것 덕분에 계속 Lablup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여러 회사들과 벤처캐피탈의 투자심사역 분들 및 그분들이 연결해준 다른 회사들의 기술 임원분들을 만나면서 정규님과 함께 스스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역시나 평소에 성실하게 살아야 하고, 우연하게 만나는 사람들을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니 항상 진실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물리적으로 개별 미팅에 쓴 시간만 합치면 별로 안 되는 것 같은데, 돌아보면 거의 2달 정도는 아무 일도 못할 만큼 투자유치라는 건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여러 사람들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고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했던 정규님에게는 더욱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IR pitch라는 것도 다녀보고 법무법인 가서 변호사와 함께 계약서 자문 내용 보고받고 밤새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계약서에 도장 날인하기까지 모든 것이 처음 해보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함께 했기에 큰 무리없이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주변에서 무슨 용기로 스타트업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에 대한 대답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만약 이런 일들을 모두 혼자 회사를 차려서 해야 했다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니까.

그 외에도 구글의 도움으로 Sorna라는 제품 이름(코드네임을 그대로 쓴 것)을 Backend.AI라는 좀더 직관적인 이름으로 바꾸게 된 것과 aiodocker에 직접 커미터가 되고 aiotools라는 작은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PyCon에 발표한 것, Backend.AI 런칭에 즈음해서 SOSCON(삼성 오픈소스 컨퍼런스)에서 성황리에 발표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목표로 삼았던, 내가 관리해주지 않아도 Backend.AI가 오류 없이 잘 돌아간다는 기술적 목표 달성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연말을 “매뉴얼 작성 주간”으로 삼아 설치 가이드개발 매뉴얼을 열심히 작성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몇가지 기술적 이슈들을 더 추가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1년 정도 발을 담가보니, 2017년까지는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공부하고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보고자 하는 수요가 중심이었다면 201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렇게 만든 모델들을 어떻게 API화하고 서비스할 것인가—모바일 앱에서 직접 추론 연산을 하는 것도 포함해서—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기초체력을 갈고닦았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과 서비스에 더 집중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것에 주력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18년에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부분은, 오픈소스 분야뿐만 아니라 학술 분야에서 머신러닝 분야의 시스템 관련 워크샵이나 학회들에 Backend.AI를 소개하거나 발표하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NIPS 2017 MLSys 워크샵에 발표한 NSML이 국내 SW기업에서 그러한 발표를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논문의 내용 면에서 좀더 재미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도 지도교수님 닮아서 기대치가 높은 것 같다...) 어떤 이야기 줄거리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좀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운동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StrongFirst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확실히 등이 펴지면서 자세도 좋아지고 힘 쓰는 방법도 좀더 알게 되면서 소소하지만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걷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할 때 이제는 발·다리·허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가지고 정확하게 힘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운동 프로그램 측면에서도 단순히 스윙뿐만 아니라 스내치나 런지 등 보다 다양한 동작들을 배웠고, 드디어 제대로 된 자세로 스쿼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턱걸이는 안 된다. ㅠㅠ (아마도 힘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요령 문제일 것 같긴 하다.)

아무리 할일이 많아도 불가피하게 저녁 미팅·행사가 잡히거나 출장가는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일단 운동부터 하고 보는데 이건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내년에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것만큼은 계속 진행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에서 모두가 함성을 외쳤던 그때가 작년 말이었다. 국회가 탄핵소추까지 하는 걸 보고 해를 넘겼는데 결국 탄핵심판을 통해 박근혜가 물러나고 5월 대선을 통해 문재인이 새 대통령이 되었다. 부모님 세대는 민주화 과정을 모두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런 정도의 정치적 이벤트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분명한 건 평생에 걸쳐 어떤 하나의 중요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시작한 정권이기에 할일도 많고 또 그때문에 동시에 한계를 가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지만, 해결방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다. 나는 누가 대통령을 하건 좀더 사회가 지켜야 할 절차를 정확히 지키고, 불필요한 절차나 불합리한 제도는 개선하고, 기업과 공공 영역에서 모두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고신뢰 사회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정책을 수행해주길 바랄 뿐이다. 신뢰가 낮기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큰데—예를 들면 어르신분들이 의사한테 진찰받고 나면 돈 벌려고 불필요한 약을 더 처방해준다고 의심하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뭔가 국가에서 큰 사업을 벌이면 반드시 누군가 눈먼돈 떼어먹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이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높은 교육수준의 인재들이 점점 해외로만 눈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워라벨 (work-life balance)

어디선가 ‘워라벨’이라는 용어를 쓰는 걸 보고 뭔가 했는데 알고보니 이 약자였다. SPARCS 동아리 14년 선배인 장병규님이 얼마 전에 쓰신 “장병규의 스타트업 한국”이란 책1을 보면 경험적으로 봤을 때 보통 창업자는 초기 2~3년 정도는 주 100시간은 일해야 한다고 나온다. 우리 회사는 일단 주축멤버가 모두 30대인데다 다들 박사까지 한 사람들이라 일의 양보다는 일의 질을 추구하기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가족보다는 일에 더 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럭무럭 커가는 조카 셋을 보면서, 또 작년에 외할아버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고 이번주 이모할머니의 상을 보면서,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긴 선후배·동기들을 보면서, 사는 게 무엇인가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회사가 잘 되어서 수십억 수백억을 번다한들 내가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회사가 잘 되게 함으로써 회사의 구성원들이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하는 간접적인 사회적 기여를 할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을수록 가족이든 친구든 어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된다. 일을 하다보니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무언가 하는 걸 좀더 의도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정말 빠르게 시간이 흘러버리는 것 같다. 내년에는 좀더 신경써야지.

마무리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요즘 더 감수성이 커지는 것 같다.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 괜히 눈물이 더 찔끔하는 것 같고. 아마도 내가 좀더 다양한 인생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심정을 더 잘 투영할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2017년 한해 큰 사고 없이 무사하게 지낸 것에 감사하고 내년에도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회사 동료, 주변 지인들을 비롯해서 모두가 감사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뉴스에서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들을 조금 덜 볼 수 있기를.


  1. 주변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에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하는 분들에게는 강력히 추천한다. 직접 공동창업을 해본 유경험자로서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은 거의 정확하다고 할 수 있고, 그걸 읽기 쉽게 잘 설명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