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현대 신경과학은 동키콩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접했다. 작년에 나온 동명의 논문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 글이었다.1 링크된 글이 워낙 읽기 좋게 정리를 잘 해놔서, 간단하게 요약만 하자면 이런 줄거리다.:
Atari 게임들을 돌려주던 80년대 마이크로프로세서 MOS 6502의 설계도를 구할 수 없었던 컴덕 3명이 모여 5년간 장잉력으로 해당 칩을 통째 역공학해서 설계도를 복원해냈다. 이들은 자바스크립트로 시뮬레이션(동작을 흉내내는 에뮬레이션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리적 칩의 동작이 그대로 재현되는 시뮬레이션이다!)을 만들어 공개하고, 다른 사람들이 FPGA로 구워서 실제 Atari 게임들이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디지털 고고학” 프로젝트를 지켜보던 어느 전산신경과학자 2명이 신경과학에서 뇌를 분석하는 데 사용되는 각종 분석기법들을 그대로 적용하면 과연 칩의 작동원리를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시도해봤는데, 결과는 epic fail 이었다는 것.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어쩌면 과학의 환원주의에 대한 경고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대상물을 점점 잘게 잘게 쪼개서 분자 단위로 내려가서 그 분자들에 대한 막대한 데이터를 축적한다고 해도, 실제 그 분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원래의 대상물(예: 인간의 뇌)이 보여주는 총체적 현상(예: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마치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 CPU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의 전압값을 모두 실시간 측정할 수 있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을 어떻게 작성할 수 있는가—어셈블리 수준도 쉽지 않을 텐데 하물며 컴파일러나 고차원 언어까지 역으로 유추해낼 수 있을까?—를 알아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현재 우리가 뇌의 활동을 관찰하는 데 사용하는 측정방법들은 실제 뉴런의 활동을 직접 측정하지 못하고 간접적인 혈류량 같은 것만 측정하고 있을 뿐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뚜따’할 수는 없으니.2) 어쩌면, 우리가 정말 엄청난 연산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개발해서 뇌를 뉴런 단위로 시뮬레이션해본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과 의식에 대한 비밀이 풀리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논문이 기능적 메타포는 유사하더라도 복잡도나 구성 방식이 완전히 다른 CPU와 뇌에 동일한 방법론을 적용했다는 점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지만, 사고실험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 방법론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셀프’ 공격해봄으로써 더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생물학적 뇌와 의식·정신·심리를 연관짓는 후속 연구들이 argument에 넣어야 할 이야깃거리를 하나 더 추가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전산분야의 시스템 설계 논문만 보다가 간만에 이런 논문을 보니 재밌다.
해당 논문은 2004년 발표된 “생물학자는 라디오를 고칠 수 있는가?”라는 다른 논문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줄기세포로부터 일정 크기 이하의 신경세포 덩어리를 분화시켜 소규모로 분석하는 방법들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초기 연구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고차원적인 인간의 정신을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