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내게 있어, 또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있어 여러 모로 기억될 한 해였다. 예전에는 한해 회고를 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다뤘지만 올해는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그야말로 역사책을 실시간으로 쓰고 있는 수준이라 굳이 따로 적지는 않으려고 한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이전의 박사과정 회고 글에서도 적었지만, 어떤 한 분야의 정점을 찍는 사람들을 곁에서 보고 배우고 함께 고민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었다. 동시에 다른 분야의 정점을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지게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부작용(?)으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손쉽게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인간사회와 삶의 문제보다 훨씬 단순한 공학적 문제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답'을 내놓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데, 사람들이 관심갖고 이야기하는 여러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알길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스스로 회의가 든달까. 확신을 가지고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답을 말하려면 얼마나 치열한 준비가 필요한지 거꾸로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어떤 사람들은 새삼 존경스러워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저래도 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살아온 시공간 속 각자 삶의 경험의 다름이 개개인의 인식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면, 아주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가치를 제외한 개별 디테일에 대해서는 점점 뭔가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내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어도 내가 한 분야의 박사까지 공부했다는 점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준비하고 고민했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무엇을 얻어갈까 생각했던 부분이 '전문가 집단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방법과 이것을 포장하여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면,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에서는 무엇을 얻어가야 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CTO로서는 '사업에 도움이 되는 기술적 결정을 하고 조직에 적용하는 방법'이나 '현재 회사에 필요한 개발자를 정의하고 채용하는 방법' 같은 것이 될 수 있겠고, 개발자로서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달성하는 코딩'이라든가 '오픈소스 참여를 통한 기술자로서의 인정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공동창업자라는 위치에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방법'과 '잠재적 기업 가치(valuation)를 높이는 방법' 같은 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최소한의 데모만 가능한 프로토타입 수준에서 실제 판매와 운영이 가능한 서비스 제품으로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디테일을 더 채워야 하는지 실제 경험하게 되면서 그 last-mile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는 점은 학문적 흥미 중심의 사고에서 현실감각을 되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내 느낌엔 프로토타입과 상용화에 들어가는 노력 비중은 거의 1:9쯤 되는 것 같았다. 아직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여러 종류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금 더 유의미하고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겠다는 점이다. 박사과정 공부하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생각보다 답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다행히 팀을 잘 만나서 의견이나 성향도 잘 맞는 편이고)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장 어렵다.
2016년을 지나며 개인적으로 얻은 또 하나의 큰 부분은 바로 운동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strength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운동으로 Strong First라는 단체에서 인증해주는 프로그램이다. SPARCS 선배 용수 형의 소개로 알게 된 강사님과 매주 2회씩 PT 진행한지 3개월이 되었다. 현재 운동 강도는 1시간 내에 대략 16kg 케틀벨 스윙 80회 + 스쿼트 10회, 40+ kg 데드리프트 5회, 플랭크 30초 x 3세트 정도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매회 조금씩 바꿔서, 어떤 때에는 가벼운 무게로 더블스윙 + 더블클린 위주로 하거나 아예 스쿼트·겟업·스트레칭 위주로만 하거나 할 때도 있다.) 고정식 기구를 쓰지 않는 전신 프리웨이트 운동이기 때문에 내 몸의 근육들 중 어느 부분이 특히 약한지가 바로 드러나면서 처지는 부분 없이 골고루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애초에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어서 몸무게는 거의 그대로지만, 얼굴 살이 빠지고 등근육 강화로 앉거나 서있을 때 자세가 똑바로 잡히면서 주변에서 보기좋아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부모님이 매우 반기고 계신다.) 뱃살은 겉보기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바지 입는 게 아주아주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뱃살은 6개월~1년 정도는 해야 뭔가 좀 차이가 날 것 같다. 지금 느껴지는 차이는 살이 빠졌다기보다는 근육이 생기면서 살이 조금 덜 처진다(...)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일상에서는 앉았다 일어설 때, 허리를 굽혀 바닥에 있는 물건을 집을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등근육과 고관절, 허벅지 근육이 강해진 효과를 크게 느끼고 있고, 지속적으로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몸이 항상 쑤신다는 부작용은 있지만 머리 쓰는 작업에 대한 체력적 부담이 덜해지고 있다는 것도 좋다. 이 프로그램의 결과로 깨달은 건 예전에도 힘이 없었다기보다는 힘을 쓰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 이걸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나는 정확히 머리로 이해하고 배워야 습득할 수 있는 타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근력 강화 운동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괜히 러닝머신 뛰고 헬스장 다니며 지루하고 수고롭다는 느낌 없이 훨씬 재밌게 운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박사 때 지도교수님과 같이 등산하거나 마라톤하고 이런 것도 훨씬 덜 힘들고 재밌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다가오는 2017년은 내겐 겨울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오픈소스와 업계에서 대외 활동을 넓히고 사업의 지속성과 성장에 좀더 집중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시스템 빌더와 시스템 아키텍트로 스스로를 가다듬으면서 딥러닝과 AI 기술에 관한 전문성을 함께 갖추는 것도 목표이다. 2015년과 2016년은 AI와 딥러닝 기술이 얼마나 관심을 받는가에 대한 시장의 온도차가 극명했는데, 2017년은 '이미 미래는 우리 곁에'와 같은 느낌으로 전개될 것 같다. 투자를 잘 받기 위해서는 시장의 유행에 민감하게 쫓아가는 워딩(wording)도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말초적 욕망과 근본적 필요를 건드리는 것도 필요하고, 또 동시에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적 역량 강화도 신경써야 하고, 사업을 영위한다는 건 역시 쉽지 않다. 가끔은 미래를 팔아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사업과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구나 싶을 때도 있다. 사업의 성장과 팀 스스로의 만족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더욱 많은 실험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스타트업을 비롯한 모든 기업의 지상과제는 돈을 버는 것이긴 하나, 돈을 언제 어떻게 얼만큼 벌고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방법이 있다. 거기에서 우리에게 맞는 방향과 속도를 집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