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부로 “공식적으로” 박사가 되었다. 어제 오후 6시에 날아온 예비군 편입 안내 메일로 확인 사살(전문연 끝나고 학교대대 소속이었다가 졸업자가 되어 거주지 기준으로 재편성된 것). 실질적으로 디펜스는 5월 말에 한 데다 6월 중순에 이미 대전 생활을 정리하고 7월부터는 선릉으로 출퇴근했기 때문에 벌써 학교에 있었던 게 옛날 일인 것만 같다. 시간은 불과 2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그 사이에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래는 박사과정 회고라는 글 템플릿을 만들어두고 뭔가 길게 쓰려고 했는데, 6월과 7월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다. 연구실 인수인계와 이사를 진행하고 나서 서울에서 열렸던 ISCA 2016 학회에 참석했다가 연구실 송별회식하고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을 시작했는데, 출근 3일째 되던 날 점심시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례 치르고 나서 돌아오니 오픈 준비 중이던 어린이용 CodeOnWeb 서비스의 오픈 예정일은 지나가있고… 뭐 그랬다.
외할아버지 장례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내 직계가족의 장례는 거의 25년만에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친할아버지는 아직도 건강하시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모두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돌아가신지라, 두 할머니에 대해서는 놀러가면 손주 왔구나 하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장면장면의 기억과 병원에 계시던 모습 정도밖에 기억이 안 나고 장례 절차도 모두 어른들이 진행하셨기 때문에 별로 기억에 남은 게 없다. 이번 외할아버지 장례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오랜 기간 뵈었기도 하고,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을 아우르는 동기(?) 사촌들과 부모님·이모·이모부·외삼촌들 모두 함께 진행한 덕에 모든 장례 절차의 시작과 끝을 보게 된 지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특히 입관·하관 예식에서 할아버지의 관을 사촌들과 함께 흰장갑을 끼고 운구했던 건 지금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원래는 ISCA 학회 참석 후 연구실의 제주도 워크샵에 같이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이상하게 가기 싫더라니—살면서 불현듯 찾아오는 어떤 직감이라는 게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런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딱 그 타이밍에 돌아가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숨막히게 달려오고 또 달리려고 하던 나를 잠깐 멈추어 삶에 대해 되돌아볼 시간을 주신 게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소천을 경험하고 나니, 사람과의 관계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일을 제외하면, 7~8월 동안 내 삶의 테마는 관계 회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못 만났던 여러 선배·후배들도 만나고, 업계 지인들도 만나고,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조언도 듣고. 그 화룡정점은 8월 13~15일에 열렸던 PyCon APAC이었다. 어쩌다보니 이 작은 3명짜리 스타트업에서 3명 다 발표자로 선정되는 바람에 잠시 회사 업무가 마비될 정도이긴 했지만, 그 덕에 회사 이름도 많이 알리고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여러 지인들의 생존확인(?)도 할 수 있었다. 요즘 자주 쓰고 있는 라이브러리인 Python asyncio 표준 패키지와 aiohttp 패키지 개발자인 Andrew Svetlov와의 sprint 또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덕분에 실제 코드 커밋도 할 수 있었고, 완성도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필요한 테스트 체계(CI)에 대해서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 프로젝트에도 본격적으로 도입해야지 생각만 하고 아무래도 직접 해본 경험이 없어서 손이 잘 안 가던 걸 직접 해보면 좀더 마음의 장벽이 낮아지게 마련이니, 잠깐의 업무 공백이 있었더라도 오히려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을 만나보니 많이들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박사까지 했는데 왜 혹은 어떤 계기로 스타트업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에 널린 게 박사(...)고 그 중에 이런 길 저런 길 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별로 느낌이 없는데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에 대한 답은 내가 박사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가에 대한 답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문가 집단을 설득하기 위한 글쓰기와 의사소통 기술을 습득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서, 처음 보는 아이디어 스케치들에 대해서 어떤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가에 대한 어떤 ‘생각의 프레임워크’를 만들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좀 자잘하게는 정부의 연구과제를 다루는 방법 같은 지식도 살면서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처음부터 박사과정에서 뭔가 세상을 바꿀 대단한 연구업적을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분야 자체가 자연과학이 아니라 공학이므로, 새로운 발견 자체보다는 계속 변화하는 가정에 맞춰 얼마나 실용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가치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항상 조금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하지만(그게 원래 목적이기도 하고), 나는 기존에 존재하는 아이디어라도 적재적소에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가 인류의 보편 복지 증진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사과정 후의 진로를 학계가 아닌 업계로 택한 것이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어떤 한 분야의 정점을 찍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재미이자 도전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끝나고 나서 세상에 나와보니,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학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는 것과 같은. 그리고 그런 정점을 찍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인지 감이 생겼고, 필요하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미 그 수준을 달성한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정점을 찍는다는 건 멋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외로운 일이기도 하기에,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주변에 모으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오늘부터 이번 주말까지는 22년 넘게 내 삶의 최대 목표로 추구해왔던 학업이라는 의무감을 벗은 첫 번째 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