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집전화 샘플링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다들 설마 여당이 과반을 못할 거라는 예상까지는 못했는데 출구조사부터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원내 제1당을 야당에게 넘겨주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사전투표 덕분에 젊은층의 투표율이 올라간 효과도 일부 있었을 것이고, 여당의 공천 잡음에 의한 보수층 표 이탈도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내 제1당이 바뀔 정도의 결과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를 비롯하여 주변의 많은 20~30대 사람들(주변 친구들이나 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샘플)을 보면 어떻게든 새누리당 독주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수도권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주고 비례대표를 자신이 원하는 정당으로 소신투표하는 경우, 이른바 교차투표가 많았다. 그래서 많이들 우려했던 야권분열 구도에도 불구하고 더민주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색깔을 벗고 전국정당으로서의 위상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내가 보기엔 교차투표로 인해 이득을 본 부분이 많은 만큼 앞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정책을 얼마나 잘 이끌어주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영남지역에서 여러 의석을 차지했다는 점이나 호남정당이라는 색깔을 벗은 건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선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지역대결보다는 세대간 대결로 선거 양상이 바뀌는 것 같다.
딱히 나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재의 새누리당 체제보다는 조금 더 말이 되는 정책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둘다 보수라고 하더라도 다른 정책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국민의당 행보도 어떨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두 거대 당보다는 원내진입 자체가 목표인 군소정당들을 관심있게 보고 있는데, 특히 지난 총선 때부터 지켜봐온 녹색당은 서울과 제주에서 1% 이상의 득표를 얻은 것으로 보아 생각보다는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녹색당의 모든 정책에 있는 그대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주의를 벗어나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녹색당과 같은 소수 진보정당들도 원내진입으로 최소한의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내리막길을 걸은 정의당이 이번 선거의 3당 구도 재편 과정에서 그 무게감이 많이 희석된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합리적 정책을 제안하는 보수정당이 명확하지 않고, 진보정당들은 호남지역색이나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깨부수고 나오지 못하는 한계들을 보여왔던 점이 못내 아쉬웠는데(그래서 어느 한쪽도 딱히 지지하지 못하겠는 그런 상황) 이번 선거를 통해 그러한 구도들이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 그래도 희망을 갖게 한다.
소선거구제 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를 혼합하고 있는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선거제도가 거대 정당의 기득권 유지와 소수정당들의 원내진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도 좀더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같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각 나라의 디테일한 선거제도는 차이점이 상당히 많은데, 총선을 계기로 몇가지를 좀더 검색해보았다.
투표 방식은 주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알려져있다. (연기제·단기제 등 더 디테일하게 구분하는 기준들도 있는 것 같은데 큰 틀에서만 구분해보았다):
선거구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해볼 수 있다.:
투표방식과 선거구제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유형이 존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각 정당들의 후보 공천 전략이나 단일화 전략, 그리고 유권자들의 투표 전략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대체로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제는 거대정당들에게 유리하고 비례대표제와 선호투표제가 소수정당들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특히 단순다수제에서는 최다득표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다른 모든 표들이 사표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선거결과가 실제 유권자들의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결선투표제는 후보단일화 논의로 인한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3명의 후보가 나오는 상황에서만 장점이 빛을 발한다는 지적도 있다. 소선거구제는 투·개표 관리가 용이하고 지역별 후보들을 선택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으나 후보들과 지역주민들의 유착 형성 및 선거구별 인구 격차에 따른 표의 비중 차이가 단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2배 차이까지 인정) 거꾸로, 중선거구제에서는 한 정당이 복수후보를 출마시킬 수 있기 때문에 파벌형성을 유도하는 병폐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장단점들은 일본의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에 관한 기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3가지 이상의 대안이 존재할 때 어떠한 투표제도로도 일관성 있는 선호도 순위를 매길 수 없다는 수학적 증명과 이를 일반화하여 임의의 투표제 하에서 독재자가 존재하거나 이길 수 없는 후보가 존재하거나 자신의 의사와 다른 전략투표를 하는 행위가 존재하거나 할 수 밖에 없다는 정리도 있다.
결국 모두의 선호를 만족하는 통일된 선호를 도출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선거제도는 각 사회의 "현재 합의"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위에 링크한 기사에서도 보듯, 특정한 제도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바꿨더니 다른 종류의 병폐가 발생하고 이런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렇지만 나는 현재 어느 한쪽으로 쏠림이 발생하고 있다면 다른 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어떤 제도가 되었든 고인 물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군소정당들이 원내 의석을 단 1~2개씩이라도 확보하고, 3당 혹은 4당이 원내교섭단체(의석 수 20 이상)를 구성함으로써 서로 균형과 견제를 이루는 국회를 보고 싶다. 국회의 의사결정 속도는 다소 느려지겠지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번씩은 더 설득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현재의 선거제도에서 비례대표를 더 늘리거나 지역구별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거나 하는 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러한 변화도 한번 딱 정해서 바꾼다고 해서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끊임없이 조정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 변화와 정치인들의 노력의 결과로 우리가 세력보다는 조금 더 합의에 기초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