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세기의 대결이라던 Google AlphaGo와 이세돌 9단의 첫번째 바둑 대결이 있었다. 결과는 이세돌 9단의 불계패. 바둑전문가들의 여러 해석이 난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감정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냉정한 계산으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악수나 실수로 보였던 수조차도 결국 이길 가능성을 향한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이세돌조차 대국 후 인터뷰에서 이제 승률이 5:5인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미디어에서는 앞으로도 20~30년은 걸릴 거라던 바둑 인공지능이 벌써 나왔다면서 호들갑인데, 사실 전산분야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별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2008년 스웨덴 교환학생 시절 기계학습 과목을 들어보면서 2~3레이어 수준의 간단한 신경망을 프로그래밍하는 과제를 했었다. 다만 요즘 와서 달라진 것은, GPU와 같은 병렬연산 프로세서를 손쉽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저변이 마련되고 칩의 가격이 내려가면서,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수십~수백 레이어1의 신경망을 구성하고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신경망이라는 알고리즘의 기본 원리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있었지만, 이것을 이만큼 대규모의 데이터에 대해 빠른 속도로 학습 연산을 시킬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최근의 일인 것이다.
이 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인간처럼 자의식을 가지는 강인공지능(strong AI)은 아직까지 등장이 요원해보이지만--아직 인간 스스로조차도 인간의 자의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으므로 계산속도가 엄청 더 빨라져서 자연스럽게 달성된다는 것이 실제 사실이라는 우연만 아니라면--특정한 종류의 문제를 인간과 유사한 수준으로 풀어낼 수 있는 약인공지능(weak AI)는 이미 충분히 가능하다. 계산 비용이 줄어들면서 점점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고, 이제 일반인들도 인공지능의 존재를 느끼거나 알게 모르게 활용하고 있는 상용화·대중화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인공지능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컴퓨터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한 정해진 형태와 정해진 범위의 입력을 받아 정해진 방법으로만 문제를 푸는 것이 기존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인공지능은 입력값과 출력값의 관계가 훨씬 고차원적인 확률함수로 표현되는 경우이거나 문제에 내재된 풀이규칙에 관한 사전정보 없이 스스로 패턴을 찾아내어 함수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수학적으로는 행렬 연산(곱셈, 미분 등)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알파고 또한 바둑의 게임 규칙이나 경우의 수를 미리 프로그램에 내장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바둑판의 상태에서 다음에 어디에 수를 놓는지에 대한 입력-출력 관계 함수를 스스로 찾아내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이런 함수를 찾아내는 방법론이 바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이고, 이런 알고리즘의 성능을 결정짓는 요소는 얼마나 많은 예시(학습 데이터)를 제공하는가와 다양한 출력물을 평가하는 목적함수에 들어가는 입력항들과 그 계수들을 얼마나 잘 튜닝하는가이다.
이미 이런 기술에 익숙해있던 나로서는 승률이 알파고에 얼마나 좋은 입력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제공했느냐의 문제일 뿐 알고리즘적으로는 이미 인간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연구실 회식에서 재미삼아 점수 내기를 했는데 나 혼자 이세돌 전패(...)에 걸었다. 물론 결과는 어떻게 될지 봐야 알겠지만. ㅋㅋ
에릭슈미트 회장이 이세돌이 이기든 알파고가 이기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승리라고 얘기했다는데, 나도 동의하지만 우려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앞으로의 정치·사회·경제·교육이 이러한 인공지능의 발달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변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미 무인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를 어디에 두는가 하는 문제조차도 논란이 되고 있는 중인데, 지금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듯 인공지능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만큼 기술이 저렴해진다면 많은 인간 노동력이 불필요해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통해 가계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소비를 해서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를 국가가 세금으로 걷어 공공서비스와 정치 기능을 수행하는 구조이다. 노동생산성이 중요했던 이유는 적은 노동시간으로 더 많은 양의 서비스와 재화를 생산함으로써 잉여를 더 늘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비스와 재화 생산의 거의 대부분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대체되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다들 예상하다시피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직업을 잃게 된 사람들에게, '너가 충분한 노오오력을 안해서 그런 거야'라고 탓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슬로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화폐는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되는가?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지급해서 최소한의 소비력을 유지해야 하는가? 그런다고 했을 때 이 사회가 계속해서 발전·성장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의 동기부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발전과 성장을 무한히 계속할 수 있는가? (경제적 사회적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아프리카 개발 이후 우주로 나가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 성장하지 않고도 발전할 수 있는가? 발전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기존 교육을 받은 산업사회 노동인력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쉬운 상황이라면, 다음 세대에 대한 교육방법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인공지능의 오류(인간이 원치 않는 계산결과)로 인한 이슈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를 어디에 물어야 하는가?
민주주의에서 각 개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국민의 의무(납세)를 수행함으로써 정치권력과 국가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 사람들이 소득이 없어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국가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충분한 경제력이 있는 나라들은 인공지능시대로의 진입 과정에서 많은 인공지능 기계들을 구입함으로써 국가의 유지비용을 줄이려고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인공지능 기계를 구입할 돈이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럴 때 국가와 기업 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가? 미국의 유명한 벤처 투자사인 Y-Combinator에서 기본소득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러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수십년에 걸쳐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잠식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변화인지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 체스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겼던 딥블루가 지금은 스마트폰 정도의 컴퓨터에서 충분히 돌아갈 수 있게 되었듯, 알파고를 돌리는 데 필요한 연산량은 앞으로 십여년이 지나면 누구나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애플 덕분(?)에 기술발전이 인문학과 함께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어왔는데 바로 인공지능으로 인한 사회 변화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용 개념의 등장이 19세기 이후 경제와 자본의 폭발적 성장을 불러온 것처럼,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인류 사회가 되기 위해선 뭔가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변화들이 급격한 폭력(전쟁, 독재국가의 등장, 극단적인 양극화 등)을 동반하지 않고 진행되길 바랄 뿐이다.
신경망에서 레이어가 많다는 것은 입력과 출력 사이의 관계를 보다 고차원의 함수로 표현한다고 보면 된다. 즉, 더 많은 입력을 구분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같은 성능을 보이는 신경망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파라메터와 어떤 목적함수로 훈련시켰느냐에 따라 레이어 수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