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관해서

by Joongi Kim

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지 않던 주에 살던 동성 커플들은 법원으로 달려가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GitHub 등 유명 IT 서비스들은 웹사이트 로고에 무지개 무늬를 넣었고, 페이스북에서도 프로필 사진에 무지개빛 배경을 넣어주는 기능을 추가해 이를 기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웃지못할 일화들도 있었다. 동성애자들의 퍼레이드 행사가 벌어지는 가운데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퍼포먼스를 하는데, 그 모양새가 주한미국대사 리퍼트 씨가 피습당해서 입원했을 때 쾌유를 기원하는 것과 똑같은 부채춤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그렇게도 요란하게 쾌유를 빌었던 리퍼트 대사는 동성애 퍼레이드에 참가했고, 그 퍼포먼스 배경음악으로 썼다는 음악은 동성애로 고통받았던 차이코프스키의 곡이었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 압축성장을 하면서, 또한 불과 100년 사이에 왕조국가와 식민지시대와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를 모두 겪으면서,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충돌이 심심치않게 발생한다. 동성애도 그런 충돌이 발생하는 아주 대표적인 케이스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해,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한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처럼 해석이 분분한 케이스를 빼더라도, 구약과 신약 여러 구절에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공식입장으로서 동성애를 죄로 보는 것이 쉽게 바뀌긴 어려울 것이다. 성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에 가톨릭 교회는 예전도 지금도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혼전순결, 자연주기법을 제외한 콘돔 등의 기구·약물 기반 피임행위에 대한 반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이미 영혼을 지닌 인격체로 간주하는 점 등이다.

학계에서는 1970년대 이전까지 동성애를 일종의 정신적 질병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적극적 치료를 통해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다고 보았고, 많은 동성애자들이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성애는 질병의 영역에서 벗어났고, 현재 21세기 이후의 주요 선진국 시민사회에서는 동성애를 질병도 아니고 죄악도 아닌 기호의 하나로 보고있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 논쟁은 국가 또는 제도가 개인의 영역을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본다. 예를 들면, 은행이 보안시스템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지 은행이용자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관점 차이 같은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몇가지 역사적 배경과 어우러져 우리나라의 ActiveX 지옥과 미국의 one-click 구매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적어도 주요 선진국들은 제정일치 사회가 아닌 정교분리 원칙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종교적 관점을 떠나면 동성애라는 것도 결국 개인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이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폐단과 범죄를 제어하기 위한 공적 영역의 규제가 적용될 만한 대상인가 아닌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는 사회라도, 다른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나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경우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국가권력을 통해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MERS에 걸린 환자와 접촉자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강제로 일정 기간 격리하는 것은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다.

동성애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항문성교 같은 변태적 성행위와 그에 따른 성병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또, 동성애자들이 동성의 이성애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든가 이런 장면을 상상하면서 역겹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도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모여 음란한 행위를 한다는 식으로 동성애를 묘사하곤 한다. 게이들이 벌거벗고 퍼레이드하는 것 같이 보수적인 일반인들의 정서에 안 맞는 부분들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들만을 두고 동성결혼의 합법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본질을 떠난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들은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숱하게 나타나는 문제다. 성관계를 원치 않는 이성을 성추행·성폭행하는 것이나, 잘못된 성행위로 인한 성병과 같은 문제는 이성 사이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이 사회가 이성 간의 관계를 규제하는가?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성매매를 금지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보수적이라고 해도 이성교제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혼전순결을 중요시하는 보수적 관점이라도, 몇몇 이슬람교 국가와 같은 제정일치 사회가 아닌 이상 혼전순결을 법제화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나는 동성애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얼마든지 동성애나 혼전 성행위 같은 걸 죄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시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각을 우리가 정교분리의 원칙이 적용되는 일반 시민사회에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간이 자식을 낳기 위해선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야 하는 것이니 생식이라는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옷을 입고 자동차를 타고 우주에도 가는 등 동물적 신체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종의 몇몇 개체가 동성끼리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의 존속에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다. 사실 성이라는 것도 생물학을 조금만 공부해보면 진화과정에서 유전적 다양성을 보다 쉽게 확보하기 위해 획득된 하나의 형질일 뿐, 뭔가 모든 생명체에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이고 universal한 원리라고 볼 수 없으니, 더더욱 우리 사고를 그렇게 제한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우리가 스스로 인간을 뭔가 동물과는 다른 고등한 생명체라고 생각하고 싶다면, 사랑이라는 개념이 꼭 이성을 이용한 생식을 위해서만 사용하라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 커플이 공식적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제도적 차별을 없앴다는 점이다. 동성애자를 적극적으로 증가시키고자 하는 법이라면, 진짜로 그 법이 그 사회의 인류 존속을 해칠 가능성이 없는지 훨씬 더 많은 것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성결혼이 합법이라는 것은, 이미 있는 동성 커플들이 법적으로 부부의 지위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뿐이므로 그런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설령, 종전처럼 합법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동성 커플들이 이성 커플이 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음지에 있기 때문에 더 왜곡된 현상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동성애가 죄악인가? 누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성경의 표면적 구문을 인용하면 죄악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진지한 기독교 신자라면 누군가의 죄를 판단하는 권한은 온전히 하느님에게만 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죄를 지어 돌팔매로 죽을 위험에 처한 여인을 두고 예수님이 진짜로 깨끗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서 돌을 던지라고 했던 장면을 생각해보자. 레위기에 있는 수많은 규율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이미 기독교 안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님이 살던 시대의 관점에서 쓰여졌고, 인류의 지식과 기술이 확장됨에 따라 규율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그러한 규율이 왜 존재하였는가, 그리고 예수님이 현재도 계시다면 진짜 예수님이 주장한 근본 가치에 입각했을 때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는가, 즉 해석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은 당대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고 하였고 적극적인 회개에 응답하여 죄인을 용서해주시는 분이다. 레위기에서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율법에 규정하고 있지만, 21세기에 한센병은 단지 치료가 조금 어려운 질병일 뿐 그것이 그 사람의 죄와 관련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다. 그럴지언대, 심지어 질병도 아닌 동성애에 대해서 성경의 문구 표현을 토대로 여전히 죄악이라고 단정하기는 너무나 위험하다.

동성애자라고 해도 평생 정결을 지키며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사람에 대해서 과연 하느님이 어떤 판단을 내리실까? 내가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그 사람을 용서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또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예수님이 죄인에게 죄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음에도 죄인들에 대한 차별을 막고 그들을 용서해주려고 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설령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해도 예수님은 그들이 단지 죄를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으며 차별받는 것은 반대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봐도 이럴 정도인데, 학문적으로 아무런 정신적 질병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가치를 저해하거나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도 아니라면, 동성애를 법적 장치로 규제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은 이성 간의 관계에서도 이미 충분히 발생하고 있는 일이고, 동성애자들의 어떤 특정한 표현 방식들이 낯설어 멀리하고 싶을 순 있지만, 그것이 동성애의 본질은 아니기에 차별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고 해서 계속 고통 속에 살게 하면 안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