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설치한 윈도7 64비트 버전 이후, 내 방 컴퓨터는 몇 차례 SSD와 GPU 업그레이드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포맷하지 않고 사용해오고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내가 한번 설치한 프로그램들을 다시 설치하는 걸 매우 귀찮아하기도 했고, 윈도7 이후로는 윈도의 업그레이드 설치가 나름 잘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려 윈도7부터 시작해서 윈도8을 거쳐 윈도8.1까지 업그레이드 설치로만 버텨(?)온 것이다. 그러다가 VirtualBox와 VMWare의 bridged network adaptor의 농간으로 어느 날부터 윈도 기본 VPN 기능이 맛이 가더니 영영 복구가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색해보면 관련 글과 임시 해결 방법들이 꽤 나오는데 일시적으로 해결된 적도 있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논문이나 잡일 때문에 좀 바쁘기도 했고, 윈도의 훌륭한 원격데스크탑 기능 덕분에 웬만한 일은 연구실 PC에 접속해서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방 데스크탑이 거의 맛이 갈 지경이 되어도 그저 가끔 집에 들어와서 하는 마인크래프트나 잘 되면 그만이었던지라(...) 딱히 손을 댈 엄두를 안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제 큰 마음을 먹고 무려 5년 반만에(...) 윈도를 포맷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나름 컴퓨터를 깨끗하게 써온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나, 내가 생각해도 좀 오래되긴 했다.;; 근데, 생각보다 큰 마음을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게, 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업무·연구 관련 자료는 모두 드랍박스 같은 클라우드에 올라가있고, 그나마 남은 개인 자료들도 모두 파티션을 나눠 저장해두었던 지라 공인인증서와 private key 파일 정도만 백업하고 나니 뭐 더 백업할 게 없었다. 어차피 윈도 다시 깔면 파이어폭스, 오피스, 비주얼스튜디오 같은 프로그램들은 다시 깔아야 할 테고, 그런 프로그램들도 이제 개인 설정은 클라우드에 동기화되어 있어서 따로 백업할 필요가 없었다. 웹브라우저 즐겨찾기 같은 것도 이미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클라우드에 저장된 지 오래다.
윈도 재설치 자체는 10분도 안돼서 금방 끝났고(장착한 SSD의 최대 속도도 못 내주는 SATA2만 지원되는 구식 메인보드이긴 해도) 가장 오래 걸린 부분은 윈도 업데이트와 드랍박스 동기화였다. 그나마 2014년 6월 이전까지의 업데이트는 누적 업데이트 형태로 배포되어 금방 끝났는데 그 이후의 업데이트는 일일이 받느라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약 38 GB의 자료가 들어있는 드랍박스 동기화는 대충 새벽 1시 정도부터 시작해서 오전 11시쯤 끝났다. (가족 공유 용도로 사진들이 잔뜩 들어있는 폴더가 좀 있어 오래걸렸다.)
요즘 SSD만 주로 쓰다보니 용량 압박을 종종 느끼곤 하는데 대충 살펴보니 윈도8.1 64비트만 설치했을 때 약 17 GB, 윈도 업데이트 모두 돌렸을 때 약 27 GB, 오피스 프로 2013 깔았을 때 약 30 GB, 비주얼 스튜디오 2013 프리미엄 에디션까지 깔았을 때 약 40 GB를 먹었다. (Windows Phone 8 SDK가 옵션으로 들어있는데 이것만 4 GB가 넘길래 설치에서 제외했다.) 여기에 오피스와 비주얼 스튜디오에 대한 윈도업데이트를 돌려보니 추가로 2 GB 이상의 용량이 필요하다. 대충 최소한의 업무 환경을 구성하는 데에만 이 정도고, 여기에 각종 개인 파일과 드랍박스 자료 등을 합치면 128G SSD로는 좀 부족하고 256G SSD 정도는 되어야 좀 쓸만할 듯. (다행히 나는 예전부터 이 사태를 예상하고 256G만 써오고 있다)
이제 USB 3.0, SATA3, DDR4 RAM, PCIe 3.0 등 새로운 PC 규격들이 대중화되고 있으니 올해까지 버텼다가 내년쯤 스카이레이크 + 윈도10으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한번 해야겠다. 그나저나 PC의 성능 한계에 어느 정도 도달해서 그런지 5년 넘게 써도 뭔가 심각하게 느리다는 느낌을 못 받는 걸 보면 확실히 PC 시장이 왜 사양길에 접어드는지 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