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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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는 것 같다. 인간의 언어라는 게 참 오묘한 것이라서 단어 하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객관적으로는 같은 사실을 이야기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다른 방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논쟁하기도 하고 편을 가르기도 하는데, ‘positioning’이나 ‘framing’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여러 이익집단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끔 보여지도록 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본질과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이번에 G20 정상회의와 관련된 언론 보도 및 각종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반응, 정부에서 만든 홍보 홈페이지 등을 살펴보면서 정치와 인터넷의 관계에 대해 만감이 교차했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을 모아놓고, 그렇기에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한 회의를 우리나라에서 한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홍보 자료들을 읽다보면 무언가 정부(혹은 이명박 대통령)가 굉장한 업적을 남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도 그런 관점이 많았고, 어쩌면 일상을 영위하는 국민들은 별로 알지 않아도 될 것까지도 구태여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 같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상회의 전후로 삼성역에 쫙 깔린 경찰들을 굳이 사진찍어서 트위터에 올리는 것도 봤는데 이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요국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국가 입장에서는 철통보안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가 만약 그날 삼성역을 이용했다면 물론 나도 위압감을 느꼈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간의 행동의 제약이 따르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걸 두고 ‘21세기 공안정국’이라고 볼지 ‘불편하지만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이거 무조건 잘 해야 각하가 힘 좀 받으십니다’라는 자세를 취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인터넷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다보면 내 스스로도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고 frame의 혼란이 온다. 이럴 때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듯하다.1 2

한편으로는 회의 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주재했다고 생각하지만, 괜히 다른 데서 잡음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데에 신경썼으면 더욱 국격이 올라갔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있었다. 두 기사(1, 2)를 보면 단순히 보안에 필요한 만큼 회의장 근처의 시위를 막는 정도가 아니라 NGO에 대해 과잉 예방 조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맨날 철통 보안에 근거로 가져다붙이는 ‘시민의 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것만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는 항상 보장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안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이고 그로 인해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일관성 있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NGO들이 모여서 폭력시위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곳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정상회의 취재 차 온 세계 각국 기자단들에게 그들 나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해줬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다른 나라들처럼 굳이 세금으로 그들의 활동을 지원할 필요는 없지만(물론 그렇게 하면 더 국격이 올라가겠지만) 굳이 막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대안적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하지 못하고, G20 정상회의의 모든 공이 정부(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꼭 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혼재된 채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G20 정상회의를 통해서 그간 우리가 안타까워했던 정부의 자화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또한 그 과정 중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framing)에 따라 내 자신이 보수와 진보를 왔다갔다하는 느낌을 받을 만큼 근본적 가치관들이 더 이상 절대불변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도 그 과정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처음에는 과학이냐 괴담이냐, 확률적으로 안전한 것이냐 하는 쪽에서 논의가 진행되다가, ‘검역도 국방’, ‘검역 주권’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며 10만명 중에 단 한 사람만 영향을 받는 것이라도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예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논리가 전개되었고, 한국과 미국의 역학관계나 정부의 책임론에 촛점이 맞춰졌다. 그러더니 (야간집회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촛불시위가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자 경찰이 사람들을 연행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턴 시위 자체의 합법/불법 여부로 주요 논점이 모아졌다. (그 와중에 반대입장의 정치세력들은 ‘맞불집회’라는 것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정부가 국민과 소통할 줄 모른다며 명박산성이 그 상황을 대표하게 되었다.

촛불시위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여러 평가가 엇갈리지만, 나는 일반인들이 정치적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동시에 현재의 시스템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는 한계점을 보여준 것이 가장 중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구 수에 의한 물리적 한계로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주의를 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포퓰리즘 일변도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불러왔다. 누구나 쉽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은 정보과잉 덕분에 곧 소수 전문가의 의견이 더 옳은 것이어도 그것이 여론의 힘을 받지 못하면 그대로 사장되기 쉽다는 단점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누구나 그냥 물어보면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겠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 특성이 여기에 결합하면 그것이 항상 긍정적 결과로만 이어지진 않을 수도 있단 점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 가치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정보과잉의 시대에 여러 이익집단의 가치가 서로 혼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각자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할 수 있을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여러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어떤 하나의 본질을 가진 문제를 두고 사람들이 각기 속한 집단이나 주로 접하는 매체에 따라 건설적인 토론이 불가능할만큼 표현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framing의 혼란스러움에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무엇이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frame인지 혹은 누가 의도적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frame인지 잘 구분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정치적 사상의 차이를 떠나서, 현대 사회에는 또 하나의 큰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자본이 움직이는 기업들이다. 얼마 전 어느 아는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사회제도로 삼고 있다면 부패가 필연적일수밖에 없다는 것. (심지어 그 유명한 ‘문명’ 게임에서도 통치규모가 커지고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부패비용이 함께 올라간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국가는 표면 상 경제 발전과 기업 보호라는 이유로 너무 관대하지만 그 이면에는 돈이라는 무소불위의 도구로 이미 밑바닥부터 온갖 분야에서 사회를 잠식해버린 재벌이 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대응,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조사나 대응,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에서 나오는 온갖 비리들을 보노라면, 그럼에도 잘먹고 잘사는 책임자들을 보노라면 실로 기업 독재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보편인권이 당연한 개념이 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또 다른 독재 체제로 군림하고 있고 가만히 둔다면 결국 국가와 정치의 공공기능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반드시 견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돈이라는 강력한 수단 덕분에 언론통제가 가능하고 대다수 개인을 월급쟁이로 만들어버려 힘을 못 쓰게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자본이 원하는 frame 안에 모두가 갇히게 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억울하면 돈 벌어라’는 말까지 나올까. 개인의 도덕성이 삶을 영위해야 하는 필요에 무너지는데 개인 스스로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갈지도 모른다. (이미 보편도덕이라는 개념은 말이 안 된다고도 하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IT 기술이 민주주의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오히려 framing의 문제는 더욱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게 만들었다. 민주정치와 자본주의 체계에서 우리가 균형점을 찾아가도록 어떻게 도움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1. 한편 정부에서는 그런 시각에 대해 ‘시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식으로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니 반발심만 공연히 더 생겨나는 것 같다. 차라리, ‘이러이러한 이유로 어느 정도 수준의 보안(어느 지역에 어떤 특성의 경비 인력이 배치되는지 등을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해가며)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들께서는 가급적 의심을 살 만한 행동(구체적 예를 들어가며)을 삼가하여 주시고 정상회의 양일간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잘 설명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트위터에 보니 어떤 사람이 우연히 오바마 대통령을 태운 의전차량 행렬이 지나갈 때 육교를 건너다가 도로가 비어있고 차량행렬이 지나가자 손에 음료수병을 든 채 구경하려 했고, 이때 경비 중이던 경찰에게 제압당하며 아이폰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손상된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것도 사전 안내를 통해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충분히 안내를 했음에도 본인이 몰랐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2. 유명한 웹툰 중에 이번 정상회의를 전후하여 ‘국격을 떨어뜨린다’며 시민들의 일상 행위를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리 사람들이 이명박을 까고 싶어한다해도(…) 왜 사람들이 이렇게밖에 느낄 수 없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라면 회의장 주변의 보안에만 신경쓰면 될 일이지 이렇게까지 억지로 만들어진 모습을 보여주려 해야 했을까(혹은 국민들의 시선에 그렇게 보이도록 해야했을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