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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실 나는 워크샵 논문 데드라인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오늘 미팅하고 내일 미팅도 있는 그런 급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미 세 차례나 있었던 자살 사건들을 보고 또 여러 경로로 여러 관점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일단 데드라인이 지난 후에 생각을 좀 정리해볼까 했었는데, 오늘 또다른 비보를 접하고 더 이상은 안 되겠어서 글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대학생들의 자살 수가 2~3백명 정도 된다고 하지만1, KAIST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놓고 전략적으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기에 그 파장이 더욱 크다. 게다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많은 자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학점에 따른 징벌적 수업료 부과, 재수강 제한, 연차초과 수업료 부과 등에 따른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경쟁 분위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일단 지배적이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

실제로 2007년 이후 많은 비학업 동아리가 위축되는 경향을 보여왔으며,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대평가를 시행하는 우리학교 상황에서 학점에 따른 수업료 부과는 심리적으로 아주 큰 압박이 된다. 안 그래도 전국의 과학고와 여러 고등학교에서 모아놓은 우수한 학생들끼리 경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입학사정관제라면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닌 ‘창의력 있는’ 학생을 뽑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올해 처음 있었던 로봇영재 조군의 자살이었다.

서남표 총장이 3일 전에 전체 이메일을 돌렸다. 그 중에 두 문단을 뽑아보면 이렇다.

학생들은 미래에 직면할 도전이나 기회에 대해 실제 겪어 볼 수 없고,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라는 상상만 하기에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예전 세대들이 가질 수 없었던 많은 편리와 기회를 누리고 있으며, 가중된 압박감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되는 대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은 거의 모든 면에서 상응관계(quid pro quo)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해결책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렸다고 봅니다. 만일 우리가 ‘항상 이길 수는 없으며, 나중에 이기기 위해 때로는 지금 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주위의 성공한 사람들도 이전에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해봤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런 맥락 없이 보면 위인전에 나올 것 같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몇 명씩 자살하고 있고, 그 원인 중 하나가 자신이 만든 학교의 지나친 경쟁 시스템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보내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과연 이런 말을 떳떳이 고개들고 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보는 관점에 따라 남은 학생들에게 더 노력하면 된다고 말한 거라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희생이 자살한 학생들을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하면 섬뜩하지 않은가.

서남표 총장은 세계 최고의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 경쟁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매우 제한적인 부분에서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학점이 중심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점을 잘 받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실하고 맡은 바 일을 잘 해내는 경향은 있지만, 학점을 잘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학점을 잘 받는 사람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가치있는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breakthrough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왔다. 그리고 경쟁이 가장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수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peer pressure가 클 때다. KAIST라면 그 조건은 충분히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를 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그리고 KAIST는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일정 부분 우리나라에 그러한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인재들은 체계적으로 양성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특성이 있다. 틀에 얽매이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언젠가 전산과 김진형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전산과에서 학점 잘 받는 그런 학생이 아니라 학점 좀 안 나와도 정말 ‘슈퍼코더’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도 받아들이고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길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런 생각이 좀더 정제된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내가 학부 저학년이었을 때 동아리 고학번 선배들이나 더 위의 90년대 학번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업 좀 땡땡이치고 그러면서 며칠 밤낮을 만들어보고 싶은 거 만들어보고 그랬다고 한다.2 실제로 그런 사람들 중에 크게 사고를 친(?) 케이스도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벤처기업가가 되어 역할모델이 되기도 한다.3 4

과연 지금의 KAIST 학사 경쟁 시스템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을까? 공부를 잘하고 유학가고 대학원에서 좋은 논문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엘리트코스를 밟아 사회지도층이 되는 사람들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기존 제도적 틀을 깨고 만들어내는 사람은 나오기 어렵다.

예전의 KAIST는 비록 학점이 좀 안 좋아도 학교는 마음껏 다닐 수 있었고, 이미 학사경고 제도를 통해 정말 최소한의 한계점은 지정해놓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20대에 박사 따고, 어떤 사람은 사고 치면서 10년만에 겨우겨우 졸업했지만 벤처로 성공하기도 했다. 과연 후자가 전자보다 못하며, 국가의 세금을 낭비해 공부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학교육이란 그러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모두가 공부 잘 하는 길을 가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KAIST가 또 하나의 학원이자 세금으로 운영하는 사교육장이 되지 않으려면 그런 점을 살려야 한다.5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일련의 자살들은 모두가 똑같이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은 아니다. 최근의 한 학생 같은 경우는 과학고 출신에 공부도 곧잘 하는 경우기도 했다. 여러 경로로 전해들은 바, 몇몇은 이성관계나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 및 원래 가지고 있던 우울증 등이 좀더 큰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과학고-KAIST 코스를 밟든,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깊게 파다가 입학사정관의 눈에 띄어 들어오게 되었든, 대체로 이공계 분야 특성 상 사람들이 외골수 경향을 보이는 편이다. 왜냐하면 고도의 집중과 온 뇌를 동원한 맥락 구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복잡한 과학기술 문제를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사람의 뇌가 이런 쪽으로 친절하게 진화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보니 대학이라는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넓은 공간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나도 학부 저학년 때 동아리 2개를 한꺼번에 뛰다가 맡았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거나 대안을 마련하지도 않고(그 정도는 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좀 힘들었던 적이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동아리 정모에서 선배들의 ‘까대기’와 설전이 오가는데 그 분위기가 자못 무거워서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적도 있다. 지금 와서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잘 견디고 그런 경험들을 반면교사 삼아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사회 활동을 하며 다양한 좋고 나쁜 인간관계를 겪어보신 어머니 덕분에 인간관계 문제가 있을 때 어머니와의 상담과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 상황일 때 피아노를 두들긴다(…)거나 하는 방법들도 사용한다. 또, 종교적인 문제를 깊이있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geek한 전산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서로 자기가 작곡한 곡을 쳐주며 교감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그런 취미나 인간관계에서의 소소한 다양성과 유대감은 스트레스 해소의 직간접적인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이 좋은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창시절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어렸을 때부터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면 항상 들어주셨던 어머니의 격려였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항상 그걸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가족 중심의 인간관계에서 동아리나 수업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과 선후배가 인간관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런데 이성문제가 생기거나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학부 저학년 때는 (지나고보면 학부 4~5년 금방이지만) 앞날이 막연해보이는 법이다. 기숙사 학교라는 특성 상 혼자 틀어박혀있기 좋고, 외골수 기질까지 더해지니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매우 쉬운 환경이라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무엇이든 간에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왔고, 나는 이런저런 기회로 외부에서 오픈소스 활동을 하며 전산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내가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KAIST는 일반적인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특히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매우 쉬운 곳이고 그렇기에 자살에 취약하다.

서남표 총장이나 우리 학교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경쟁에 몰아넣는 학사시스템을 없애고 각 개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거기에 더불어 학생사회가 더욱 다양성을 가지고 많은 동아리들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학생들끼리의 자연적인 커뮤니티가 발생할 수 있는 그런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기숙사와 강의실과 식당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앉아서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함께 과제도 하고, 악기 연주를 할 수도 있고 맥주 마시고 떠들 수도 있고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일단 그러한 여유가 생기려면, 학업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심정적으로 소모되어 지친 상태가 되면 안 되기에 학사제도 개선이 조금 더 시급한 문제라 생각한다. 건전한 경쟁은 꼭 필요하지만, 경쟁이 삶의 여유를 갉아먹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외부에서는 KAIST 학생들은 세금으로 공부하는 것이고,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에 공헌하는 것이 도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다양한 문물을 접하며 성장하는 지금의 학생들은 과거 70~80년대처럼 허리띠 졸라매어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이 더이상 정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 창의적인 실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시대도 그런 것을 원한다. KAIST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며, 특히나 이제는 그것을 강요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KAIST는 이공계가 중심인 대학이지만, 공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학생들이 감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해지고, 인간관계를 다양화할 수 있는 방법에도 신경써야 한다. 물론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을 자부하는 만큼,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 부분에 신경쓸 수 있는 수준이 된 만큼 가능하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비약적인 생각이지만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한쪽으로 쏠리기 쉽도록 병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느 후배가 트위터에 명언을 남겼다. 명령하는 사회가 아닌 설득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공부하라고 명령하는 학교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싶어지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추가: 사실 나는 이 글을 다소 마음이 급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채 적다보니 좀 정리가 안 된 감이 있다.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서 무엇이 본질이고 중요한 문제인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아주 잘 정리한 글이 있어 링크한다. 카이스트, 4월 7일


  1. 2011년 3월 27일자 MBC 뉴스 “벼랑 끝 대학생들‥한 해 2-3백명 자살” 

  2. 내가 대학원에 와서 특히 더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학문적 성취가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삽질(전산과를 예로 들면 프로그래밍 그 자체)을 잘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학문을 하면 되지만, 엔지니어링이 결합되지 않으면 학문에서 나온 결과를 활용할 수 없다. 나도 가끔 내가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다. 

  3. CEO 노정석. ABLAR Company. 이분은 블로그 벤처인 태터앤컴퍼니를 만들어 한국 기업 최초로 구글에 인수되도록 하기도 했고, 지금의 티스토리도 태터앤컴퍼니의 작품이다. 

  4.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 블루홀스튜디오 대표. 인터뷰 참조. 

  5. KAIST는 연구중심대학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해왔는데, 사실 교육과 연구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교육도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한 교육이냐 실용적인 기술들을 잘 다루게 하기 위한 교육이냐에 따라 방향이 많이 다르다. 이점에서 전산과도 이론 분야와 공학 분야는 하는 일도 그렇고 요구되는 능력도 매우 다르다. 그래서 김진형 교수님이 슈퍼코더 양성에 대해 새로운 대학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셨던 것이다. (링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