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오늘 드디어 가족끼리 왕의 남자를 보러 갔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거의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영화였다. 몰입감을 안겨주는 배우들의 감성파 연기, 서민들의 삶과 궁중 삶의 대비와 독특하면서도 맛깔스런 전통적 느낌을 잘 재현한 영화 전반의 색채, 심금을 울리는 현악 위주의 배경음악까지. 게다가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각색한 줄거리도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짜여져 있었다. 연산군 시대의 이야기라는 것 외에는 광대가 나오는 것인지조차 모르고(-_-) 영화를 보러갔음에도 정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영화 볼 때마다 결국 잠들어서 웬만한 영화는 다 봤으면서도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어머니께서도 끝까지 집중해서 보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연산군일기에 공길이란 광대가 논어를 외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라고 말했다가 참형을 당했다는 것을 바탕으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작은 연극 「이(爾)」이며, 영화 티켓을 가지고 가면 30% 할인해서 볼 수 있다.)

연산군의 폭군적 성격을 인간적 고뇌에 따른 감정 이입으로 그에 대한 연민·동정을 준다는 것 때문에 영화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으나, 어쨌든 그런 새로운 시각을 통해, 광대의 자유로움을 갈망했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고뇌를 겪었던 왕으로서의 새로운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궁중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오히려 천민 출신의 광대들을 반기는 그의 천진난만하면서도 광기 어린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하였다.

한편 광대 공길과 그의 동료 장생의 관계는 서로 애틋한, 우정 이상의, 보기에 따라선 사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보다 훨씬 과장하여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이긴 하나, 조선 광대로서 최고의 판을 벌이며 임금도 하나의 인간임을, 그리고 조정의 권력 다툼과 인간사는 다 똑같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깨달아 가는 모습, 이런 구성이 짜임새 있게 잘 그려졌다.

전에 읽었던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에 나오는 광대들의 역마살이 잠시 떠오르지만, 재주로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그들은 한 시대의 정쟁에 휘말리며 그 중심에 선 폭군 연산군 앞에서 왕과 신하들을 상대로 놀이판을 벌이는 그들은 정말 그 순간만큼은 조선의 왕과도 다름 없었다. 세속적 의미의 왕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