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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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

간밤에 CS443 조교일로 Hadoop 클러스터 세팅하다가 JVM Heap 크기 설정 문제로 삽질하느라 밤새는 바람에 좀 늦긴 했지만 어쨌든 첫 TEDxKAIST 행사에 다녀왔다. 아무래도 클러스터 세팅도 빨리 해야 하는 일이고 그래서 갈까말까 고민했지만, 공지 메일을 보니 대기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안올 사람은 최대한 빨리 연락달라는 문구를 보고 그냥 안 가버리면 대기자나 주최측에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 늦게라도 갔다.

원래 공지된 프로그램과 순서가 조금 달라졌는데, 첫 순서만 이민화 교수님으로 바뀐 두번째 세션부터는 쭉 다 들을 수 있었다. 이번 학기에 CEO 세미나 들으려다 말았는데(수강하면 조별 토론 준비해야 되고 귀찮아서 시간 될 때 청강만 하러 갈 생각) 첫시간에 나오신 분이 이민화 교수님이었다. 그땐 별다른 인상을 못 받았는데 오늘 발표하는 걸 보니 이분도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신 것 같았다. 아무튼 들은 것들 중에 기억에 남는 발표들에 대해 정리해보면 이렇다.

Homo Mobiliance (이민화)

사실 중간부터 들어서 전체 내용을 다 못 보긴 했지만, 대략 스마트폰으로 인한 모바일 라이프를 통해 사람들은 더 다양한 소셜네트워크 속에서 다양한 모습(다중인격)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스마트폰은 그런 모습들의 아바타로서 작동하게 되는 미래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연구실에서 하는 소셜네트웍 연구 중에 community structure를 node 중심이 아닌 edge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하는 것이 있는데, 어쩌면 이분이 말씀하신 다중인격 개념이 그와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Sweat the small stuff (녹화영상, Rory Sutherland)

요즘 나오는 말들 중에 ‘디테일에 집중하라’ 이런 것이 있는데(책 이름이었던가?), 딱 그것을 설명해주는 내용이었다. 행동경제학이니 이런 말을 붙여 설명하긴 했지만, 결국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규모’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나 권력자들이 많은 예산으로 뭔가 큰 규모의 일을 벌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흔히 말하는 ‘전시성 행정’이 딱 그런 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거나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훨씬 저렴한 비용의 아이디어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로 든 것은 유로스타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60억 파운드를 들이는 것보다 10억 파운드만 들여서 예쁜 걸(…)들이 와인을 서빙하게 하면 속도가 더 느려도 사람들은 만족할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예보다는 엘레베이터에 거울을 설치하거나 투명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듬으로써 타고 있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걸 예로 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했다. 아무튼, ‘디테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은 맘에 들었다.

Experiencing Science and Happiness (박성동 @SATRECi)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카이스트 인공위성 연구센터와 소형위성 개발업체 SATRECi를 만드신 분의 발표였다. (기숙사 화장실마다 붙어있는, 카이스트의 전설 시리즈 중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나 할까.) 1989년 영국에 가게 된 것이 교양분관에서 대학3호관으로 걸어가던 길에 있는 공지를 보고 한 것이었다든지, 그로부터 20년을 기념하여 어은동(…) 모 술집에 모여 찍은 사진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보니 그런 ‘전설’의 사람들이 먼발치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의 내용은, SATRECi로 많은 돈도 벌었고 인공위성 연구센터에서 나올 때 많은 고민도 했었고, 뭐 이런 경험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선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Drive (녹화영상, Dan Pink)

화이트보드 같은 곳에 검정색과 빨간색 마커로 손으로 만화 같은 느낌의 그림과 글자를 그리는 것을 녹화하여 빨리 재생시키고 거기에 나레이션을 담은 형식의 영상이었다. (그림체는 전형적인 미국만화–예를 들면 Ph.D Comics 같은 느낌.)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인가 했는데, 단순한 일은 보상이 많을수록 동기부여가 쉽게 되지만 복잡하고 창조력을 요구하는 일은 보상이 많다고 동기부여가 꼭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오픈소스(…)였는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과정은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고 또 실제로 오픈소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는데도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재미와 자기주도성을 이유로 꼽았다. 나도 이에 동의하지만, 사실 좀더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과 같이, name value를 높이기 위한 어떤 사심(私心)에 의한 동기도 크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건 심지어 Needlworks 내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론은 그런 동기부여 방법을 잘 생각하고 활용해야겠다는 것이었다.

It’s you, KAIST: let’s change the world! (여운승 @CT)

공대생 유머(ㅠㅠ)로 시작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발표였다. 처음에 단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정말 교수님 맞나 싶을 정도로 젊기도 하고, 약간 어눌한 느낌으로 시작해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면 사람들한테 가장 강하게 남은 발표가 아닐까 싶다. 공대생의 비참함(…)을 한참 얘기하다가, 또 공대생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도 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은 결국 엔지니어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삐딱한–즐길 줄 아는–엔지니어로서 잘 살아간다면, 혹은 엔지니어 배경을 다른 분야에서 잘 활용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행복한 삶 아니겠는가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발표 중간에, 단상 위에 놓여있던 의자를 두고 갑자기 이게 왜 여기 놓여있는지 모르겠다며 ‘삐딱한’이란 말의 예를 몸소 보여주어 관중의 폭소를 샀는데, 순발력 있는 발표 기술이 상당히 돋보였다.

It’s good to be unhappy (Don Norman)

컴퓨터로 준비된 영상이나 슬라이드 없이, 칠판에 그린 그림 몇 개와 단어 몇 개로 훌륭하게 소화해낸 인상깊은 발표였다. 처음에 무선프레젠터의 ‘다음 슬라이드’ 버튼이 위여야 하는지 아래여야 하는지, 컴퓨터 GUI의 스크롤바를 움직였을 때 내용이 움직이는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처음 GUI 개발 당시 이 문제로 3년 동안이나 토론했다고 한다. 결과는 보다시피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이지만 정답은 없다–와 같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이야기를 통해 ‘point of view’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잠시 불만족스럽고 불행한 상황에 있더라도 긍정적인 관점으로 살아가다보면 궁극적으로는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특히 사람은 어느 정도의 긴장 상태에 있어야 보다 집중하고 좋은 효율로 일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해보고 상황에 따라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활용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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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트위터를 통해 받은 질문들과 관중들의 질문들을 바탕으로 발표자들의 패널토의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무언가 일을 이뤄가려면 좁고 깊은 전문성보다는 넓게 아는 것이 더 도움이 되더라라는 것과 학생 때 가능하면 많은 경험을 해보아라 하는 내용들이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리더십 같은 쪽으로 더 많이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에 대해 노영해 교수님은 TEDxKAIST 같은 행사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성공리에 개최된 것을 보면 충분히 이미 리더십이 있는 것 아니냐고 칭찬(?)을 하시기도 했다.

알고봤더니 행사 스탭들 중에도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홈페이지에서 봤을 땐 잘 모르겠더니만 ㅋㅋ), 아는 친구들이나 후배들도 와서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서 더 좋았다. 마지막에 after party에서는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에 다녀온 경험을 토대로 ‘우주로의 일탈’을 간단하게 발표했는데, 우주인으로서도 하나에 집중한 전문지식보다는 이런저런 분야에 대해 다양하게 알고 있던 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생존부터 과학실험까지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 현재 우주기술의 수준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미래에 일반인들이 우주에 손쉽게 왔다갔다 하는 세상이 되면 그땐 다시 거꾸로 전문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다.)

뭐, 태터툴즈 오픈하우스부터 시작해서 VLAAH DAY라든지 태터캠프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나름대로 좀 다니다보니 사실 위에 나온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이미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직접 들으면 온라인으로 볼 때보다 확실히 motivating되고 더 감동으로 와닿긴 하지만, 요즘은 발표 보면서 그 한순간 감동받는 것보다는 실제로 살면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특히, Don Norman 발표에서, 급한 일에 치이다 보면 중요한 일을 못한다며 중요한 일을 하려면 매일 일정시간 다른 모든 일을 ‘block’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책 쓰는(…) 일이 그렇다는 얘길 했는데, 나도 책을 쓰려다 당장의 학업 때문에 계속 밀리고 밀려서 ‘때맞춰’ 책을 못 낸 것이 매우 아쉬운 터라 큰 공감으로 와닿았다. 학부 때도 그게 힘들었는데 대학원생인 지금은 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ㅠㅠ 아무튼 좋은 이야기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해야만 그것이 정말 좋은 가치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제 다시 클러스터 세팅 살집하러…;

ps. 스탭 중 한분에게 물어보니, TEDxKAIST는 연 1회 이상 앞으로도 계속 지속할 생각이라고 한다. 오늘 못 왔어도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듯. 그리고 발표 내용은 나중에 웹으로도 올려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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