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breakin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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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살아가기, 생각하기/즐기기
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저번 수요일이지만 목요일 영어수업을 위한 과제, Swedish Society 수업을 위한 reading assignment 등으로 아무것도 못하다가 금요일에서야 사진 옮겨놓고 몸살 기운이 있어 푹 쉬느라 이제서야 쓰게 되었다. 처음엔 여행기를 시간 순으로 있었던 일들을 쭉 쓸까 했지만 분량도 많고 진부한 것 같아서 여기서는 전반적인 감상 위주로 쓰고자 한다.

약 한 달쯤 전에 Flickr pro 계정을 질러서 사진은 모두 거기에 넣어두기로 했다. 한국에서 떠날 때 하필이면 사진만 싹 빼놓고 데이터를 복사해와서 아쉬울 때가 있었는데 이런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면 어디서나 불러올 수 있다는 점, 필요하다면 API를 이용해 외부로 노출시키기는 것도 가능하고, Picnik과의 연동으로 간단한 후보정을 웹상에서 할 수도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미묘하기 싼 듯 비싼 듯한 적절한 가격(1년 $24, 용량 트래픽 무제한)등이 선택요인이었다. 아무튼 하려고 했던 말은 여행 사진들도 모두 Flickr에 정리 중이라는 것. 시간 순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길 원한다면 이전 포스팅의 일정표와 함께 그 사진들을 참고하시라.

핀란드는 사실 하루밖에 안 머물렀기에 무엇이 특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자일리톨?..은 잘 모르겠고 울창한 침엽수림이 눈에 띄었지만 이건 러시아도 마찬가지. 듣기로는 스웨덴의 중립 정책 때문에 2차대전 당시 러시아로 진격하는 독일군들의 희생양이 되어 무참히 짓밟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래된 시가지보다는 현대적 건축물이 많았다. 또한 공업과 기술이 발달한 나라답게 고가도로의 디자인 등도 테크니컬한 분위기를 많이 풍겼다.
한편,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핀란드어는 사실 러시아어와 그 뿌리가 같다고 하나 문자는 키릴 문자가 아닌 유럽권 알파벳을 쓴다. 대신 특이한 건 같은 모음을 두 번 연속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 (플리커 사진 참조) 강세 표시를 위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헬싱키에서 첫번째로 방문했던 새하얀 Lutheran cathedral은 뭐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정말 그 새하얀 것 때문에 볼 만 했다. 그 다음에 방문했던 곳은 암반지대를 파서 반지하로 만든 교회인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고나 할까. 시간만 있다면 마냥 앉아서 사색에 잠기고픈 그런 곳이었다. 돌을 파고 위에 금속 천장을 얹은 만큼 소리 울림이 매우 좋아서 음악회가 자주 열린다는데 감상해보고 싶었다.
하루 당일치기로 돌아다닌 건데 그 교회를 보고 나서 구름 한점 없이 해가 쨍쨍하던 날씨가 급속히 흐려지더니 점심을 먹고나자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발트해의 영향과 러시아 대륙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 기후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러시아는 뭐랄까, 오랫동안의 공산정권 때문인지 ‘금지된 국가’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공산 정치로 인해 우주기술과 같은 일부 분야를 제외하곤 공업이나 경제가 별로 발전하지 않았고, 자본주의 시장으로 이행한 후 그 부작용이 지금까지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잠재력만큼은 무궁무진한 나라라고 느꼈다.

러시아의 강한 점이나 가능성을 꼽는다면, 그 막대한 영토가 가지고 있는 자원의 가치, 신규 시장으로서 글로벌 기업들이 평가하는 가치(실제로 삼성, LG, 아우디 등 여러 기업들의 홍보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콧대높은 자존심만큼이나 화려하고 깊이있는 문화 정도가 있겠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지간히 조그마한 박물관조차도 모두 무장경찰이 X-ray·금속탐지 검사대를 가지고 경비를 서고 있으며 모든 전시실에는 항상 감시요원이 상주하는 등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굉장하다는 것이다. 또 독일군 등에 의해 소실된 문화재들도 수십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복원하는 걸 보고 배울 만한다고 느꼈다. (아, 갑자기 숭례문 태워먹은 거 생각하니….-_-)

반면 러시아가 극복해야 할 점으로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너무 질이 떨어져버린 공공서비스(수도관을 교체하지 않아 호텔에서 녹물이 쏟아지는 거 보고 정말…-_-), 열악한 사회기반시설(러시아 제1의 도시 모스크바와 2의 도시 상페테르부르크를 연결하는 600km짜리 고속도로가 국내 어지간한 지방도보다도 좁은데다 포장도 대충 땜빵만 해와서 움푹움푹 패인 곳이 많아 20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한국에서 서울-부산 450km를 4시간 정도에 갈 수 있는 걸 생각하면…-_-), 그리고 급격한 개방에 따른 사회 불안 요소(스킨헤드들의 활동에 따른 치안 유지의 어려움 등.) 정도를 뽑을 수 있겠다. 또한 관광대국으로 성장할 만한 문화 유산과 컨텐츠는 충분히 갖고 있지만서도 아직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점(영어 통하는 곳 거의 없고 표지판도 죄다 러시아어만..-_- 러시아 여행하려면 키릴문자는 기본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간단한 러시아어 회화를 할 줄 아는 것이 좋다.)도 아직까지 한계점이다. 내 경우 회화까지는 못해봤고 키릴문자만이라도 재빨리 습득해두니 원하는 주소를 찾아가거나 음식 메뉴를 고를 때 매우 편리했다.

러시아에서 기억에 남는 건 모스크바보다는 상페테르부르크. 제정러시아의 수도답게 볼 것이 정말 많은 도시라서 아마 제대로 다 보려면 일주일 정도는 머물러야 할 것 같다. 3일 정도를 돌아다녔는데도 못 본 것이 꽤 많았다. 헤르미타지 박물관은 원래 러시아 황제의 겨울 궁전이었던 것을 공산 혁명 이후에 미술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는 것인데, 작품들보다도 그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이 정말 백미다. 안으로 들어가면 온갖 색깔의 대리석과 문양으로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그 색깔이 환상적이었다. 특히 붉은 대리석을 쓴 방과 분홍색 대리석을 쓴 방이 기억에 남는다. 궁전 정도 되는 러시아 건물들을 보면 외부 장식에 다른 나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색배치를 쓰는데 그 화려함과 조화가 놀랍다. (이를 테면 하얀 색 기둥·창문에 진한 하늘색 바탕을 쓴다든지.) 이 부분은 핀란드도 약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건축적인 측면에서, 러시아의 궁전이나 그 시대에 지어진 건물든은 보통 복도라는 개념이 없고, 대신 큰 방을 죽죽 이어붙여놓고 문을 큼직하게 일렬로 마주보도록 뚫어놓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문이 다 열려있을 때 바라보면 ‘첩첩첩첩첩..’ 방들이 쌓여있다. 이건 다른 서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단체 여행이었기 때문에 좋았던 건, 여러 나라에서 스웨덴으로 온 교환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스페인, 네덜란드, 멕시코, 독일, 프랑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며 꼬박 열흘을 같이 있으니 각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확실히 멕시코나 스페인 쪽 애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술마시고 노는 걸 좋아하고 북유럽 쪽이나 아시아 사람들은 차분한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서로 자기네 언어로 간단한 회화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특히 동일이가 이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모양인지 수첩에 각국 기초 회화를 메모하고 다녔다.) 스페인어의 숫자는 라틴어 prefix와 거의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든지, 남유럽은 ‘고맙다’라는 표현을 주로 grazie, gracias 등으로 쓰는 데 반해 북유럽은 thank, tack 계열을 사용한다는 점이 재밌었다. 네이티브 프렌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프랑스어는 특히 알파벳으로 써놓은 것하고 실제 발음하고 너무 달라서 이건 뭐 안드로메다…(….) 한 친구 이름이 Florent였는데 실제 발음은 ‘f흘로ㅎ옹’ 정도랄까…;;; 물어보니 규칙이 있긴 하다는데 좀 복잡하댄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쪽 네이티브 잉글리시는 역시 말이 빠르고 이어서 말하는 경향이 강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쪽은 처음 들어봤는데 미국과는 또 살짝 다른 느낌.) 일본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영어 발음을 상당히 잘 구사해서 별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독일 애들한테 고등학교 때 배운 Auf Wiedersen과 Entschuldigung 얘기해주니 웃더라.;
저번 키루나 여행과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점은, 적어도 여행할 땐 언어가 통하는 사람하고 가는 것이 좋다는 것. 키루나 때 넷 중 셋은 중국어를 하고 나 포함 둘만 영어를 하니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 불편했으나, 이번엔 동일이와 함께 가기도 했고 Växjö에서 공부하는 한 한국인 누나를 만나 좀더 재미있게 다닐 수 있었다. 한국어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영어 정도는 통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물론 모 친구처럼 중국어를 아주 잘하면 중국어도 괜찮겠지만.)

여행의 백미를 장식했던 것은 상페테르부르크(그리고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 러시아의 유명한 시인 Pushkin이 자주 왔다는 한 카페에서의 시간이었다. 피아노 생음악과 소프라노의 노래를 간간이 들을 수 있는 아주 고풍스런 카페였다. 중간에 슈베르트 즉흥곡(!)을 치길래 혹시 악보가 있으면 쳐봐도 되겠냐고 물어보려 했으나 역시(…) 상대방이 영어를 못하는 바람에 쥐쥐. Schubert impromptu까지는 어찌 알아듣은 것 같은데 바디랭귀지에서 실패했다.; 거의 한시간 반이나 앉아서 커피와 차를 즐기며 반쯤 얼어붙은 어둑어둑한 수로를 내려다보며 한껏 여유를 즐겼다. (사실 그덕에 시간이 많이 늦어서 돌아올 때 혹시 스킨헤드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조금 노심초사하긴 했다-_-)

사실 전반적으로 러시아 왔다갔다하며 맘에 들었던 건 물가! ㅠ_ㅠ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스위스, 영국 정도가 아마 세계에서 제일 물가가 비싼 곳 아닐까 싶다. (핀란드도 꽤 비싸다) 물론 나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는 음식 재료를 사다 직접 해먹으면 돈이 많이 절약되지만 여행 다닐 땐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특히 한 대형할인마트에서 식빵 한 봉지에 300원, 초코렛 두툼한 거 하나에 700원하는 거 보고 감동.. 오오….ㅠㅠ;; 근데 러시아의 물가라는 게 장소에 따라 제각각이라 모스크바 크레믈린 근처 지하 쇼핑센터의 푸드코트 맨 끝에 있는 한 작은 부페에서 음식을 집어먹을 땐 한 끼 식사가 2만원이 넘게 나오기도 했다. (분명히 2만원짜리의 퀄리티보단 한참 낮은데도 불구하고. 패밀리 레스토랑이 아니란 말이다..ㄱ-) 음식을 무게 단위(보통 100g or 1kg)로 계산하는데 딱 그 정도 담아서 주나 했더니 그냥 자기들 맘대로 퍼담아주고는 저울로 재버리더라..orz (이럴 때 러시아어를 할 줄 알면 덜어달라고 할 수 있다. 흑흑) 그래도 전반적으로 스웨덴보다 싼 건 틀림없다. 특히 과자, 케익, 초코렛 등은 써있는 루블 가격을 그대로 크로나로 바꾸면 스웨덴에서의 가격이 될 듯. 즉 4배 정도 싸다는 소리다. 위에서 말한 커피집도, 어지간한 한국의 분위기 좀 있다 하는 별다방 같으면 만원은 기본으로 넘길 텐데 커피·차 한잔 마시고 연주자에 대한 팁 다 포함해도 4000원 정도밖에 안 나왔으니 정말 싼 거다. (특히나 관광 명소 카페라는 걸 감안한다면 말이다.) 아마 그런 카페 한국에 있으면 애용해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남기고 싶은 건 러시아 여행은 꼭 여름에 가라는 것. 3월 말이면 한국에선 한창 봄기운이 오를 때지만 러시아는 한국의 가장 추운 한겨울 날씨와 비슷하다. (시베리아 추위란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잔잔한 강물은 아직도 얼어있고 이틀에 한 번꼴로 눈이 내려 그 위에 하얗게 쌓여있다. 바람도 제법 거친 편(이지만 스웨덴보단 약한 듯?). 또 공원·교회 등을 감상할 때도 그 앞에 꽃이 피어있거나 이런 걸 보려면 여름에 가야 한다. 스웨덴은 그래도 멕시코난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겨울이라도 기온이 크게 내려가지는 않지만 러시아는 내륙 기후기 때문에 연교차가 매우 커서 그 점을 주의해야 한다. (겨울과 반대로, 여름엔 스웨덴이 더 시원하다고 함)

냠, 졸려서 슬슬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