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경쟁이고 노력인가

오늘 학교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의 강연이 있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행복과 선택’이라는 제목의 강연이었고, 내용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좋은 말씀”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고, 아이패드2 추첨(!)도 한다기에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하고 가본 것이었다.

강연 내용은 평이했고, 끝나고 2개의 질문이 있었다. 첫번째는 어느 교수님의 질문이었는데 평등의식과 교육열이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과 최시중 위원장 자신도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중1 때 6·25 겪음) 극기와 노력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내용에 대해, 최근의 젊은 세대들은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어떤 좌절감을 많이 느끼는데 그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강연 내용처럼 답변도 평이했다. 이명박도 농부의 아들이고 자기도 어부의 아들이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 부단히 노력해서 성공한 것이니 열정을 가지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은 어느 07학번 학생이 했는데 맨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내용 설명 중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무조건적 무상복지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언급이 잠깐 들어간 것을 두고, 그럼 위원장님은 어떤 것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잘 살기 위한 복지모델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일단 이 강연은 일반론적인 맥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못박은 다음, 최근 이슈가 되었던 통신료 인하를 예로 들며 통신사들이 지속적인 망 고도화 투자를 하려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인하해줄 수는 없듯이 복지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상복지에 대한 두번째 질문이야 개인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니 그렇다치더라도,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많이 아쉬웠다.

강연 주제가 ‘행복’이었던만큼,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가족이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부분은 부모님과도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는 그 행복이 ‘앞으로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고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점에서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도 각 개인이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 있든지 앞으로 노력하면 내가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당장은 힘들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의 젊은 세대가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이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답변으로 미루어보건대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나 선거를 통한 정치권력 교체 등 기본적인 자유 민주주의의 틀은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존에는 학연과 지연이 계층간 진입장벽이었다면 이제는 경제력의 차이가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규제와 통제는 날로 늘어만 가고(그것도 특히 IT 분야에서) 언론조차도 광고수입과 재벌유착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계급이 없는 사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1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말마따나 높은 교육열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그 경쟁의 과실이 자신한테 돌아온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최근의 신부님 강론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서에서 욥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경쟁 과정 자체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이겨냈을 때 그 과실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버틸 수 있지만, 자신이 속한 시스템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경쟁이지만 그 경쟁을 통해 경쟁자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면 누가 행복하겠는가.

물론, 언제나 그렇듯 젊은 세대·기성 세대를 막론하고 소수의 과실을 따먹는(내지는 독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 된다. 어떻게 보면 최시중 위원장 본인도 그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과 달리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자리에 올랐으니 그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그 사람들이 가졌던 기회와 희망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대신 그 부족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기득권층이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회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로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개로 말이다. 문제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기회가 있으니 노력하면 된다는 것만 강조할 뿐, 기회에 대한 믿음(=희망)을 잃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연 끝나고 같이 들었던 선배와 밥먹으며 이야기하다가, 예전에 장병규 선배님이 오셔서 강연했을 때 누군가 ‘실패했던 경험을 들려주세요’라고 했더니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성공만 해봐서 모르겠다’라고 하는 바람에 갑자기 확 공감이 안 되더라 하는 경험담을 들었다. 오늘 강연에서도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항상 감사하고 겸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나는 가수다’나 ‘위대한 탄생’과 같은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일반인들이 거기에 출연하는 가수 지망생들에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존 가수나 아이돌들도 많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지만(이쪽은 ‘강심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구나 끼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 손쉽게 시도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과 출연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통해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직접 노출시켜주기 때문에 보다 쉽게 공감하는 것이다.

요는, 모든 부를 똑같이 나누어 공산주의처럼 살자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2 그러려면 투명하고 공정하며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 강연을 들으며, 우리나라 IT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최시중 위원장이 그런 희망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서 신중한 고려를 보이지 않았음에 실망했다.


  1. 이런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대의적 정치 제도가 과연 자본주의 체제에서 완전한 공정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2. 요새 인터넷 돌아다니다보면 뭔가 조금만 기득권에 반하는 이야기만 하면 빨갱이 좌파라고 하는 것이 많이 보여서 노파심에 적은 말이다. 지금의 제도와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최선인가요?’라고 묻는 거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경쟁과 다양성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실 나는 워크샵 논문 데드라인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오늘 미팅하고 내일 미팅도 있는 그런 급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미 세 차례나 있었던 자살 사건들을 보고 또 여러 경로로 여러 관점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일단 데드라인이 지난 후에 생각을 좀 정리해볼까 했었는데, 오늘 또다른 비보를 접하고 더 이상은 안 되겠어서 글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대학생들의 자살 수가 2~3백명 정도 된다고 하지만1, KAIST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놓고 전략적으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기에 그 파장이 더욱 크다. 게다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많은 자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학점에 따른 징벌적 수업료 부과, 재수강 제한, 연차초과 수업료 부과 등에 따른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경쟁 분위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일단 지배적이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

실제로 2007년 이후 많은 비학업 동아리가 위축되는 경향을 보여왔으며,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대평가를 시행하는 우리학교 상황에서 학점에 따른 수업료 부과는 심리적으로 아주 큰 압박이 된다. 안 그래도 전국의 과학고와 여러 고등학교에서 모아놓은 우수한 학생들끼리 경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입학사정관제라면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닌 ‘창의력 있는’ 학생을 뽑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올해 처음 있었던 로봇영재 조군의 자살이었다.

서남표 총장이 3일 전에 전체 이메일을 돌렸다. 그 중에 두 문단을 뽑아보면 이렇다.

학생들은 미래에 직면할 도전이나 기회에 대해 실제 겪어 볼 수 없고,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라는 상상만 하기에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예전 세대들이 가질 수 없었던 많은 편리와 기회를 누리고 있으며, 가중된 압박감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되는 대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은 거의 모든 면에서 상응관계(quid pro quo)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해결책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렸다고 봅니다. 만일 우리가 ‘항상 이길 수는 없으며, 나중에 이기기 위해 때로는 지금 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주위의 성공한 사람들도 이전에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해봤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런 맥락 없이 보면 위인전에 나올 것 같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몇 명씩 자살하고 있고, 그 원인 중 하나가 자신이 만든 학교의 지나친 경쟁 시스템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보내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과연 이런 말을 떳떳이 고개들고 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보는 관점에 따라 남은 학생들에게 더 노력하면 된다고 말한 거라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희생이 자살한 학생들을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하면 섬뜩하지 않은가.

서남표 총장은 세계 최고의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 경쟁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매우 제한적인 부분에서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학점이 중심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점을 잘 받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실하고 맡은 바 일을 잘 해내는 경향은 있지만, 학점을 잘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학점을 잘 받는 사람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가치있는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breakthrough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왔다. 그리고 경쟁이 가장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수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peer pressure가 클 때다. KAIST라면 그 조건은 충분히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를 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그리고 KAIST는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일정 부분 우리나라에 그러한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인재들은 체계적으로 양성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특성이 있다. 틀에 얽매이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언젠가 전산과 김진형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전산과에서 학점 잘 받는 그런 학생이 아니라 학점 좀 안 나와도 정말 ‘슈퍼코더’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도 받아들이고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길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런 생각이 좀더 정제된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내가 학부 저학년이었을 때 동아리 고학번 선배들이나 더 위의 90년대 학번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업 좀 땡땡이치고 그러면서 며칠 밤낮을 만들어보고 싶은 거 만들어보고 그랬다고 한다.2 실제로 그런 사람들 중에 크게 사고를 친(?) 케이스도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벤처기업가가 되어 역할모델이 되기도 한다.3 4

과연 지금의 KAIST 학사 경쟁 시스템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을까? 공부를 잘하고 유학가고 대학원에서 좋은 논문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엘리트코스를 밟아 사회지도층이 되는 사람들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기존 제도적 틀을 깨고 만들어내는 사람은 나오기 어렵다.

예전의 KAIST는 비록 학점이 좀 안 좋아도 학교는 마음껏 다닐 수 있었고, 이미 학사경고 제도를 통해 정말 최소한의 한계점은 지정해놓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20대에 박사 따고, 어떤 사람은 사고 치면서 10년만에 겨우겨우 졸업했지만 벤처로 성공하기도 했다. 과연 후자가 전자보다 못하며, 국가의 세금을 낭비해 공부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학교육이란 그러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모두가 공부 잘 하는 길을 가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KAIST가 또 하나의 학원이자 세금으로 운영하는 사교육장이 되지 않으려면 그런 점을 살려야 한다.5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일련의 자살들은 모두가 똑같이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은 아니다. 최근의 한 학생 같은 경우는 과학고 출신에 공부도 곧잘 하는 경우기도 했다. 여러 경로로 전해들은 바, 몇몇은 이성관계나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 및 원래 가지고 있던 우울증 등이 좀더 큰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과학고-KAIST 코스를 밟든,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깊게 파다가 입학사정관의 눈에 띄어 들어오게 되었든, 대체로 이공계 분야 특성 상 사람들이 외골수 경향을 보이는 편이다. 왜냐하면 고도의 집중과 온 뇌를 동원한 맥락 구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복잡한 과학기술 문제를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사람의 뇌가 이런 쪽으로 친절하게 진화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보니 대학이라는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넓은 공간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나도 학부 저학년 때 동아리 2개를 한꺼번에 뛰다가 맡았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거나 대안을 마련하지도 않고(그 정도는 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좀 힘들었던 적이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동아리 정모에서 선배들의 ‘까대기’와 설전이 오가는데 그 분위기가 자못 무거워서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적도 있다. 지금 와서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잘 견디고 그런 경험들을 반면교사 삼아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사회 활동을 하며 다양한 좋고 나쁜 인간관계를 겪어보신 어머니 덕분에 인간관계 문제가 있을 때 어머니와의 상담과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 상황일 때 피아노를 두들긴다(…)거나 하는 방법들도 사용한다. 또, 종교적인 문제를 깊이있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geek한 전산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서로 자기가 작곡한 곡을 쳐주며 교감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그런 취미나 인간관계에서의 소소한 다양성과 유대감은 스트레스 해소의 직간접적인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이 좋은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창시절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어렸을 때부터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면 항상 들어주셨던 어머니의 격려였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항상 그걸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가족 중심의 인간관계에서 동아리나 수업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과 선후배가 인간관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런데 이성문제가 생기거나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학부 저학년 때는 (지나고보면 학부 4~5년 금방이지만) 앞날이 막연해보이는 법이다. 기숙사 학교라는 특성 상 혼자 틀어박혀있기 좋고, 외골수 기질까지 더해지니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매우 쉬운 환경이라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무엇이든 간에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왔고, 나는 이런저런 기회로 외부에서 오픈소스 활동을 하며 전산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내가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KAIST는 일반적인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특히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매우 쉬운 곳이고 그렇기에 자살에 취약하다.

서남표 총장이나 우리 학교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경쟁에 몰아넣는 학사시스템을 없애고 각 개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거기에 더불어 학생사회가 더욱 다양성을 가지고 많은 동아리들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학생들끼리의 자연적인 커뮤니티가 발생할 수 있는 그런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기숙사와 강의실과 식당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앉아서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함께 과제도 하고, 악기 연주를 할 수도 있고 맥주 마시고 떠들 수도 있고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일단 그러한 여유가 생기려면, 학업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심정적으로 소모되어 지친 상태가 되면 안 되기에 학사제도 개선이 조금 더 시급한 문제라 생각한다. 건전한 경쟁은 꼭 필요하지만, 경쟁이 삶의 여유를 갉아먹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외부에서는 KAIST 학생들은 세금으로 공부하는 것이고,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에 공헌하는 것이 도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다양한 문물을 접하며 성장하는 지금의 학생들은 과거 70~80년대처럼 허리띠 졸라매어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이 더이상 정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 창의적인 실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시대도 그런 것을 원한다. KAIST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며, 특히나 이제는 그것을 강요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KAIST는 이공계가 중심인 대학이지만, 공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학생들이 감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해지고, 인간관계를 다양화할 수 있는 방법에도 신경써야 한다. 물론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을 자부하는 만큼,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 부분에 신경쓸 수 있는 수준이 된 만큼 가능하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비약적인 생각이지만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한쪽으로 쏠리기 쉽도록 병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느 후배가 트위터에 명언을 남겼다. 명령하는 사회가 아닌 설득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공부하라고 명령하는 학교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싶어지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추가: 사실 나는 이 글을 다소 마음이 급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채 적다보니 좀 정리가 안 된 감이 있다.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서 무엇이 본질이고 중요한 문제인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아주 잘 정리한 글이 있어 링크한다. 카이스트, 4월 7일


  1. 2011년 3월 27일자 MBC 뉴스 “벼랑 끝 대학생들‥한 해 2-3백명 자살” 

  2. 내가 대학원에 와서 특히 더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학문적 성취가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삽질(전산과를 예로 들면 프로그래밍 그 자체)을 잘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학문을 하면 되지만, 엔지니어링이 결합되지 않으면 학문에서 나온 결과를 활용할 수 없다. 나도 가끔 내가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다. 

  3. CEO 노정석. ABLAR Company. 이분은 블로그 벤처인 태터앤컴퍼니를 만들어 한국 기업 최초로 구글에 인수되도록 하기도 했고, 지금의 티스토리도 태터앤컴퍼니의 작품이다. 

  4.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 블루홀스튜디오 대표. 인터뷰 참조. 

  5. KAIST는 연구중심대학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해왔는데, 사실 교육과 연구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교육도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한 교육이냐 실용적인 기술들을 잘 다루게 하기 위한 교육이냐에 따라 방향이 많이 다르다. 이점에서 전산과도 이론 분야와 공학 분야는 하는 일도 그렇고 요구되는 능력도 매우 다르다. 그래서 김진형 교수님이 슈퍼코더 양성에 대해 새로운 대학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셨던 것이다. (링크 참조

도구의 중요성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 했던가? 사람이 지금처럼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헤매지 않아도 될만큼 생산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산성은 바로 도구의 사용에서 비롯한다. 기왕이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좀더 빠르게, 적은 노력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도구다.

현대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컴퓨터를 사용한다. 나처럼 직업적으로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인터넷 서핑, 게임, 문서 작업 같은 건 거의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그런 사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컴퓨터의 목적도 도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은 조금 비싼 도구라는 정도?

사람들이 컴퓨터로 하는 일 중에서 문서 작업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 MS워드나 아래아한글 같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할 텐데, 여러 문단의 서식을 한번에 바꾸거나 자동 목차 생성에 활용할 수 있는 ‘스타일’ 기능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또, 인터넷 서핑을 예로 들면 웹브라우저에 확장기능을 설치해 광고를 차단한다거나 마우스 제스처로 서핑을 좀더 편하게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워드프로세서나 웹브라우저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이지만, 의외로 이들 도구를 속속들이 잘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전산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이다보니, 남들하고 똑갈은 소프트웨어를 쓰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걸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쓴다. (때론 직접 만들기도 하고.) 그러한 고민의 순간에는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날수록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위에서 이야기했듯 컴퓨터와 거기에 올려진 소프트웨어라는 아주 좋은 도구들—표현하자면, 인류 문명의 가장 최첨단을 달리는—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 생각 외로 적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런 더 좋은 사용방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옆에서 누가 알려주기라도 하면 시도라도 해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배울 의지도 있고 가르쳐줄 사람도 있지만 여러 현실적 여건(특히 시간부족)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사용방법들은 책이나 매뉴얼을 그냥 읽는 것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직접 그렇게 써봐야 익혀지는 경험적 지식이라서 더 전파속도가 느리다. RTFM(“Read the fucking manual”)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결국 써보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내가 학부 때 SPARCS 동아리 활동과 Textcube 개발 활동을 하면서 얻은 소득이라면, 전산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여러 소프트웨어 도구들을 상당한 수준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학교 수업만으로는 그런 도구를 잘 쓰게 되기 매우 어렵고,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일일이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 또한 더 중요한 지식 전달에 방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동아리에서는 몇몇 선배님들이 도구 사용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역설했고, 나또한 그러한 경험을 쌓으면서 그에 공감할 수 있었다. (좀더 넓은 인간관계를 경험해본다는 점에서도 동아리 활동이 중요하지만, 전산을 하는 사람이라면 도구를 제대로 익힌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이론적 지식이 많아도, 요즘엔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기 때문에 자기 아이디어를 prototype이라도 남에게 직접 보여주고 경험시켜주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도구를 잘 사용하는 것은 자기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구현하는 데 이르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래서 도구를 잘 사용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도구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전산 분야에서 유명한 농담 중에 ‘야크 털깎기(Yak shaving)’라는 것이 있다. 원래 하려던 일은 나무를 깎으려던 것인데, 도끼가 더 잘 들면 나무를 더 빨리 벨 텐데 해서 도끼 날을 세우다가, 좋은 숫돌이 있으면 도끼 날을 더 잘 세울 텐데 해서 좋은 숫돌이 있는 곳을 수소문하고, 저 멀리 어디 있단 얘길 들어 야크를 타고 가려다가 야크 털을 깎고… 로 이어지는 무한삽질(…)을 비유한 것이다.

한 마디로, 도구를 잘 다듬고 잘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좀 불편하긴 해도 주어진 도구로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있다면 굳이 새로운 도구를 찾아나설 필요는 없다. 헌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동작하는 것은 아니라서 나도 가끔은 본래 목적과 상관 없는 엉뚱한 곳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곤 한다. (바로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쓸데없는 장인정신’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뭐… 내 나름대로는 그런 작은 삽질들이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고 위로하기도 하지만;;1

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소프트웨어들도 잘 알고 쓰면 좋은 기능이 많다는 것과 바쁠 땐 어쩔 수 없더라도 자신이 쓰는 도구를 좀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괜히 평생교육이란 말이 나온 게 아니지 않을까.


  1. 이런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다른 분야에 비해 전산은 자신이 개선한 도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세계적으로 전파시키기 쉽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오픈소스가 바로 그것이다. 

엔지니어링의 어려움

요즘 연구실에서 워크샵 논문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 얼핏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하면서도, 막상 실제로 구현하려면 꽤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서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있는 코드 분량이 꽤 되고 리눅스 커널 드라이버도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프로그램인데다 성능도 민감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다.

문제는 추상화다. 나도 ‘추상화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나중에 유지보수할 일’을 생각해서 코드를 짤 때 되도록이면 기본적인 추상화는 하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데드라인이 생기면서부터는 이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 된다. 추상화는 잘 할수록 나중에 좋지만, 데드라인이 있는 일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하고 포기해야 하는데, 가끔 이럴 때 장인정신(…)이 발휘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이쪽 시스템 분야로 내공을 쌓으신 연구실 선배와 이야기하다보면 많이 느끼는 차이점이 있다. 프로그램의 어떤 부분에서 임의의 16-bit integer key로 table lookup을 해야 하는데 나는 이것을 hash table로 짜야 되나, 그럼 이걸 어떻게 간단하게(적은 노력으로) 짤 수 있을까, 라이브러리를 쓴다면 뭘 쓰는 게 좋을까, C++ 인터페이스를 쓰는 게 좋을까 그냥 C로 하는 게 좋을까, random dereference를 하면 그 자체가 lookup 오버헤드가 되지는 않을까 등등등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하는데, 선배들과 이야기해보니 간단하게 그 table에 들어가는 item 개수가 많아야 수백개 정도일 것이므로 그냥 array에 때려박고 index로 접근하게 한 다음 table 변경될 때도 일부만 잘 고치려 할 필요 없이 전체 다 재생성하도록 해보고 나중에 성능 보고 더 나은 방법을 쓸지 말지 결정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니까 요는 처음부터 너무 미래의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일단 지금 필요한 수준에 맞게만 구현하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가서 고치자는 것. 이 이야기를 건축에 비교해볼 수 있다. 물리학이나 공학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상징성이나 예술성이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같은 기능적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료가 들어갔으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점 그것이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쓰게 되는데—사실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가 그렇다—처음부터 프로그램을 모든 경우를 대비해서 비대하게 짤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씩만 덧붙여나가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

그나마 ‘얼핏 보기에 간단한’ 정도의 일도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데, ‘얼핏 보기에도 어려운’ 정도의 일을 하려면 아직도 내공을 더 많이 쌓아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게 항상 끊임없는 의사결정의 과정인지라 개발자 자신이 처한 사회적 맥락, 프로그램 코드가 속해있는 기술적 맥락 모두를 잘 꿰뚫어보지 않으면 여러 의미로 좋은 코드가 나오기가 정말 어렵다.

(살짝 덧붙이자면, 그래도 ipv4와 ipv6를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통합하려고 했던 시도는 그나마 빨리 접어서(…) 다행이다. -0-)

내가 신앙생활을 바라보는 관점

내가 블로그에는 일부러 종교적인 이야기를 거의 올리지 않는 편인데, 이번 주일의 신부님 강론이 내가 고민해왔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신앙에 대한 관점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어 기록으로 남긴다. 아마 세월이 좀 흐른 후에 이 글을 돌아보면 초심을 잃지 않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늘 들었던 강론은 내가 평생 성당 다니면서 들은 강론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살짝 설명을 곁들이자면, 가톨릭의 미사는 크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2단계로 구성된다. 말씀의 전례에서는 구약, 신약, 복음의 일부분들이 낭독되고 성찬의 전례에서는 예수님이 세운 성체성사를 제사로써 재현한다. 보통 그 사이에 20분 가량의 신부님 강론이 들어가며, 강론에서는 보통 그날의 복음을 신부님의 묵상을 곁들여 해설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주교나 교황의 메시지를 대신 낭독하기도 한다. 각 미사마다 축일 여부나 가톨릭 전례력에 따른 의미와 주제가 부여되어 있고 성경에서 그와 관련된 부분들이 발췌되어 사용된다.)

오늘 나온 복음말씀은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37절까지의 내용으로, 예수님이 유다인들이 지켜온 율법들을 다시 설명하면서,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매일미사 참조) 먼저 신부님의 강론 내용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옮겨보았지만 역시 한 단계 거치는 것이라 본래의 그 감동(?)이 다시 느껴질런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나 잘못 전달하는 부분이 있을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농부가 씨뿌리는 건 무엇을 믿기 때문일까요? 씨를 심으면 열매가 가득 열리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딛고 서 있고, 지금 이 성당에 들어와 앉아있는 것은 그 땅과 성당이 우리를 받쳐주고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고를 겪기도 하고 믿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 믿음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기에 믿음은 너무나 쉽게 흔들립니다.

믿음보다 더 강한 힘이 있는데 그것은 희망입니다. 우리가 어지러운 세상의 불의를 보고, 자연재해로 삶을 터전을 잃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다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시간에 의해 제약을 받습니다.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뭔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없다면 희망을 잃게 되고 우리는 절망 속에 살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농부가 단순히 소출만을 기대한다면, 지속되는 흉작 후엔 포기해버리고 말 것이지만 천직에 재한 애착심이 있기에 다시 씨를 뿌립니다. 친구에게 몇번씩 배신당해도 우정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은 친구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뒤에 앉아계신 형제 자매님들 잘 들으세요.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의지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남편이 기댈 만한 곳이 못 되더라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에게 기대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아내가 보잘것 없는 여자임을 깨닫더라도 계속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자식들에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설령 그동안 실컷 늘어놓았던 자식자랑이 헛되이 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실망하지 않도록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사랑해야 그들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여러분, 교회로부터 무언가 얻어가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교회 공동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십시오. 교회는 뭔가 얻어가는 곳이 아니라, 이미 얻은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전시장입니다.

다들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 들어보셨지요? 종교를 초월하여 그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오는 고통까지도 사랑하신 하느님(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의 모습을 하느님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부처님이든 마호메트이든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종교와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바로 그 갈증을 채워준 것이지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태석 신부님은 누가 떠밀어서 그곳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분에게 그 일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갔고,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그 일을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성경구절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율법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형식에 매여 그 근간에 깔려있는 사랑을 보지 못함을 비판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온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 사랑의 힘으로 밀려 움직이는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을 하늘에 있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항상 함께 하는 분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 2011년 2월 13일 연중 제6주일 청년미사에서 이상일 야고보 주임신부님

이쯤 되면,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과학적으로 하느님이 존재하느냐, 혹은 하느님을 인격신으로 봐야 하느냐 자연신으로 봐야 하느냐와 같은 논쟁은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존재의 형식이 무엇이건 간에, 하느님은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사랑의 가치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알려주신 분이다. 흔히들 그리는 이미지처럼 천국의 옥좌에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서 삶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존재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하느님이라는 실체가 없다 해도 좋다. 창세기와 구약은 단순히 신화이고 성경은 예수라는 인물의 행적이 후대에 와서 신격화되어 포장된 것이라 해도 나는 상관없다. 역사적·과학적 사실이 무엇이건 간에, 삶을 살아가는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길을 가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팻말을 큼직하게 붙여놓고 전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구원이라는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오라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이 강론에서는 교회에 무엇을 얻으려 오지 말라고 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계기가 전화위복이기에 신앙도 구복적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심지어 사후세계에 대한 일종의 보험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자세에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이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과 지향해야 할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죄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분명히 성경에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나가는 것이나 세례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기저의 어떤 근본적인 변화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해성사로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도, 어떤 죄의 행위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좀더 신앙적으로는 ‘하느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복원한다’라고도 표현한다.)

그래서, 나는 대놓고 ‘하느님을 믿습니다!’라고 외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전도하지는 않는다. (뭐, 미사 때 기도문에 나오는 정도는 하지만.) 그 대신, 나의 삶을 영적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생각하고 그 존재와 함께 걸어감으로써 더 강해지고 편안해지는 나를 보고자 한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만나본 몇몇 사람들처럼 ‘세상에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자아가 강한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별로 필요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스스로 혼란에 빠질 때 최소한의 판단의 기준으로서 사랑의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에 나는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는 대신에, 내가 내 삶의 자리에서 그러한 사랑의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향기가 퍼져나가듯 은근히 국물이 배어나오듯 그러한 가치가 따를 만한 가치이고 복잡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탱함과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향임을 설득하고 싶다. 이태석 신부님처럼 아주 짧고 굵게 그 모든 가치를 한방에 보여주고 가실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며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도 없을 것이다.

나도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아서 살다보면 죄도 짓고 화도 내겠지만, 적어도 반성할 때라도 그 기저에 깔린 가치가 사랑인지 항상 되짚어볼 것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사랑과 복을 받고 자라서일까, 이따금 사람들에게 좌우명 삼아 말하듯, 내 재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 그 근간에는 나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다.

오늘 강론에는, 얻으려 하지 말고 사랑하여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로는 어머니가 대략 나이 오십 중반을 넘기고서부터 자주 해오셨던 말씀들이, 영적 갈증에 대해선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한 친구와 여러 차례 걸쳐 나눴던 대화들이 모두 녹아들어있었다.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강론 중에 ‘하느님은 도덕교사가 아니다’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그것의 더 깊은 뜻은 아직 모르겠다—때로는 논리적 엄밀함 대신 마음에 와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1. 이 강론이 최고로 느껴진 것은 신부님이 물론 강론을 잘 하신 것도 있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경험과 축척된 생각들이 접점을 만나는 순간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정치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

아마도 내 또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알더라도 별로 관심이 없거나. 이를 환기할 만한 일이 있어 포스팅해본다.

얼마 전 교수님이 포워딩하신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학교 부서 중 하나인 연구처라는 곳에서 “연구노트 관리지침에 대한 안내문”이란 제목으로 보낸 거였다. 요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10년 8월 11일에 전부개정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이 201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우리 학교 또한 자체 연구노트관리지침을 만들어 관리해야 하니 그 지침을 준수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몇가지 주요 조항이 첨부되었는데, 그 중에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모든 연구노트를 KAIST 소유로 하고 사본 소유를 원할 경우 연구책임자 승인과 기록관리팀 서면 보고가 필요하다는 제7조(연구노트의 소유) 부분이다.

연구노트를 양식에 맞춰 일일이 기록하고 연구책임자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든지, 전자연구노트 프로그램은 (가상머신이나 원격데스크탑을 쓰지 않는 한) 절대로 MacOS나 Linux에서 이용할 수 없는 구조라든지 하는 불편함은 둘째치고라도,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아이디어나 관찰을 연구노트에 기록하게 되면 그것이 KAIST 소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궁금해서 그 근거라고 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대해서 좀 조사를 해보았다.

우선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법에는 여러 등급(?)이 있는데 다들 알다시피 헌법이 가장 상위의 법이고 그 아래에 법률이 있다. 그런데 이 법률을 잘 보면 실무적이거나 자세한 부분들은 ‘~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와 같이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부분 해당 법과 관련된 실무부처에서 시행령을 만들어 국무회의에 올리면 대통령, 국무총리 및 관련 국무위원의 심사와 서명을 거쳐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는 중앙행정부에서 만드는 법이라면, 지방자치제도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법들은 조례라고 한다.

해당 규정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의한 것으로, 2010년 2월 4일 개정된 ‘과학기술기본법’을 바탕으로 2010년 8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와 안병만 교과부장관의 서명을 거쳐 통과된 것이다.

과학기술기본법 제11조의3(국가연구개발사업결과물의 소유·관리 및 활용촉진) 조항을 보면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결과물은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연구형태와 비중, 연구개발결과물의 유형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연구기관 등의 소유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2010년 8월 11일에 전부개정·공포된 규정에서는 제20조에서 해당 부분을 자세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주관연구기관의 소유가 되는 대상물 중 하나로 문제의 “연구노트”가 명시되어 있다. 개정되기 전에는 없었다.

※ 참고로 위와 같은 법령 정보는 국가법령정보센터라는 곳에서 손쉽게 검색해볼 수 있다. 모든 법령은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에 의해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어있음은 물론이다. 나름 잘 만들어놔서, 언제 어떻게 개정되었는지를 해당 조항에 대해서는 일종의 diff처럼 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것 또한 ‘학교의 새로운 정책’으로 생각해서 이놈의 학교가 또 왜 이러나… 싶었는데 자료를 뒤지다보니 (학교가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외부의 정치적 요인이 이렇게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법적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결과물을 국가나 주관연구기관 소유로 못박는 것 자체도 그렇고, 법의 개정 이력을 뒤져보니 점점 법이 구체화되는 게 어쩌면 정부가 말하는 소위 ‘선진화’의 방향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case by case로 주관적 해석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겠으나 전반적으로는 국가가 너무 많은 걸 통제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사안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세금으로 한 거니까 국가 소유라고 볼 수도 있겠고, 그래도 연구자의 창의성이 발휘된 부분이니까 연구자에게도 공로를 인정해서 공동소유권 정도로 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고, 국가의 지원 목적이 과학기술진흥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결과물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연구자의 소유권·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고 등등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1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이런 법률과 규정의 제정·개정 과정에 실제 연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법률인 과학기술기본법 자체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실무적 세부 지침은 행정부에서 만든 규정을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니 그나마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개입 여지가 있는 법률과 달리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세력가들의 생각과 기조가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인 걸까?

이 규정 개정에 서명한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과연 위와 같은 고민을 하고 서명한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고, 선거 때 후보를 고를 때 이 후보가 어떤 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1. 내가 법률 지식이 짧아서, 여기서 말하는 소유권과 저작권, 저작인접권 등은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큰 도움이 될 듯. 

2010년 회고

드디어 29일부로 드디어 “나의” 가을학기가 끝났다.

올해는 5년간의 학부 생활을 끝내고 대학원생활을 시작한 것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원은 학부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른데, 수업만 들으면 되는 학부 때와 달리 우선 해야 할 일이 압도적으로 많고(대신 수업을 적게 듣긴 하지만) “재밌어보이는 것”과 로드를 고려하여 수강신청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배울거리와 연구거리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학부 때는 주변에서 ‘가능성’의 인재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대학원생은 무언가 실제로 이루어내야 하기 때문에 좀더 압박이 심해지는 것 같다. 사실 이건 직장생활을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업무가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라는 것 자체가 스스로 길을 파야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졸업연한에 대한 부담도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은, 교수님들도 사람(?)이라는 것. 학부 때는 왠지 모르게 교수님이라고 하면–좀 과장하자면–변소에도 안 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교수님들도 정말 바쁘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연구비 따오기 위해서 과제 제안서 쓰고, 다른 교수님들이나 정부연구소 등과 계속 연락 유지하면서 정부과제 로드맵 짜고, 단순히 학회에 참석만 하는게 아니라 학회 논문 리뷰에 session chair 같은 것도 가끔씩 해줘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고, 학생 논문 지도도 해야 하고, 테뉴어 받으려면 실적도 쌓아야 하고… 나는 대학원생이라 일이 늘었다지만 교수님 말씀마따나 농담반진담반 “그래도 게임할 시간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정말 연구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교수도 참 어려운 직업임을 알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듣는 수업들은 학부도 카이스트였기 때문에 쭉 이어지는 느낌이라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논문 읽거나 요약 발표하는 과제가 많아지고 교수님 수업에서는 좀더 근본적인 이야기들 또는 최신트렌드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나오는 느낌이다. 그리고 전산과의 경우 이론 수업이 아니라면 거의 다 자유주제 기말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가 참 골때리는 것이, “잘 하면” 논문도 써보자(임도 보고 뽕도 따고-_-)..는 컨셉인데 사실 연구실 과제나 프로젝트를 하려다보면 이것을 과목 프로젝트에 끼워맞추는 게 쉽지 않아서 후자에 집중하기 위해 과목 프로젝트는 최대한 대충대충 때우려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가을학기에 들었던 분산시스템의 경우 그냥 한번 아이디어로 이야기해본 주제가 교수님 맘에 들었는지(?) 많은 기대(…)를 받아버리는 바람에, 그리고 수업 자체가 프로젝트 중간 발표를 3번씩이나 하면서 계속 progress 점검을 하고 마지막에는 evaluation 결과를 아무도 안 가져왔다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이후로 데드라인을 부왘 연기해버리시는 바람에 매우 고생한 케이스였다. 그래도 프로젝트 내용(peer-to-peer online social network) 자체는 내가 관심있던 부분(소셜네트워크에 시스템적 관점을 결합시켜보는 것)을 과목프로젝트로 작게나마 시도해본 것이라 개인적으로는 나름 의미가 있었기에 다행이다. 다만 evaluation 방법론–어떤 변수들을 측정하고 어떤 변인들을 가정을 통해 통제하고 시뮬레이션은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 아쉽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우리 연구실 석사졸업하시고 NHN에서 전문연구요원하시다가 미국 유학가신 선배가 이번 학기 학교 수업으로 거의 같은 주제의 프로젝트(P2P Twitter)를 진행하셨다는 것이다. (다만 peer와 client에 대한 모델이 좀 다르긴 하다) 일단은 PacketShader에 집중해야겠으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살려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이제 대학원 레벨의 연구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 느끼게 된 것도 2010년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특히 포스터 작성하여 OSDI 학회에 참석하였던 것이 여러가지로 자극도 되고 ‘학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원래 가을학기 때 예정되었던 PacketShader control plane 구현이 빨리 진행되었으면 어쩌면 내년에 스페인 Telefonica 인턴을 간다거나(!)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분산시스템과 조교 로드가 예상 밖으로 쎄서 거의 진행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교도 세 종류를 다 해본 것 같다. CS101은 ‘재미있게’ 했고 CS220은 ‘널널하게’(수강생이 많았지만 대신에 조교도 많아서 숙제 채점 한번과 시험감독 한번만 하면 되었다), CS443은 ‘빡세게’ 한 조교였다. CS101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쓰는 파이썬 언어를 사용한 것이기도 하고 프로그래밍 입문자들이나 문외한들에게 설명하는 연습(?)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해서 재밌었다. 대신 (월급 받긴 하지만) 한 주 6시간이나 연습반에 꼬박 할애해야 한다는 점은 다소 부담이었고 가을학기 때는 수업과 연구 로드를 고려하여 더 하지 못했다. CS443은 원래 MapReduce만 하던 수업을 MPI까지 확장하는 바람에, 그리고 작년과 달리 서버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서 자주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게다가 조교가 나 한 명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다. 나도 내 프로젝트 하느라 한창 바쁜데 학생들이 찾아오면 그래도 응대를 해주어야 할 때, 아침에 자고일어날 때마다 자꾸 서버가 죽어있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서버가 죽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주원인은 사용한 학과 클러스터의 설정 문제로 인한 것이 가장 컸고 그 다음이 로그가 용량을 꽉 채워버리는 경우였다.)

특히 CS443 조교를 하면서 몇가지 노하우를 터득하였는데 이건 다음번에 내가 조교를 하거나 후배가 조교를 할 때 꼭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 숙제 제출 경로는 무조건 일원화. 이메일로만 받는 경우 고유한 제목 형식 명시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0점 나올 수 있음을 사전 고지. gmail 필터링 기능 등으로 숙제 제출 메일은 따로 태깅하고, 위와 같이 엄격하게 체크할 경우 학생 입장에서 수신여부 확인이 되어야 하므로 24시간 이내 이메일 확인 즉시 답장해주기. (내가 받는 메일이 상당히 많아서, 별도로 메모해두지 않은 상태로 ‘읽음’ 상태로 넘어간 경우 성적처리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이번에 발생해서 성적 정정해야 함. orz)
  • 단순 질의응답의 경우에도 제목 형식 지정해주고 안 지킬 경우 응답 없을 수 있음을 명시. 이것도 gmail 필터 적용.
  • 숙제 낼 때 입출력 형식과 결과를 담을 파일명, 전체 압축 파일명 형식 명시. (안 그럼 이런 삽질을…ㅠㅠ)
  • 딜레이의 경우 서버의 잦은 다운 문제로 감점을 최대 50%로 제한했는데 일정 threshold 넘어가면 0점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대 40일 딜레이한 경우가 있었는데 서버세팅이 바뀐다거나 할 경우 채점하기도 힘들어질 수 있고, 누락되기 쉽다.)
  • 조교하다가 했던 삽질은 다음 조교에게 문서화해서 넘겨주기. 이번학기에 문제가 많았던 VC 클러스터의 경우 예전에 CS443 조교하셨던 선배님이 클러스터 관리자를 하면서 설정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분이 조교하셨다는 건 알았으나 클러스터 관리자였는지는 전혀 몰랐고 현재는 별도로 학과에 고용된 관리자가 있기 때문에 설정 문제가 생겼을 때 애초에 그분께 물어볼 생각을 못했음. 현 관리자도 해결못하던 게 그 선배한테 여쭤보니 며칠 삽질하던 게 30분 내로 해결되더라는…
    • 나도 이번 경험은 연구실 위키에 별도로 정리할 생각이고, 서버 세팅이나 관리 관련한 삽질은 이미 어느 정도 기록해두었다. 관련해서 오픈소스화한 코드도 만들어둠.
  • 숙제 내용은 가능하면 학기 시작 전 미리 만들어두고, 이전에 해본 검증된 숙제가 아닐 경우 조교가 완전 구현까진 아니더라도 feasibility test는 해보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면 병렬화 불가능한 알고리즘을 병렬화하는 숙제를 내면 안 되겠지…)

조교를 하면서 힘들었지만, 나는 힘들었더라도 다음에 하는 사람들은 힘들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래야 수업도 나날이 더 나아질 것이고, 교수님도 더 좋은 강의평가를, 조교도 더 좋은 조교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학생들도 좀 덜 고생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것이고.

대학원 생활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내 할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때로는 약아져야 한다는 것.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살아가다보니 하고 싶다고 혹은 부탁한다고 다 하려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마련이다. 이 밸런싱의 묘는 항상 어렵다.

대학원 외의 이야기를 해보면, 중학교 1학년 때 그만둔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 물론 그 이후로도 혼자 취미삼아 계속 쳐오긴 했지만 역시 레슨 받으니 다르다. 물론 바빠서 자주는 못하고 2주에 한번꼴로 하고 있으나 그나마도 11~12월엔 쭈우우욱 밀렸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이어서 할 생각…인데 왜 기숙사는 문지동이 된 건지…ㅠ_ㅠ 이 외에 성가대 시작한 것도 좋은 변화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역시 이것도 문지동 기숙사 크리가…-_-;

한편으로는 2008년 구글에 인수된 텍스트큐브닷컴이 문을 닫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하고, Needlworks 그룹 내부에서도 새로운 인원이 충원되는 등 변화가 제법 있었다. 우리를 오랫동안 리딩해오신 신정규님이 미국으로 파견연구를 나가시기도 했고, 겐도님의 결혼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도 있었다. 오픈소스 텍스트큐브에서는 IIS7 지원이라든지 OSS Camp 참여라든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력을 새롭게 받게 되었다는 것도 한 변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북한정권의 3대 세습, 여소야대의 결과를 가져온 지방선거, 무상급식 이슈, G20 정상회의, 한미 FTA, 예산안 날치기 통과, Wikileaks 등을 통해 정치에 대해 시스템 관점에서 더욱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IT 분야에서는 단연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가 대세였고 우리 연구실이나 내 관심 연구주제 중 하나가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였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10년대의 시작을 스마트폰·모바일 혁명과 함께 시작한만큼 이제 더욱 다이나믹한 기술과 생활 변화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과학 분야에서는 비소기반 생명체의 실증이 이루어지고 칠레 광부 구조 등의 좋은 일도 있었던 반면 나로호가 발사 70초 후 폭발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이상기후가 본격화·일상화된 한 해였다. 2008년까지만 해도 겨울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하더니(스톡홀름에 6개월 살면서 눈을 하루밖에 못봤다) 올해 초부터 폭설과 이상저온이 이어지고 여름엔 폭우와 태풍이 몰아치더니 겨울 초입부터 이상한파와 폭설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인간이 발생시킨 이산화탄소가 이상기후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냐 아니냐에는 논란이 있지만 이유야 어쨌든 기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젠 그 사실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되 변화 추이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2010년 주요사건 돌아보기는 위키백과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또 이렇게 한 해가 갔다. 내년은 토끼띠의 해이니 연구도 잘 되고(…) 좀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ㅋㅋ

민주정치와 자본주의, 그리고 frame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는 것 같다. 인간의 언어라는 게 참 오묘한 것이라서 단어 하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객관적으로는 같은 사실을 이야기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다른 방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논쟁하기도 하고 편을 가르기도 하는데, ‘positioning’이나 ‘framing’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여러 이익집단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끔 보여지도록 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본질과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이번에 G20 정상회의와 관련된 언론 보도 및 각종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반응, 정부에서 만든 홍보 홈페이지 등을 살펴보면서 정치와 인터넷의 관계에 대해 만감이 교차했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을 모아놓고, 그렇기에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한 회의를 우리나라에서 한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홍보 자료들을 읽다보면 무언가 정부(혹은 이명박 대통령)가 굉장한 업적을 남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도 그런 관점이 많았고, 어쩌면 일상을 영위하는 국민들은 별로 알지 않아도 될 것까지도 구태여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 같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상회의 전후로 삼성역에 쫙 깔린 경찰들을 굳이 사진찍어서 트위터에 올리는 것도 봤는데 이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요국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국가 입장에서는 철통보안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가 만약 그날 삼성역을 이용했다면 물론 나도 위압감을 느꼈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간의 행동의 제약이 따르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걸 두고 ‘21세기 공안정국’이라고 볼지 ‘불편하지만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이거 무조건 잘 해야 각하가 힘 좀 받으십니다’라는 자세를 취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인터넷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다보면 내 스스로도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고 frame의 혼란이 온다. 이럴 때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듯하다.1 2

한편으로는 회의 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주재했다고 생각하지만, 괜히 다른 데서 잡음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데에 신경썼으면 더욱 국격이 올라갔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있었다. 두 기사(1, 2)를 보면 단순히 보안에 필요한 만큼 회의장 근처의 시위를 막는 정도가 아니라 NGO에 대해 과잉 예방 조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맨날 철통 보안에 근거로 가져다붙이는 ‘시민의 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것만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는 항상 보장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안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이고 그로 인해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일관성 있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NGO들이 모여서 폭력시위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곳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정상회의 취재 차 온 세계 각국 기자단들에게 그들 나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해줬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다른 나라들처럼 굳이 세금으로 그들의 활동을 지원할 필요는 없지만(물론 그렇게 하면 더 국격이 올라가겠지만) 굳이 막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대안적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하지 못하고, G20 정상회의의 모든 공이 정부(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꼭 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혼재된 채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G20 정상회의를 통해서 그간 우리가 안타까워했던 정부의 자화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또한 그 과정 중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framing)에 따라 내 자신이 보수와 진보를 왔다갔다하는 느낌을 받을 만큼 근본적 가치관들이 더 이상 절대불변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도 그 과정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처음에는 과학이냐 괴담이냐, 확률적으로 안전한 것이냐 하는 쪽에서 논의가 진행되다가, ‘검역도 국방’, ‘검역 주권’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며 10만명 중에 단 한 사람만 영향을 받는 것이라도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예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논리가 전개되었고, 한국과 미국의 역학관계나 정부의 책임론에 촛점이 맞춰졌다. 그러더니 (야간집회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촛불시위가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자 경찰이 사람들을 연행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턴 시위 자체의 합법/불법 여부로 주요 논점이 모아졌다. (그 와중에 반대입장의 정치세력들은 ‘맞불집회’라는 것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정부가 국민과 소통할 줄 모른다며 명박산성이 그 상황을 대표하게 되었다.

촛불시위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여러 평가가 엇갈리지만, 나는 일반인들이 정치적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동시에 현재의 시스템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는 한계점을 보여준 것이 가장 중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구 수에 의한 물리적 한계로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주의를 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포퓰리즘 일변도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불러왔다. 누구나 쉽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은 정보과잉 덕분에 곧 소수 전문가의 의견이 더 옳은 것이어도 그것이 여론의 힘을 받지 못하면 그대로 사장되기 쉽다는 단점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누구나 그냥 물어보면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겠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 특성이 여기에 결합하면 그것이 항상 긍정적 결과로만 이어지진 않을 수도 있단 점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 가치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정보과잉의 시대에 여러 이익집단의 가치가 서로 혼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각자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할 수 있을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여러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어떤 하나의 본질을 가진 문제를 두고 사람들이 각기 속한 집단이나 주로 접하는 매체에 따라 건설적인 토론이 불가능할만큼 표현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framing의 혼란스러움에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무엇이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frame인지 혹은 누가 의도적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frame인지 잘 구분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정치적 사상의 차이를 떠나서, 현대 사회에는 또 하나의 큰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자본이 움직이는 기업들이다. 얼마 전 어느 아는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사회제도로 삼고 있다면 부패가 필연적일수밖에 없다는 것. (심지어 그 유명한 ‘문명’ 게임에서도 통치규모가 커지고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부패비용이 함께 올라간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국가는 표면 상 경제 발전과 기업 보호라는 이유로 너무 관대하지만 그 이면에는 돈이라는 무소불위의 도구로 이미 밑바닥부터 온갖 분야에서 사회를 잠식해버린 재벌이 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대응,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조사나 대응,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에서 나오는 온갖 비리들을 보노라면, 그럼에도 잘먹고 잘사는 책임자들을 보노라면 실로 기업 독재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보편인권이 당연한 개념이 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또 다른 독재 체제로 군림하고 있고 가만히 둔다면 결국 국가와 정치의 공공기능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반드시 견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돈이라는 강력한 수단 덕분에 언론통제가 가능하고 대다수 개인을 월급쟁이로 만들어버려 힘을 못 쓰게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자본이 원하는 frame 안에 모두가 갇히게 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억울하면 돈 벌어라’는 말까지 나올까. 개인의 도덕성이 삶을 영위해야 하는 필요에 무너지는데 개인 스스로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갈지도 모른다. (이미 보편도덕이라는 개념은 말이 안 된다고도 하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IT 기술이 민주주의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오히려 framing의 문제는 더욱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게 만들었다. 민주정치와 자본주의 체계에서 우리가 균형점을 찾아가도록 어떻게 도움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1. 한편 정부에서는 그런 시각에 대해 ‘시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식으로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니 반발심만 공연히 더 생겨나는 것 같다. 차라리, ‘이러이러한 이유로 어느 정도 수준의 보안(어느 지역에 어떤 특성의 경비 인력이 배치되는지 등을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해가며)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들께서는 가급적 의심을 살 만한 행동(구체적 예를 들어가며)을 삼가하여 주시고 정상회의 양일간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잘 설명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트위터에 보니 어떤 사람이 우연히 오바마 대통령을 태운 의전차량 행렬이 지나갈 때 육교를 건너다가 도로가 비어있고 차량행렬이 지나가자 손에 음료수병을 든 채 구경하려 했고, 이때 경비 중이던 경찰에게 제압당하며 아이폰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손상된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것도 사전 안내를 통해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충분히 안내를 했음에도 본인이 몰랐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2. 유명한 웹툰 중에 이번 정상회의를 전후하여 ‘국격을 떨어뜨린다’며 시민들의 일상 행위를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리 사람들이 이명박을 까고 싶어한다해도(…) 왜 사람들이 이렇게밖에 느낄 수 없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라면 회의장 주변의 보안에만 신경쓰면 될 일이지 이렇게까지 억지로 만들어진 모습을 보여주려 해야 했을까(혹은 국민들의 시선에 그렇게 보이도록 해야했을까) 말이다. 

OSDI 2010 출장

앞서 공지한 바와 같이, 10월 1일이부터 8일까지 5박 7일 일정으로 첫 해외 학회 출장을 다녀왔다. 다녀온 학회의 공식 명칭은 9th USENIX Symposium on Operating Systems Design and Implementation (일명 OSDI)이며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렸다. 컴퓨터 시스템 분야에서는 가장 인정받는 최고의 학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출장을 통해 아메리카 땅을 처음 밟아볼 수 있었고, 전산의 기원지이자 중심지인 미국의 파워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미국 유학 중이신 여러 선배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밴쿠버 인증샷
도착 다음날 오전에 스탠리파크 자전거 대여해서 돌다 찍은 사진. 뒤로 보이는 것이 밴쿠버 다운타운.
Main Conference Room
학회 발표가 이루어진 British Columbia Ballroom. 하루종일 저런 어두컴컴한 방에 있으니 더 졸려운 것 같았다;;
Panoramic View from Hotel
이런 날씨에 좀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말이지. (자전거 탈 때 흐리다 워크샵 가려고 호텔 올라오니 맑아진 상태)

본격 논문 프레젠테이션이 이뤄지는 technical session은 3일 동안 진행되었으나, 나는 그보다 이틀 앞서 “Diversities in Systems Research”라는 작은 워크샵에 참석하였다. 학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대학원 생활 잘 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워크샵이었는데, 석사 1년차로서 듣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워크샵이었다. ‘논문은 언제나 떨어지라고 쓰는 것이니(…) 떨어졌다고 해서 펑펑 울고 개인적으로 실망하고 그러지 마라’라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학회는 social networking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알려주고, 대학원 공부하는 요령이나 academic job과 industry job의 차이점 등 유용한 내용이 많았다. (물론 미국 기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교수님, 대학원생들, 인텔과 MS에서 온 사람 등등 30명 정도가 가족적인(?) 분위기로 모여서 진행되었고, 특히 나처럼 해외 학회에 처음 가보는 것이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런 입장에서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본격 tech session에서 말 걸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기에서 학문적 관점의 문제를 푸는 것도 재미있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해본 경험으로는 학문적이진 않지만 현실에서는 중요한 여러 문제들이 있고 그걸 푸는 것도 재밌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박사과정을 계속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된다는 질문을 하였더니, 내가 만든 무언가를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 가장 보람되다면 industry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면 academy로 가라고 명확하게 대답해주더라. (근데 난 둘 다 재밌을 것 같다는 것이…orz) 혹시 둘 다 하고 싶다면 일단 Ph.D를 먼저 따고 나중에 industry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것과, research intern을 반드시 해보라는 조언도 받았다. 참고로, 미국 대학원은 우리나라처럼 석사/박사가 명확하게 분리되기보다는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박사과정을 하면서 중간에 석사 수료를 받을 수 있는 식이었다. 스웨덴 교환학생 때 보면 유럽은 학사+석사를 합쳐 5년에 끝나는 체제였던 것과는 또 다르더라. 또, 연구 동향 세션에서는 MSR/Google/Yahoo 등에서 나오는 논문들처럼 연구용이나 수업용으로 대용량 클러스터를 써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렵더라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인텔에서 온 사람이 Amazon이랑 긴밀하게 일하고 있다며 가상화 클러스터의 artifact 문제를 해결하고 더 많은 research community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이렇게 이틀을 보낸 다음날 본격 학회 일정이 시작되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발표들만 얘기해보겠다. 위의 워크샵에서 했던 미니 포스터 세션에서 FlexSC라는 걸 들고나와서 몇 가지 질문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첫번째 세션 발표였고 그 사람이 1저자였다; Linux systemcall에서 exception을 이용하지 않고 multithread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였는데, 나중에 사람들과 얘기해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나 이 팀이 시기적절하게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 Linux many core scalability 발표는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원래 linux는 scalable하지 않다는 걸 보이려고 하다가 조금(커널코드 5천줄 정도?) 고쳐보니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와서 방향을 반대로 바꾼 거라고 한다. 살짝 기대했던 Facebook의 Haystack 발표는 그냥 잘 엔지니어링했다는 것 말고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거나 한 게 아니라서 실망이었다. 주변에서 태수형의 1저자 발표로 많이 기대했던 selective re-execution은 태수형이 아직 1년차라는 이유로(?) 교수님이 대신 발표를 맡아버려서 아쉽게도 태수형의 발표를 볼 순 없었다. 시스템 침입/침해 사고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re-execution이라는 게 있다는 것 자체를 처음 본 것이라 신기했는데 기존 방법은 매우 많은 리소스를 요구하지만 action history graph를 잘 분석해서 적은 리소스로 복구 가능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대체로, 시스템 분야 발표들을 보니 컴퓨터 성능이 충분히 좋아지니까 기존에 못하던 것들을 약간(수 퍼센트 정도)의 오버헤드를 감수하고라도 더 고차원적이고 새로운 요구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추가하는 느낌, 아니면 기존 구조를 멀티코어 시대에 맞게 고치는 느낌이었다.

또다른 큰 축으로 determinism을 운영체제 수준에서 보장해주겠다는 것이 있었다. 기존 multithreading 모델 자체가 프로그래밍 실수가 잦다(뭐 이쪽 분야에선 수도 없이 나온 이야기이긴 하다)는 점 때문인데, 이들 역시 deterministic하게 만듦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버헤드를 어떻게 잘 줄이느냐가 관건인 듯했다. 특히 deterministic execution 보장뿐만 아니라 record & replay를 가능하게 해서 디버깅을 쉽게 한다는 점은 맘에 들었다. (오에스 pintos 플젝할 때 1000번 돌리면 한번 뻑나고 뭐 이런 버그 잡으려면 꼭 필요한 기능이다. ㅋㅋㅋ) 시스템 설정을 자동화하거나 설정 오류를 잘 잡아주겠다는 연구들도 있었는데, 그닥 잘 될 것 같지 않아서 큰 흥미는 없었지만(…) 그만큼 대규모 시스템에서 사람에 의한 설정 실수가 큰 문제가 되고 있고 research interest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Facebook에서도 설정값 잘못된 것을 자동으로 고치려는 내부 시스템들의 오작동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전체 시스템을 다운시킨 사례가 있었으니 뭐.

데이터센터 쪽 연구들로는 computation과 data를 어떤 캡슐화된 단위로 보고서 클러스터 내에서 어떻게 잘 재배치·재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기존의 MapReduce 모델이 가지는 한계를 해결하고자 한 시도들이 몇 개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Google의 Percolator도 그런 것 중 하나였다. 지난 4월부터 구글 검색 인덱스 백엔드에서 MapReduce를 버리고 Percolator로 바꿨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PageRank를 이걸로 어떻게 구현했는지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BigTable에 distributed transaction을 도입해 수십분 단위의 인덱스 갱신 시간을 문서 단위로 매우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바꿨다는 것이 골자였다. 아마 트위터 실시간 검색 같은 것도 이걸로 구현한 것일 테다. 그리고 “Active” key-value storage를 구현한 Comet 발표도 재미있었다. memcached를 비롯한 많은 key-value storage는 그저 key/value pair만 왕창 저장할 뿐이지만, 여기에 “active” 개념을 도입해서 각각의 pair object가 이벤트 핸들러와 간단한 코드를 가질 수 있도록 하여 application-specific policy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key-value storage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인데 이렇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날 네트워크 시스템 분야의 rule-based forwarding 발표는 active의 의미를 조금 제한하여 원하는 만큼의 유연함은 확보하되 보안과 속도를 잡는 방법을 택했는데, 10년 전에 나왔지만 여전히 유효한 개념을 담은 논문에게 주는 상을 Active Network 논문이 받은 걸 보면 확실히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쪽 연구들이 나올 것 같다.

가상화 쪽에서는 TaintDroid와 Turtles 프로젝트가 눈에 띄었다. TaintDroid는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VM 자체를 고쳐 개별 변수, 파일 등을 모두 추적해서(이걸 얼마나 효율적으로 짰느냐가 강점) 개인의 위치 정보나 IMEI 등이 원하지 않는 시점에 외부로 전송되는 것을 탐지하고 사용자에게 이를 경고로 띄워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능 희생을 조금 감수하고라도 고차원적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 흐름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다. Turtles 프로젝트는 이미 가상화 기능을 제공하는 OS(예: 윈도7의 XP Mode)를 어떻게 가상머신으로 돌리겠느냐 하는 nested virtualization 문제를 다룬 것인데, 아직 CPU 구조 상 지원되지는 않지만 몇가지 방법(multidimensional paging, single-level VMX multiplexing)을 통해 작은(6~8%) 오버헤드로 돌릴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 가상화 환경에서 clock timing을 어떻게 정밀하게 관리할 것이냐 하는 연구도 있었는데 나름 의미있는 작업이긴 하지만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번 OSDI에서 발표된 전체 논문을 보려면 이곳을 방문하면 된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계속 학회 일정이 이어진 데다 시차적응 문제까지 더해 아주 힘들었지만 승엽이형, 태수형, 민종이형, 상만이형, 박소연 박사님 등 미국 유학 중이신 여러 선배들 및 한국에서 오신 다른 분들도 만나고, 몇몇 발표자(FlexSC 발표한 Livio Soares, Rule-based Forwarding 발표한 Lucian Popa)와는 안면도 쌓을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아침에 엘레베이터에서 만나 같이 걸어가면서 얘기했다든지 돌아올 때 공항에서 계속 마주쳤다든지. 하지만 여전히 미국 사람들의 빠른 영어와,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기는 어려웠던지라 좀더 많은 사람들을 못 만난 것은 살짝 아쉽다.

포스터 발표 인증샷

포스터 걸어놓은 모습. 꼬박 한시간 반을 서있어야 했다;

포스터 세션의 경우 내가 포스터 발표를 한 덕에 저녁도 못 먹고(ㅠㅠ) 계속 사람들 와서 질문하는 거 대답해주느라 다른 사람들 포스터들을 거의 못 봐서 좀 아쉽기도 했지만, 내 포스터는 도이치텔레콤의 Rob Sherwood, 유타대학교 Robert Ricci, 인텔의 Mazier Manesa 등 몇몇 사람들이 관심있게 봐주었다. PacketShader가 여전히 임팩트있는 연구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메일로 논문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었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인 실제 라우터에서의 FIB update overhead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본 경우는 다행히(?) 없었다.1 피드백 중에 IPv4는 비교적 간단하게 구현 가능한데 OpenFlow에서는 패킷마다 routing table이 바뀌기 때문에 double buffering 적용이 어렵지 않겠냐는(lock overhead 등) 것이 있어서 이 부분은 내가 OpenFlow를 좀더 공부해봐야 할 것 같다. 포스터 세션 끝나고 정리할 때 한 사람이 안 가고 계속 설명 중이길래 가서 들어봤는데, Yagz Onat Yazr라는 친구가 클라우드 컴퓨팅의 리소스 배분 문제를 설명하고 있었다. 현실의 예를 들어가며 아주 흥분된 목소리로 재미나게(…) 설명해서 이해는 잘 되었는데, 이 친구 말이 논문도 그렇게(!) 쓰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는 농담반 진담반(?) 이야길 해서 다들 웃었다. 아무튼 이 친구 설명은 다들 기술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듣는 사람들도 그런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지만 설명 방법을 좀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포스터 세션 전체 발표 목록은 여기 있는데, “Monster poster session”으로 이름을 바꿨을 만큼 많이 뽑았더라.;

한편 한국인 선배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BoF 세션의 community resource 톡이나 일상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이나 유럽과의 분위기 비교 등을 통해 느낀 것은, 미국이 컴퓨터 시스템 분야는 단연코 원조이자 선진국이며 연구 규모도 크다는 것, 그리고 전체적으로 모든 것을 체계화·시스템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그러한 경향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조금 멍청(?)해도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 대신 사람과 사람의 끈끈한 정은 느끼기 힘들다는 것. 또, 우리는 미팅을 할 때 미리 다 논문도 읽고 그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미국 애들은 발표에 없고 논문에 있는 것이라도 일단 질문하고 본다는 것. 나는 tech session에서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논문을 훑어봤는데 대개 내가 궁금해한 것 정도는 이미 논문에 다 있어서(…그러니 OSDI에 나왔겠지 ㅋㅋ) 질문을 못했는데, 미국 애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일단 질문하고 보는 것 같았다. 선배들 말로는 이게 숙독하는 것과 비교해 나름의 일장일단이 있지만 어쨌든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의 하나라면서, 미국 쪽에서 공부하려면 반드시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번 출장 다녀오면서 역시 한국이 인터넷이랑 공항은 잘 되어 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미국 LA에서 환승할 때는 터미널마다, 항공사 카운터마다 시스템이 달라서 나처럼 좀 특이하게 미국 입국 후 다시 해외로 환승하는 경우는 미리 알지 않으면 헤매기 딱 좋게 되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톰브래들리 터미널(인터내셔널 전용 터미널)에서 내리고 미국 입국 절차를 밟고 수하물을 찾은 후 터미널 2번으로 이동해야 캐나다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정보를 알고 갔기에 망정이지, 2번 터미널 찾는 것도 한참 헤맸고(결국 누군가한테 물어봐서 해결) 톰브래들리 터미널에서는 전광판도 시스템이 아예 달라 캐나다행 비행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터미널을 바꿔 타야 한다는 걸 아예 모르고 갔으면 정말 비행기 놓쳤을 것이다.2 그래도 캐나다에서 돌아올 때는 밴쿠버 공항에서 미국 입국 절차를 다 밟고 LA에서 수하물 찾지 않고 체크인만 다시 하면 되었기 때문에 훨씬 편했지만 이때는 보안검색 줄이 엄청 길었다. 2번 터미널은 오래돼서 시설이 엄청 구렸는데 톰브래들리는 새로 지어서인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공항 서비스면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다. 인천공항과 밴쿠버공항은 무료 Wifi를 빵빵하게 쓸 수 있었는데, LA 공항은 유료 Wifi만 있고 (KT Wifi 로밍도 실패했는데, 앱에서 오프라인으로 제휴사 목록을 볼 수 있었음 좋겠다) 3G망도 엄청 신호가 약해서 배터리 소모가 심했다. 특히 보안검색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신발 벗으면 잠깐이지만 임시로 신으라고 슬리퍼도 주고 바구니도 친절하게 다 가져다주는데 미국과 캐나다는 그런 거 얄짤 없더라.;; 그냥 다 알아서 해야 한다;

참고로 미국 입국은 이번이 처음 해보는 것이었는데, 열손가락 지문 다 찍고 안경과 모자 모두 벗고 얼굴 사진 찍고 하느라 조금 신경쓰이긴 했지만 다행히 무사 통과(?)하였다. 한번 해두니 두번째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갈 때는 오른손 네 손가락 지문과 사진만 다시 찍어서 확인하더라. 입국심사관이 뭐 하러 왔냐고 해서 academic conference 왔다고 하니 거기서 뭐 하느냐, 며칠 동안 있다 갈 거냐 이런 것을 물어봐서 잘 대답하니 별 문제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첫 해외 학회 출장은 나름 잘 다녀온 것 같다. 출장 직전까지 할일이 잔뜩 있어서 쉬지도 못하고(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한 시간 지연된 덕분에 숙제 제출하고 막…아놔) 힘들었지만 사람들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인듯.


  1. 라우터가 설치된 곳이나 설정에 따라 FIB update overhead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서 내 연구가 언제나 항상 가치있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내가 라우터를 많이 다뤄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경험을 토대로 얘기를 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2. 참고로 말하면 미국과 캐나다는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국내선처럼 되어있다. 물론 입출국 절차와 보안검사는 다 하기 때문에, 공항 터미널이 인터내셔널, 국내선, 미국/캐나다의 3가지로 분리되어있다. 

출장 공지

뭐 요즘이야 어디서나(?) 인터넷이 잘 되니 여전히 인터넷을 통한 연락은 닿겠지만 그래도 공지합니다.

내일 10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캐나다 벤쿠버로 OSDI 학회 출장갑니다. “Dynamic Forwarding Table Management in High-speed GPU-based Software Routers”라는 주제로 포스터 발표도 하나 할 예정입니다.

아이폰 데이터+와이파이 로밍을 써볼 기회가 생겼는데 과연 얼마나 잘 될런지 궁금하군요.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

영어로 논리적 글쓰기

요 근래 두문불출(?)하고 바빴던 이유는 OSDI1 학회에 poster abstract2를 제출하기 위해 한동안 삽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때부터 이어서 하고 있던 PacketShader의 후속 프로젝트로, 대략 GPU 기반 소프트웨어 라우터에서 forwarding table을 관리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 때 생기는 이슈들을 다루는 내용이다.

보통 정식논문과 달리 poster abstract는 형식이 자유로운 편이다. (글꼴 크기, 여백 제한, 분량 정도만 지정해줌) 하지만 학회마다 poster abstract를 쓰는 스타일이 상당히 다른 듯한데, 이번 포스터도 처음에는 거의 소논문 같이 two-column layout에 레퍼런스 달고 엄청 길게 썼다가 아무래도 USENIX 학회들은 심플한 걸 원하는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one-column으로 고치고 세 문단을 한 문단으로 합치고(…) 하는 삽질을 거쳐 다시 쓰게 되었다.

예전에 블로그에 잠시 한글/영어 혼용 포스팅을 했던 것이나 스웨덴 교환학생 지원하려고 자기소개서 쓴 것, TOEFL CBT 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것 말고는 영어로 제대로 글쓰기를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히 교수님은 생각보다 잘 쓰는 것 같다고 하시긴 했는데, 역시 처음 써보다보니 실수들이 많았다. 교환학생 시절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서 영어 소설도 빌려읽고 어쨌거나 영어를 많이 쓰다보니 한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관사(a, the)는 그런대로 쓸 만했는데(사실 소유격이나 특정한 걸 지칭하지 않는 복수형은 관사 생략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하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단복수 실수부터 시작해서, 맞춤법 검사가 되는 환경에서 작성하던 걸 갑자기 vi로 옮겨 편집하면서 생긴 오타들(moderm, udpate 등), 그리고 몇 가지 문어체 스타일에서 주로 지적을 받았다. 직접 해설을 써주신 경우도 있고 설명은 없지만 ‘아하, 이건 이래야 하는 거구나’ 깨닫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 also는 피한다든지, usually 대신 typically를 쓴다든지, 주어가 길면 안 되지만 중요한 내용은 앞으로 와야 하고(문장이든 문단이든), 수동태를 피하고, to 부정사를 동사적 용법 말고도 형용사적 용법으로도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 점, 문장 자체를 되도록 짧께 끝내는 것 등이 있었다. 간혹 교수님이 아예 문장을 다시 써주시는 경우도 있었는데 문장 표현이 역시 다르긴 다르더라.;; inureyes님은 챗으로 이야기하던 중 ‘장비나 사물이,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사람만 쓸 수 있는 동사를 능동태로 쓰는 것도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허용된다’거나, MS Word에서 맞춤법 관련 옵션 다 켜고 한번 넣어보면 꽤 많은 문법 오류 잡아낼 수 있다는 팁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그래도 영어 자체에 관한 건 지적받으면 비교적 쉽게 고칠 수 있는 것들이라 괜찮았는데, 내용 전개가 훨씬 더 어려운 부분이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에 집중하다보면, 그 이야기까지 흘러가는 논리적 사고의 흐름에서 무언가 빠뜨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 문장 한 문장이 엮어져 전체적인 근거를 구성해야 하는데 문장들의 연결을 (굳이 접속사를 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논문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이다보니 역시 대세(?)가 막연히 그렇다고 쓰면 안 되고 실제로 숫자값을 찾아서 구체적으로 레퍼런스를 넣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처음 쓴 버전은 이렇게 했으나 abstract화할 때는 레퍼런스 없이 가긴 했다.)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논문이라도 레퍼런스를 통해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색할 때 직접 원하는 정보가 있는 논문을 바로 찾을 수 없더라도 어떤 논문의 레퍼런스를 보면 그 내용이 있을 것이다라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쨌든, 아직 포스터가 뽑힐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로 논리적 글쓰기 과정을 통해 논문 쓰는 게 어떤 것이구나 하는 맛보기(?)를 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렇게 논리 전개를 해나가려고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실제 코딩하거나 일하는 것도 그러한 논리 전개에 최적화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PacketShader의 control plane을 구현할 때 전에는 뭔가 구조적 깔끔함을 고민해가며 진행했다면 이번에는 일단 근거로 제시될 만한 실험을 위한 코딩에 집중하게 되었다. 선배들이 짜놓으신 코드를 보면서 뭔가 구조를 더 깔끔하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놓고 보니 정말 딱 필요한 만큼만 짜고 구조화한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국어로 수필 쓰기에 가까운 블로그를 오래 해와서인지, 논리적 영어 글쓰기는 말의 호흡이 달라서 앞으로 좀더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다음 번엔 좀더 나은 글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Operating Systems Design & Implementation”. USENIX 계열 중 소프트웨어 시스템 분야에서는 최고의 학회로 꼽힌다. 짝수년도에는 OSDI가, 홀수년도에는 SOSP가 열리며 Google File System이라든지 MapReduce 등의 논문도 이 학회를 통해 발표되었다. 

  2. 전산 분야의 학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으로는 크게 워크샵, 테크니컬세션, 포스터세션이 있다. 그 중에 정식논문(full paper)를 제출하고 발표하는 건 테크니컬세션이고, 특정 주제에 대한 논문들을 모아 공유하는 자리가 워크샵(테크니컬세션보다 리뷰가 조금 덜 까다롭다고 한다), 그리고 포스터세션은 현재 진행 중이거나 초기 단계에 있는 연구들의 핵심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피드백받는 자리이다. Poster abstract는 실제 포스터를 만들어가기 전에 심사를 위해 제출하는 1~2쪽 짜리 연구 요약문이다. 

TEDxKAIST: Happiness in Science

간밤에 CS443 조교일로 Hadoop 클러스터 세팅하다가 JVM Heap 크기 설정 문제로 삽질하느라 밤새는 바람에 좀 늦긴 했지만 어쨌든 첫 TEDxKAIST 행사에 다녀왔다. 아무래도 클러스터 세팅도 빨리 해야 하는 일이고 그래서 갈까말까 고민했지만, 공지 메일을 보니 대기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안올 사람은 최대한 빨리 연락달라는 문구를 보고 그냥 안 가버리면 대기자나 주최측에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 늦게라도 갔다.

원래 공지된 프로그램과 순서가 조금 달라졌는데, 첫 순서만 이민화 교수님으로 바뀐 두번째 세션부터는 쭉 다 들을 수 있었다. 이번 학기에 CEO 세미나 들으려다 말았는데(수강하면 조별 토론 준비해야 되고 귀찮아서 시간 될 때 청강만 하러 갈 생각) 첫시간에 나오신 분이 이민화 교수님이었다. 그땐 별다른 인상을 못 받았는데 오늘 발표하는 걸 보니 이분도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신 것 같았다. 아무튼 들은 것들 중에 기억에 남는 발표들에 대해 정리해보면 이렇다.

Homo Mobiliance (이민화)

사실 중간부터 들어서 전체 내용을 다 못 보긴 했지만, 대략 스마트폰으로 인한 모바일 라이프를 통해 사람들은 더 다양한 소셜네트워크 속에서 다양한 모습(다중인격)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스마트폰은 그런 모습들의 아바타로서 작동하게 되는 미래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연구실에서 하는 소셜네트웍 연구 중에 community structure를 node 중심이 아닌 edge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하는 것이 있는데, 어쩌면 이분이 말씀하신 다중인격 개념이 그와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Sweat the small stuff (녹화영상, Rory Sutherland)

요즘 나오는 말들 중에 ‘디테일에 집중하라’ 이런 것이 있는데(책 이름이었던가?), 딱 그것을 설명해주는 내용이었다. 행동경제학이니 이런 말을 붙여 설명하긴 했지만, 결국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규모’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나 권력자들이 많은 예산으로 뭔가 큰 규모의 일을 벌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흔히 말하는 ‘전시성 행정’이 딱 그런 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거나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훨씬 저렴한 비용의 아이디어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로 든 것은 유로스타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60억 파운드를 들이는 것보다 10억 파운드만 들여서 예쁜 걸(…)들이 와인을 서빙하게 하면 속도가 더 느려도 사람들은 만족할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예보다는 엘레베이터에 거울을 설치하거나 투명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듬으로써 타고 있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걸 예로 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했다. 아무튼, ‘디테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은 맘에 들었다.

Experiencing Science and Happiness (박성동 @SATRECi)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카이스트 인공위성 연구센터와 소형위성 개발업체 SATRECi를 만드신 분의 발표였다. (기숙사 화장실마다 붙어있는, 카이스트의 전설 시리즈 중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나 할까.) 1989년 영국에 가게 된 것이 교양분관에서 대학3호관으로 걸어가던 길에 있는 공지를 보고 한 것이었다든지, 그로부터 20년을 기념하여 어은동(…) 모 술집에 모여 찍은 사진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보니 그런 ‘전설’의 사람들이 먼발치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의 내용은, SATRECi로 많은 돈도 벌었고 인공위성 연구센터에서 나올 때 많은 고민도 했었고, 뭐 이런 경험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선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Drive (녹화영상, Dan Pink)

화이트보드 같은 곳에 검정색과 빨간색 마커로 손으로 만화 같은 느낌의 그림과 글자를 그리는 것을 녹화하여 빨리 재생시키고 거기에 나레이션을 담은 형식의 영상이었다. (그림체는 전형적인 미국만화–예를 들면 Ph.D Comics 같은 느낌.)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인가 했는데, 단순한 일은 보상이 많을수록 동기부여가 쉽게 되지만 복잡하고 창조력을 요구하는 일은 보상이 많다고 동기부여가 꼭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오픈소스(…)였는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과정은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고 또 실제로 오픈소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는데도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재미와 자기주도성을 이유로 꼽았다. 나도 이에 동의하지만, 사실 좀더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과 같이, name value를 높이기 위한 어떤 사심(私心)에 의한 동기도 크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건 심지어 Needlworks 내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론은 그런 동기부여 방법을 잘 생각하고 활용해야겠다는 것이었다.

It’s you, KAIST: let’s change the world! (여운승 @CT)

공대생 유머(ㅠㅠ)로 시작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발표였다. 처음에 단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정말 교수님 맞나 싶을 정도로 젊기도 하고, 약간 어눌한 느낌으로 시작해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면 사람들한테 가장 강하게 남은 발표가 아닐까 싶다. 공대생의 비참함(…)을 한참 얘기하다가, 또 공대생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도 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은 결국 엔지니어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삐딱한–즐길 줄 아는–엔지니어로서 잘 살아간다면, 혹은 엔지니어 배경을 다른 분야에서 잘 활용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행복한 삶 아니겠는가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발표 중간에, 단상 위에 놓여있던 의자를 두고 갑자기 이게 왜 여기 놓여있는지 모르겠다며 ‘삐딱한’이란 말의 예를 몸소 보여주어 관중의 폭소를 샀는데, 순발력 있는 발표 기술이 상당히 돋보였다.

It’s good to be unhappy (Don Norman)

컴퓨터로 준비된 영상이나 슬라이드 없이, 칠판에 그린 그림 몇 개와 단어 몇 개로 훌륭하게 소화해낸 인상깊은 발표였다. 처음에 무선프레젠터의 ‘다음 슬라이드’ 버튼이 위여야 하는지 아래여야 하는지, 컴퓨터 GUI의 스크롤바를 움직였을 때 내용이 움직이는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처음 GUI 개발 당시 이 문제로 3년 동안이나 토론했다고 한다. 결과는 보다시피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이지만 정답은 없다–와 같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이야기를 통해 ‘point of view’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잠시 불만족스럽고 불행한 상황에 있더라도 긍정적인 관점으로 살아가다보면 궁극적으로는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특히 사람은 어느 정도의 긴장 상태에 있어야 보다 집중하고 좋은 효율로 일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해보고 상황에 따라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활용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

모든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트위터를 통해 받은 질문들과 관중들의 질문들을 바탕으로 발표자들의 패널토의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무언가 일을 이뤄가려면 좁고 깊은 전문성보다는 넓게 아는 것이 더 도움이 되더라라는 것과 학생 때 가능하면 많은 경험을 해보아라 하는 내용들이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리더십 같은 쪽으로 더 많이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에 대해 노영해 교수님은 TEDxKAIST 같은 행사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성공리에 개최된 것을 보면 충분히 이미 리더십이 있는 것 아니냐고 칭찬(?)을 하시기도 했다.

알고봤더니 행사 스탭들 중에도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홈페이지에서 봤을 땐 잘 모르겠더니만 ㅋㅋ), 아는 친구들이나 후배들도 와서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서 더 좋았다. 마지막에 after party에서는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에 다녀온 경험을 토대로 ‘우주로의 일탈’을 간단하게 발표했는데, 우주인으로서도 하나에 집중한 전문지식보다는 이런저런 분야에 대해 다양하게 알고 있던 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생존부터 과학실험까지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 현재 우주기술의 수준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미래에 일반인들이 우주에 손쉽게 왔다갔다 하는 세상이 되면 그땐 다시 거꾸로 전문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다.)

뭐, 태터툴즈 오픈하우스부터 시작해서 VLAAH DAY라든지 태터캠프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나름대로 좀 다니다보니 사실 위에 나온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이미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직접 들으면 온라인으로 볼 때보다 확실히 motivating되고 더 감동으로 와닿긴 하지만, 요즘은 발표 보면서 그 한순간 감동받는 것보다는 실제로 살면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특히, Don Norman 발표에서, 급한 일에 치이다 보면 중요한 일을 못한다며 중요한 일을 하려면 매일 일정시간 다른 모든 일을 ‘block’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책 쓰는(…) 일이 그렇다는 얘길 했는데, 나도 책을 쓰려다 당장의 학업 때문에 계속 밀리고 밀려서 ‘때맞춰’ 책을 못 낸 것이 매우 아쉬운 터라 큰 공감으로 와닿았다. 학부 때도 그게 힘들었는데 대학원생인 지금은 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ㅠㅠ 아무튼 좋은 이야기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해야만 그것이 정말 좋은 가치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제 다시 클러스터 세팅 살집하러…;

ps. 스탭 중 한분에게 물어보니, TEDxKAIST는 연 1회 이상 앞으로도 계속 지속할 생각이라고 한다. 오늘 못 왔어도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듯. 그리고 발표 내용은 나중에 웹으로도 올려준다고 함.

개인의 역사

가끔 집에 왔다가 TV에서 하는 버라이어티 쇼 같은 걸 보면 연예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요번에 본 것 중에는 송대관의 첫날밤 이야기가 있었다. 첫날밤을 어디서 어떻게 보냈나 퀴즈를 냈는데,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낚시터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밤에 비가 오자 낚시터 근처 논밭에 세워져있는 추수 끝난 볏짚더미로 가서 안을 파내고 움막처럼 만들어 거기서 열렬한 밤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이거 완전 소나기인데’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역사라는 말은 뭔가 거대한 담론이나 흐름(시류, 조류, 대세 따위로 표현되는)의 느낌을 주지만,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각 개인들도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앞의 송대관씨 첫날밤 얘기처럼, 평범할 것 같은 와중에도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삶이 곧 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번은 연구실 선배가 요세미티 공원 산행하다 겪은 삽질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정말 그렇게 끔찍한 여행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사람이 살아온 과정이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다고 한다. 휴가 둘째날 부모님과 함께 삼겹살 구워먹고서 연락을 받고 아버지 친구를 함께 만나러 나갔었는데, 그곳 술집 사장님 말씀 중에 ‘나이 오십을 먹으면 사람 얼굴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한 것 아닐까? 같은 것을 두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한다지만, 어쩌면 사람 얼굴을 봤을 때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구나 하는 건 다들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는 단순하고 평화로울 수 있고, 육체적으로는 편한데 정신적으로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듯이, 각 개인의 삶이 가진 다양한 모습들을 겉으로만 봐서는 알기 어려운 면도 또한 있다.

스팍스 동아리 선배 중 한분이 얼마 전 갑자기 장문의 메일을 돌리셨다. 졸업 후 3년 넘게 회사 다니시다가 홍대 앞에서 아는 사람과 함께 술집을 차려서 동업하다가는 갑자기 인도에 3개월 동안 다녀온다며 이후 계획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분처럼, 이따금 ‘이런 과정을 밟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겠지’하는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말을 다들 너무 쉽게 하지만, 막상 그러기는 쉽지 않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대단해보이는 것 같다. 스웨덴 교환학생 다녀오면서 얻은 것 중 하나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그냥 막연히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는 게 아니라 하고자 하면 뭐든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일종의 자신감이자 기대감이었다.

다들 자기 자신의 삶이 특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도 그만큼 특별하다고 느끼게 될 때–여기서 특별함은 인도주의적 소중함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그 무엇을 뜻한다–사람을 좀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는지.

2010 여름 근황

개장 휴업 상태인 블로그를 어떻게든 RSS 리더에서 삭제당하지 않도록(…) 만들어보고자 언제나 할말 없을 때 하는 근황 포스팅. 최근 뭘 하며 지내나 한번 적어본다.

연구!

대학원생이니 당연히 일순위는 연구다. “연구”가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 같지만 어쨌든 형식 상 연구라는 걸 하고는 있다. (…)

첨단망 연구실(그렇다, 한글 이름은 이렇게 생겼다.)에 들어오고 어언 4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이중에서 약 두 달 동안의 탐색 기간을 거쳤다. 현재는 선배들의 올해 SIGCOMM 논문으로 나간 PacketShader의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서 하는 것이 메인이고, 사이드로는 트위터 및 소셜네트워크 분석 관련 프로젝트 미팅에 계속 참석하고 관련 논문들을 읽어나가고 있다. PacketShader의 후속 연구로는 SSL/IPSec 기능을 GPU로 가속하는 것과 이것을 실제 라우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control plane을 통합하는 것이 함께 진행 중이다. 전자는 이번에 SIGCOMM Poster로 발표될 예정이고, 나는 후자에 참여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쪽으로는 네트워크 구조로부터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그 dynamics를 분석하는 일을 하는데, 물리학과의 정하웅 교수님 연구실과 함께 공동연구를 하고 있고, 서울대 사회학과의 장덕진 교수님이나 사회발전연구소 이원재 박사님 등으로부터도 도움을 받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우리 연구실에서 진행해온 소셜네트워크 분석으로부터 얻은 통찰이나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매우 큰 규모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구축할 때의 시스템 이슈들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아직 알아야 할 것이나 논문을 읽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어 아마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정작 그때 가면 다른 주제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옛날부터 큰 규모의 코드 덩어리를 보며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 해왔기 때문에–학부 성적을 봐도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다–시스템 개발에 더 가까운 PacketShader 프로젝트를 우선 메인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해보고 느낀 점이라면 학부 때와 달리 스스로 찾아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긴가?) 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회사에서는 돈이라는 강력한 동인이 눈앞에 놓여지는 데 비하여(내가 직접 받는 월급 같은 것뿐만 아니라 이걸 하면 회사가 얼마나 벌 것이다 하는), 그야말로 학문적 호기심과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는 것이 말은 멋있지만 생각보다 더 괴로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가 마련해놓은 정답이 없을 때 스스로 찾고 또 찾는(그래서 re-search일 것이다) 그 과정… 아직 나는 본격 시작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선배들이 그런 과정을 겪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니 생각만 하던 것과는 또 다르더라.

약간 번외의 이야기인데, 연구를 하면서 오픈소스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 세상에 리눅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시스템 연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지금처럼 여러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누구나 소스코드를 보고 고치고 다시 배포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은 정말 인류 역사에 엄청난 공헌을 한 것이다. 앞으로 백년, 이백년이 지나면 오픈소스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되고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자못 궁금하다.

성가대

연구 다음으로 활발히 하는 것은 얼마 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성가대다. 성가대에 처음 들어간 것은 벌써 8주 정도 되었는데 중간에 청년캠프 등으로 예비단원 교육이 미뤄지는 바람에 지난 주말에서야 6주짜리 예비단원 교육을 완료하고 정식단원이 되었다.

중학교 때 심한 변성기를 겪으면서 사실상 노래가 불가능한 상황을 몇 년 겪은 후로 내가 노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지 못했다가 학부 때 실내악 앙상블 수업을 들으며 아카펠라에 테너 파트로 참여하면서 노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은근히 마음 속에 남아있었는데, 요즘 자주 치지 못하는 피아노를 대신하여 내 음악적 욕구를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채워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종교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또한 동시에 내 삶의 중심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느님 안에서 두 배의 기도라 불리는 성가로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기쁨 또한 매우 큼은 물론이다.

성가대를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그냥 일반 신자로 미사만 다닐 땐 몰랐던 것으로, 하나의 미사를 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봉사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가대 연습이 미사 전 2시간 넘게 이어지는데, 처음엔 성가대밖에 없지만 한두 사람씩 미리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전례부와 복사단이 기도하며 미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무엇이 이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댓가 없이 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의 내적인 동기는 다양하겠지만, 세상적 기준으로는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느님과 예수님을 향한 찬양과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왠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끔, 너무 덥다든지 악천후가 이어진다든지 연구실 사람들하고 게임(…)에 말린다든지 하면 성가대 가는 것이 귀찮아질 때도 있지만, 일단 가면 정말 그 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꽉 찬 시간이 되는 것이 참 좋다.

지난 토요일에는 성가대 내부 커플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랑님이 사는 곳이 내가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보낸 개포동 5단지인지라(!) 개포동성당에서 혼인미사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성가대의 큰 행사인만큼 축가도 부르게 되었고. 신앙에 대한 회의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의 순수한 신앙생활과 첫영성체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해서 감회가 새로웠다. 15년 전의 기억으로 멈춰있던 곳이 갑자기 현재의 기억–현재의 시간과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포함하는–으로 전이하였다.

내가 성가대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엔 결혼하신 두 분과 친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축하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여기서 ‘가장’이라는 것은 외적으로 결혼식 때 가장 많은 치장을 하고 가장 젊고 활기찰 때의 모습이라는 점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축복을 받는 자리로서 그 자리에 선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지만 삶을 가꾸어갈 사랑을 통해 다른 의미로 더욱 아름다워질 앞날에 대해 가득 찬 기대감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의 최상급이다.) 축가 전주 동안 신부가 신랑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긴장한 탓에 가사를 틀려가면서도 끝까지 눈물 글썽이며 1절 부르는 모습을 보고 2절을 이어부르는데 괜히 나도 눈물이 났다. 이런 경험도 성가대가 아니었으면 해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텍스트큐브

여러 이유로 니들웍스 멤버분들이 다들 적극적인 참여가 힘든 상황이 되어 그럭저럭 유지는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활발하게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사실 그동안 블로그 저작도구라는 틀 안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상당 부분 다 해봤기에, 새롭고 흥미로운 것보다는 유지보수나 리팩토링과 같이 상대적으로 지루한 작업들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건 아무래도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 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니들웍스의 다음 프로젝트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보고, 앞으로 니들웍스와 태터네트워크재단이 나아갈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달 21일에 열리는 제8회 태터캠프는 ‘미래’를 주제로 비교적 소수의 인원을 모아놓고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할 수 없지만–또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해서–어쨌든 텍스트큐브를 통해 나름대로 인류와 세계에 공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텍스트큐브 프로젝트는 내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강한’ 사람들 여럿과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런 사람들 틈에 끼어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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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 League of Legends

내가 그동안 했던 게임들을 꼽으라면 저 옛날의 커맨드앤컨커 시리즈(오리지날, 레드얼럿, 타이베리안선), 토탈어나이얼레이션(Total Annihilation), 스타크래프트가 있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주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장르를 즐겨왔고 실제로 본격적인 맵 제작은 거의 안 했지만 맵에디터가 있거나 혹은 내가 맵에디터를 만들 수 있는(!) 게임들을 주로 했다. RPG 류도 디아블로2 같은 건 조금 만져보긴 했었는데 노가다 뛰고 시간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거의 해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토탈어나이얼레이션은 중학생 때 유닛을 만들어보겠다고 전용 AI 스크립트 언어까지 공부하다가 실패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열정을 보이는 것과는 상관 없이(?) 그만 이 게임 제작사인 Cavedog이 망해버려서(…) 프로듀서였던 크리스 테일러라는 사람이 나중에 Gas Powered Games로 옮겨가 슈프림커맨더(Supreme Commander)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근 10년 동안 즐기던 토탈을 접고 무려 한정판 패키지를 지르기도 했다. 이후 관련 게임 커뮤니티를 개인 서버에 계속 호스팅해오고 있기도 하다.

다만 슈프림커맨더의 결정적 단점이라면 한 판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점으로, 사람들과 2v2 이상 멀티를 하면 1시간에서 길어지는 경우 2~3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20~30분이면 한 판이 끝나는 스타크래프트에 익숙하고 사람들 성격도 급해서인지 매우 인기가 없었다. (첫번째 릴리즈는 국내 유통사를 통해 공식발매가 되었는데 별로 많이 안 팔렸는지 확장팩과 더 이후에 나온 슈프림커맨더2는 국내 발매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구매대행을 이용하거나 STEAM을 이용해 달러 결제하고 온라인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슈프림커맨더 이후로는 대학 생활에 한창 바빠서(2007년 봄에 출시되었는데 이때가 가장 바쁜 시기중 하나였다.) 무려 클로즈베타부터 게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년 늅(…) 상태로 남아있었고, 따라서 게임에 돈을 꽤나 쏟아부었으면서도1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임 자체도 뭔가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밀려서 거의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시작한 게임이 바로 League of Legends(이하 LOL)이다.;;;

사람들이 “DOTA류의 게임” 또는 “DOTA 만든 사람들이 만든 게임”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알고보니 워크래프트3에서 사람들이 “카오스”라는 유즈맵을 하는 걸 본 적이 몇 번 있는데(내가 있던 로봇 동아리 미스터에서 사람들끼리 동방에서 참 많이도 했었다. 나는 한번도 안 해봤지만.) 이게 그런 방식의 게임이라는 거다.

내가 해왔던 RTS들은 제한된 크기의 전장(맵) 안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자원을 채취하여 건물과 유닛을 생산해 서로 싸우는 방식이었는데, DOTA에서부터 이어진 LOL은 제한된 크기의 전장을 이용한다는 점은 같으나 자원 채취와 생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적을 죽일 때 버는 돈이 자원이랄 수는 있겠다) 다양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는 RTS에 비해 판타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으로, 플레이어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양측 진영에서 자동으로 생성되어 서로 싸우는 미니온들이라는 작은 병사들이 존재하고, 여기에 플레이어들은 각자 한 명의 영웅을 맡아 미니온들을 돕거나 상대편 영웅들과 싸우는 방식이다. 영웅들은 각종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게임 중 번 돈으로 아이템을 사서 능력치를 자기 입맛에 맞게 키울 수 있다.

한동안 말려서 하다가(…) 가만 돌아보며 재미 요소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다.

  • 무조건 하나의 영웅만 컨트롤한다. 다른 유닛을 선택한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영웅에 더욱 집중·이입할 수 있게 된다. 이점은 RPG와 유사하다.
  • 꽤나 잘 설계된 온라인 매치 시스템 덕분에, 혼자 게임에 참여할 경우(3v3 또는 5v5밖에 없다) 자기 수준에 맞는 사람들과 플레이할 수 있다. 다만 미리 친구들끼리 팀을 짜는 경우는 팀웍 advantage 때문에 좀더 어려운 상대를 만나게 해준다. 따라서 적절한 재미와 난이도를 보장해준다. (이것은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했던 flow의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 영웅마다 권장되는 아이템들이 있긴 하지만 무슨 영웅을 하든 어떤 아이템을 살지에 대한 제약이 없다. 따라서 자기 입맛에 맞게 영웅을 성장시킬 수 있다.
  • 영웅마다 스킬과 마법에 다양한 내부 능력치들이 존재하여 서로 상성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일반 공격 데미지와 마법 데미지가 따로 있고, 일시적으로 상대 능력치나 특성(방어력 등)을 하강시킨다든지, 아이템을 통해 영웅별 특수 능력의 효과(ability point)를 더욱 극대화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조합이 있어서 쉽게 질리지 않는다.
  • 현재 제공되고 있는 전장의 종류가 3v3용 하나와 5v5용 하나 단 2개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숨는 수풀 지형이나 벽에 따른 시야 확보의 제한, 이동거리에 따른 영웅별 유불리 등이 섬세하게 반영되어 있어 다양한 전략이 가능하다. 특히 ‘정글링’이라고 하여 NPC 몹들을 잡아 특수능력치를 얻는 등 부가 요소들을 제공한다.
  • 기본적으로 매 게임을 시작할 때 모든 사람의 영웅이 레벨 1에서 아무 아이템이 없는 상태로 똑같이 시작하되, 플레이어(LOL 내에서는 summoner라는 용어를 씀)가 게임을 할 때마다 얻는 별도의 경험치를 통해 플레이어가 어떤 영웅을 하든지 상관 없이 적용되는 특수 아이템들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의한 영향은 상당히 미미하기 때문에 아주 고렙 플레이어들끼리 치열하게 붙는 상황이 아니라면 게임 자체는 거의 평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즉, 앞서 언급한 온라인 매치 시스템과 함께 이러한 요소가 초보자가 쉽게 게임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평등성 때문에, 같은 영웅 캐릭터를 하더라도 각 게임마다 팀원 또는 상대편이 어떤 사람들이 되었는지 어떤 캐릭터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자신의 영웅을 완전히 다르게 성장시키고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이것이 이 게임을 탐구하게 만드는 주요 요소이다. (이 또한 ‘너무 단순하지는 않다’ 내지는 ‘약간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flow의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스타크래프트는 유닛 상성이 있어서 어느 정도 이를 이용한 조합적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토탈에 그나마 있었던 다양한 유닛의 특성이 슈프림커맨더에 와서는 무조건 물량전 위주로 바뀌는 바람에 뭔가 머리쓰는 재미보다는 빌드오더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해지고 빠른 컨트롤과 많은 플레이 경험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LOL은 내가 매우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즉각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이유로 아이템과 특수능력을 조합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전략 구상을 매우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다른 RTS 게임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전략 설계의 intensiveness, 거기에 더하여 전략의 성공 여부를 매우 빠른 템포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LOL 커뮤니티에서는 ‘한타’라는 용어로 자기 편과 상대 편의 여러 영웅들이 함께 맞붙어 싸우는 상황을 표현하는데 이때 각 영웅별 특성을 잘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 견제하거나 도망가는 게 아니라면, 10여초 만에 한타의 승패가 판가름난다.) 이것 또한 빠른 피드백이라는 점에서 flow의 또 다른 조건의 하나다.

사람들이 중독성이 높은 게임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가만히 살펴보니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다. 대학원생인지라 게임할 시간이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이런 게임을 하면서 내부는 어떤 구조로 설계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고(…아마 게임하면서 그런 거 생각하는 사람이 많진 않을 것 같지만 ㅋㅋ), 사람들에게 재미 요소를 주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혹은 느끼기 위해 다양한 게임을 접해보는 것 자체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통적인 의미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 이 게임 개발사(Riot Studio)가 별도의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한국 서비스를 하겠다고 발표했다는데, 그러면 지금의 불안정한 접속 환경이 많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재밌게 할 만한 게임을 하나 찾았으니, 이것도 가늘고(?) 길게(?) 즐겨봐야지.


  1. 참고로 나는 내가 메인으로 재미붙여서 했던 게임들은 모두 정품 구입하였다.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 브루드워, 토탈, 슈프림커맨더 및 확장팩/후속작, 워크래프트2, 커맨드앤컨커과 타이베리안선 모두. 레드얼럿과 심시티는 복사 방지 기술이 별로 없었던지라 친척한테 빌려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 외로 나는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에 돈을 좀 쓰는 편인데–이런저런 소소한 프로그램들도 크랙을 구할 수 있더라도 일부러 정품 구입한 게 꽤 있다–내가 소프트웨어로 밥벌어 먹고 살아야 할 입장이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를 충분히 즐겁게 해준다면, 또 내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아껴준다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다. (다만 포토샵 같이 좀 너무 심하게 비싼 건…ㅠ_ㅠ 내가 필요한 기능만 선택해서 가격을 매길 순 없을런지… 나의 사용 패턴과 대체재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내 사용 가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은 경우는 때로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어둠의 경로는 대체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물론 그동안 그럴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이 허락해준 것도 있지만,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크게 어려운 건 아니기도 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