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살아가기, 생각하기'


377 Posts

  1. 2008/12/02 죽음과 삶 by daybreaker
  2. 2008/11/23 제주대학교 오픈소스 강의 by daybreaker (5)
  3. 2008/11/13 ㅅㅂㄹㅁ 인터넷 결제 by daybreaker (10)
  4. 2008/11/09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워온 과정 by daybre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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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8/11 WALL·E & Dark Knight by daybre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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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08/07/03 한국으로 돌아오며 by daybreak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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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

그저께 고등학교 동기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대안언어축제 및 P-CAMP를 2박3일 동안 마치고 돌아와 성당 다녀온 다음 저녁 먹으려던 찰나에 연락받았다. 가족·친척 빼고 태어나서 처음 가는 조문이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돌아가신 거 말고는 장례에 가본 적이 없다.) 대안언어축제 마지막날 거의 밤새고 그 전날도 잠을 설치고 그랬던 터라 매우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안 가볼 수는 없었고, 또한 경기과학고 21기 아이들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얼굴도 볼 겸 가게 되었다.

빈소에 조문하러 가면 나는 전체적으로 아주 엄숙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지만 일단 영정에 절하고 상주와 맞절하는 순서를 마치면 방문한 사람들끼리 앉아 음식 대접을 받으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그런 거였다. 누구 말로는 초상으로 인한 허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듬으로써 그 빈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일종의 문화라고 하였다.

언젠가 나도 나이먹고 친구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초상집에 조문하러 다니겠지 하는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듣기로는 며칠 전에 쓰러지셨다가 그날 새벽에 돌아가신 거라고 한다. 대안언어축제를 통해 현업에 계시는 분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와 회포를 풀며 삶에 대한 에너지를 얻었지만 또 이렇게 죽음과 남은 자들의 공허함을 대면해야만 했다. 사실 우리는 삶의 모습만을 보지만 언제나 그 이면에는 죽음들도 함께하고 있는 법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세포들이 태어나고 죽으면서 우리 몸을 유지해주기 때문이리라.

어쩌다보니 이날 조문은 졸업 후 경기과학고 21기의 가장 큰 모임이 되어버렸다. 해외에 나간 친구들과 서너명 정도 연락이 제대로 안 된 녀석들 및 일정 때문에 다음날 방문하기로 한 친구 두세명 빼고 나머지는 거의 다 온 것 같다. 학기 중 일요일이라 카이스트 다니는 아이들은 기차타고 내려가다가, 혹은 도착해서 연락받고 도로 올라오기도 했다. 대부분 학사과정의 끝에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 모임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석사 진학한다는 친구도 있고, 의대나 한의대에 진학해서 본과 생활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고--해부 실습할 때 쓰는 포르말린 용액 때문에 그 독성으로 얼굴에 여드름이 도진 친구도 있었다--아직은 대부분 학생이지만 앞으로 5년, 10년 지나면 어떤 모습들로 변해있을까. 한의대 간 한 친구는 자기가 공짜로 침 놔줄 테니 허리 아프면 찾아오라는 소리도 했다.

나는 지난 학기에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이번 학기 휴학 중이었기 때문에 다들 소식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프로젝트들도 하고 있고, 책 쓰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하니 몇몇은 흥미있어하는 눈치였다. 대부분 학업을 하며 앞으로 계속 달려나가고 있지만 나는 한 템포 늦추면서 대신 다른 경험을 쌓는 중인 셈. 고등학교 때만 해도 경시 입상하는 것 외에는 주변의 것을 별로 보지 못했던 친구들은 대학생활을 하고 나니 '그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느끼는 점들이 있는 것 같았다. 침 놔준다던 친구는 오히려 날 부러워하기도 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의대, 한의대에 진학한 친구들이었지만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 하는 친구들을 보고 내심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자기가 원해서 간 친구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사실 나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하면 즐겁고 성취감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학부 전공은 마무리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는 것. 사실 과학고 정도 되는 학생들에겐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삶의 진로 선택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닐까 싶다. 방향만 정해진다면 그걸 향해 달려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친구들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잘못 방향을 잡는다면 더욱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친구들을 다시 몇 년 후에 보게 되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했는지 생각해보면 앞으로는 또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언제까지나 순수한 고등학생처럼 남아있을 수 있을지.

2008/12/02 13:21 2008/12/0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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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오픈소스 강의

지난 금~토요일에는 무려 제주도를 다녀왔다. 원래는 NHN DeView 컨퍼런스를 가려고 일찌감치 등록까지 해놓은 상태였는데 니들웍스를 통해 다음커뮤니케이션 쪽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제주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다음에서 제주대학교에 오픈소스 개발방법론 강의를 개설했다는 소식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거기에 가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내가 맡은 부분은 실습 세션으로, 학생들이 기말프로젝트(...)로 텍스트큐브나 제로보드 쪽에 참여하도록 했기 때문에 좀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가게 된 인원은 총 4명으로 TNF 리더이신 신정규님 외에 최호진님, 고재필님 그리고 나였다. 사전에 듣기로는 주로 3~4학년 컴퓨터공학 전공 학생들이 수강하는 수업이라고 했는데 그럼 나와 동갑이거나 한 살 많은 사람들을 두고 '초청 강사'로 강의를 하게 된 셈이다.;

'텍스트큐브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기'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학생들을 두고 도대체 어떤 내용의 실습을 진행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결국은 플러그인에 대해 알려주는 쪽으로 결정했다. 텍스트큐브 코어 구조는 엄청난 내부 공사를 거치고 있는 중이라 1.8 버전을 거치며 크게 변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가르쳐준다고 해서 나중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고, 구조가 안 바뀐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수만 줄에 이르는 방대한 코드의 구조를 파악하고 자기가 기여할 만한 부분까지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자기가 뭔가 '만지고 있다'라는 느낌을 주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 플러그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혹시나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 좀더 코어에 깊이 관여해보고 싶은 열정적인(...) 학생이 있었다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교통의 발달 덕분에 요즘엔 그런 큰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훨씬 쉬워진 것 같다. 제주공항에 내리자 우선 훨씬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도 제주도에는 2번이나 왔었지만 한겨울에도 길거리에 있는 푸른 잎들의 야자수를 보면 같은 나라인가 싶다. 택시를 타고 제주대학교로 향하는 길에 다음 글로벌미디어센터도 볼 수 있었는데, 입구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있는 돌하르방이 아주 폐인(...)스러워보이는 게 재밌었다;; 제주대학교는 약 해발 200미터 높이의 한라산 북쪽 자락의 경사진 땅에 지어져 있다. 우리가 강의할 건물은 위쪽의 새로 지은 새 건물이었는데, 강의하기 위해 3층인가 4층인가 올라가니 복도 전면 유리창으로 멀리 바다와 푸르른 초목이 보이는 것이 아주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했다. 공기도 좋고 전망도 끝내주는 이런 학교에서라면 왠지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은 느낌? ㅋㅋ

어쨌든 세미나와 수업은 무사히 끝났고, 초청강사로 강의한 것에 대한 증빙자료(?) 준비 때문인지 신분증 확인 후 수업을 들었던 10명 내외의 학생들과 다음의 윤석찬님과 함께 흑돼지 삼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석찬님이 친히 구워주시는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그렇고 재필님도 그렇고 아쉬워했던 것은 왜 카이스트나 포항공대에는 이런 수업이 없을까 하는 점이었다.

카이스트는 컴퓨터공학과가 아니라 전산학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론의 비중이 좀더 높고 '프로그래밍 언어는 알아서 배워라' 식의 배짱이 있어서인지 SP와 OS 및 DB개론을 제외하고는 실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수업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아마도 학생들 머리가 좋으니까 기초를 잘 가르쳐놓으면 알아서 잘 하겠지... 뭐 이런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오픈소스 개발은 소위 전통적인 소프트웨어공학으로 달성하지 못한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접해보지 않은 학생들이 전산과에 왔을 때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나는 카이스트에서도 이런 수업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밌었던 것은 그곳 학생들도 문제의 소프트웨어공학개론 덕분에 꽤나 고생한 경험이 있더라는 것. UML 다이어그램으로 점철된 300장짜리 보고서 이야기를 해주니 '역시...'라며 다들 끄덕끄덕. -_-;;; 윤석찬님께서는 이미 전통적인 개발방법론을 지나 오픈소스를 모델로 하는 방법론들이 연구되어 있고 기업에서도 이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면서 학교에서도 그런 방향의 교육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저녁 먹고 학생들과 헤어진 후 어둑해진 해안으로 나가 고등학교 수학여행 시절에 보았던 용연과 용두암 야경을 보며 산책한 후 다음 쪽에서 제공한 숙소인 그랜드호텔로 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가 우리 부모님 신혼여행 숙소였다고 한다. -_-) 1층 커피샵에서 윤석찬님과 함께 좀더 심도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프론트에 물어보니 호텔방에서 유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좋아라(...) 올라갔는데 접속해보니 하루 만오천원. 역시 호텔은 돈쓰는 곳이야...라면서 adhoc 네트워크로 공유하면 되지 하고 인터넷에 연결했다. 그러나 맥의 인터넷 공유와 우분투하고는 뭔가 상성이 안 맞았는지 호진님은 먼저 쥐쥐치고 주무시고, 재필님도 조금 인터넷을 쓰시다가 자러 가시고, 정규님과 내가 남아서 2.0 프레임웍 구조를 도입하느라 지뢰밭이 되어버린 trunk를 일단 돌아가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 간만의 여행으로 인한 피로와 싸우며 새벽 4시가 되어가고 로컬호스트 주제에 로딩에 5초씩 걸리는 텍스트큐브를 보면서 쥐쥐 선언. -_-;;

다음날은 느지막히 일어나 호텔 근처의 유명하다는 모이세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하루 정도 더 묵으면서 제주도를 즐길 수도 있었지만 니들웍스 분들이 전국에 흩어져있어 자주 얼굴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4명이나 한 곳에 모였으니 오프라인 모임을 한번 하기로 했던 것이다. 와이브로를 무선랜으로 공유하여 공항버스 안에서 인터넷을 즐기며 서울 강남으로 향했다. 그라피티에님과 합류하여 trunk 소스를 어떻게 할지, 빨리 처리해야 할 각종 사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결국 지난 일주일간 dispatcher 중심으로 개편 중이던 trunk 소스는 암흑의 역사로 이동이 결정되었다. 또한 프레임워크를 도입하면 캐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실무 유경험자 호진님의 의견을 따라 캐시 부분도 재작성하기로 했는데, 옆에서 듣다보니 '아, django라면 이 삽질 안 해도 되는데...'라는 생각만...ㅠ_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숨가쁜(?) 1박2일 동안의 남에 번쩍 북에 번쩍 스케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 또래 학생들을 놓고 정식 수업으로 초청 강의한다는 게 좀 생경한 경험이긴 했지만 간만에 콧바람도 좀 쐬고 사람들과 여러 발전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점점 갈수록 이번 학기 휴학하길 잘했다는 것과, 구글 인턴에 떨어진 것이 어쩌면 오히려 나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ps. 주임교수님 아니랄까봐(?) 나와 재필님이 강의하는 수업에 출석까지 부르시는 윤석찬님을 보니 똑같은 학부생 입장에서 참... 그래도 금요일 오후 수업인데...ㅋㅋㅋ

2008/11/23 16:36 2008/11/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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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ㄹㅁ 인터넷 결제

뭐, 아주 오래 전부터 나온 떡밥이라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지만 정말 너무 열받아서 써본다. (웹표준이니 오픈웹 소송이니 이런 거 아시는 분들은 읽을 필요 없음.)

아버지가 오래된 골프채 하나를 새로 장만하신다며 인터넷에 봐둔 것이 있다고 하셔서 사려고 했다. 원래는 회사 노트북을 쓰시지만 오늘은 집에 가져오지 않으셔서 내 데스크탑에서 하게 되었다.

  1. 우선 네이버에서 검색어 입력 후 쇼핑 가격비교를 통해 신세계몰의 상품 페이지에 들어갔다.
  2. 상품 유형 선택하고 설명을 보니 제휴 카드로 하면 5% 할인이 된다고 한다. 주문서 작성 화면에서 카드 할인을 적용하라고 되어 있다.
  3. 결제하기 들어가서 비회원 주문 선택. 약관 동의 체크.
  4. 결제 플러그인 설치 안 되었다고 궁시렁해서 설치 허용 후 2번부터 반복.
  5. 주문서 작성 화면을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카드 할인 적용에 관한 문구도 없고, 결제 금액은 할인 안 된 금액으로 그대로 나와 있다. 해당 카드로 선택해도 안 바뀜.
  6. 주소 등 주문서 작성.
  7. 그냥 할인 포기하고 사려고 결제 시도하자, 카드 번호 입력칸에 입력이 안 된다. 한참 삽질하다가 메모장에서 복사-붙여넣기 하면 된다는 걸 발견.
  8. 해당 카드사의 플러그인 설치해야 한다고 궁시렁해서 다시 2번부터 반복.
  9. 원래 결제하려던 카드는 어머니 꺼였는데 인터넷 뱅킹을 하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에 공인인증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7번부터 반복.
  10. 카드 비밀번호 등을 입력하는 화면으로 넘어갔는데 이젠 붙여넣기도 안 되고 전혀 입력 불가능. 비스타 64비트에서 결제하는 것은 포기.
  11. 가상머신으로 윈도 XP 부팅.
  12. 다시 1번부터 반복하여 중간에 결제 플러그인 설치하느라 한 번 더 반복 후 7번까지 진행.
  13. nProtect 깔라길래 끝까지 설치 안 하려고 했더니 8번에서 걸린다. 설치했는데 다행히 입력은 문제 없었음.
  14. 안심클릭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화면에 넘어왔는데, 아버지가 인터넷 결제를 잘 안 하시는 분이라서 예전에 만들어둔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다. 공인인증서로 하려고 해도 회사에 있으니 못 가져옴. 비밀번호 재설정도 공인인증서 요구.
  15. 결국 옆에서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그냥 낼 노트북 가져오든지 회사가서 할께..하시고 포기. OTL

난 도대체 왜 이런 모든 삽질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와 금융결제원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2008/11/13 22:04 2008/11/1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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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놀의 생각

    Tracked from daybreaker's me2DAY 2008/11/13 22:20 Delete

    ㅅㅂㄹㅁ 인터넷 결제. 아 진짜 이거 어떻게 안 될까 개쉙들..

내가 전산과에 들어가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전산과 학생들이 누구나 다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국내에서 나름 가장 수준높은 학생들을 모아놓은 카이스트임에도 말이다. (사실 나는 전부 다 괴짜에 전부 다 초천재적으로 엄청난 알고리즘들을 쏟아내며 코딩하는 줄 알았다.) 대개 프로그래밍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아이들이 잘 하는데, 자세히 보면 뭔가 스스로 삽질을 많이 해본 아이들이 습득 속도도 빠르고 응용력도 더 높은 걸 볼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토끼군. ㅋㅋ)

나는 프로그래밍을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접했는데, 당시 시작한 것이 Q-BASIC이었다. 집에 있던 시리즈 과학책 중에 GW-BASIC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예제 중심으로 다룬 책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혼자 따라하다가 곧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6학년 때 Visual Basic을 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삽질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래밍을 접하기 전에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것 중 하나는 각종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스타나 커맨드앤컨커 같은)들의 맵에디터를 빠삭하게 꿰차는 것이었다. 과연 이 게임들은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에서 출발한 호기심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하겠다.1

당시 만든 것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들이 몇 가지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레드얼럿의 커스텀 미션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레드얼럿 미션에디터와 탭브라우징이란 개념이 널리 퍼지기 이전에 한 창에 여러 웹페이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든 MDI 형식의 웹브라우저가 있다. (물론 HTML 해석기를 구현한 건 아니고 IE 컴포넌트를 쓴 거였지만. 뭐, XML/HTML 파서를 만들려고 시도해본 적은 있다.)

중학교 1학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비주얼 베이직에서 제공하는 모든 기본 기능과 라이브러리들에 대해 익힐 수 있었고, 미약하게나마 객체지향을 터득하면서 인터페이스 개념을 알게 되었다. (비주얼 베이직은 상속이 안 되지만 나름대로 객체지향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가 가장 절정을 이루었는데 비주얼 베이직의 끝을 본 건 분명 언어는 비주얼 베이직이지만 비주얼 베이직 런타임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 윈도 API만으로 윈도 어플리케이션 만드는 방법을 완전히 이해했고--물론 실제 구현하려면 수많은 삽질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원리는 이해했다--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알게 된 것이긴 하나 비주얼 베이직의 특정 함수를 어셈블리 코드로 대치해서 실행한다든지, 또 정식으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재귀를 어떻게 루프만으로 구현할 것인지 등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어지간한 프로그램을 보면 내가 아직은 잘 모르는 C/C++ 언어로 만들었겠지만 대충 이러이러하게 구현했겠구나라는 정도의 감각이 생겼다.

당시 SQL이나 DBMS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ADO 관련된 컴포넌트만 안 써봤고, 그 외에는 비주얼 베이직을 거의 극한까지 다루어봤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 단계에 다다르면 어떤 의문점이 생겼을 때 레퍼런스를 잘 찾아보든지 스스로 설계를 얼마나 더 잘하느냐가 해결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고등학교 때 친구 토끼군인 비주얼 베이직으로 즉석에서 디자인한 스크립트 언어의 인터프리터를 구현해내는 걸 보고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에 필요한 이론 지식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므로 다시 내가 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

중학교 3학년때와 고등학교 때는 학업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깊게 팔 기회가 없었고, 고등학교 때 수박 겉핥기 식으로 C++의 아주 극히 일부만 조금 배웠다. 대학에 와서는 학교 커리큘럼을 따라 Java를 익히기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으로 다뤄본 완성도 있는 객체지향 언어였음에도 처음 프로그래밍을 접하던 친구들에 비해 훨씬 빠르게 익힐 수 있었으며 2, 3학년을 거치면서 PHP, Python, Javascript 등 다른 언어들도 상대적으로 손쉽게 두려움 없이 접근·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중학교 시절 쌓은 수많은 삽질 경험은 전산과 최고의 로드를 자랑하는 시스템 프로그래밍과 운영체제 과목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매뉴얼(MSDN)을 보고 이 함수가, 이 컴포넌트가 어떤 방식으로 동작하는지 이해하고 실제로 사용해보고, 또 내가 그걸 이용해서 뭔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머리 굴려가며 시도해본 온갖 잡다한 미니프로젝트들은 결과적으로 거대한 시스템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남들보다 빠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준 것 같다.

시스템 프로그래밍 과목은 1번 프로젝트부터 5번 프로젝트까지 계속 기존 코드에 기능을 덧입히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상당수의 학생들이 초기 명세에만 대응된 설계를 했다가 갈아엎는 일이 많았지만 나는 한 번도 갈아엎지 않고 꽤 깔끔하게 마지막 프로젝트까지 커버할 수 있었다. 이런 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크고 작은 규모의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왜 이렇게 설계하면 안 좋은지 좋은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지식은 소프트웨어 공학을 접하면서 배우게 되었지만, 나름의 내재된 감각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아직은 나 자신이 정말 프로페셔널한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겐도님처럼 자신있게 "한 달의 기간이 있으면 아키텍처 설계를 포함해 그 언어를 습득·활용할 수 있고 1년이 지나면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다" 정도의 수준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스스로 검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언어나 개발 환경을 접하게 되면 딱 그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한 내용만을 익히게 되는 경우가 많고--더군다나 언어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카이스트의 풍토 덕분에--실제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온 신경을 그것에만 집중하며 배울 때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다. 아직 회사에서 일해보질 않았으니까. 게다가 나는 전문 학원을 다니면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것도 아니요, 알고리즘 문제 해결을 위한 공부를 별도로 진행했던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내 호기심과 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워왔기 때문에 정말 내가 전문가의 수준에 도달했는지 안 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어 자신없는 부분도 있다. 학부 전공을 하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단순 호기심과 필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빈구멍들을 많이 메꿀 수 있었지만 이게 충분한지는 실무에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를 것 같다.

어쨌든 나한테는 새로운 언어와 개발환경을 익히는 것이 더이상 두렵지 않다. 내가 새로운 환경을 접할 때 더 많이 고려하는 것은 이것이 과연 나의 삽질을 줄여줄 수 있는가,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티핑 포인트를 넘었는가, 설계가 개발자의 가능성과 역량을 제한하는 부분은 없는가 등이다. 물론 대부분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단순 가치 비교는 힘들지만, 어쨌든 필요하다면 배워서 쓸 수는 있다는 것이다.

비주얼 베이직 하나를 깊게 팜으로써 결국 다른 객체지향 언어들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었고, 하나를 익힐 때마다 그 다음 것을 익히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기존의 지식과 새 체계를 diff 뜨듯 학습한다고나 할까. 물론 단순 diff는 곤란하고 그 안에 내재된 본질을 알고 있어야만 진정 효과가 있을 것이겠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프로그래밍 말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업에도 큰 영향을 끼쳐, 게임 중독에 가까울 만큼 판판이 놀아가며 학원이나 과외도 받아보지 않고 참고서도 본 경험이 없는 채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단 한 학기만에 공부 요령을 터득함으로써 학년이 오를수록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비슷하거나 더 나은 성적을 거두는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한달을 공부했지만,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딱 4일 공부했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하게 전교 10등이었다.)

자기만의 지식 재조직화 과정을 통해 본질을 이해한다면 그 어떤 종류의 학문이라도 초기 문턱만 넘는다면 훨씬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의 한국 공교육·사교육을 통틀어 이러한 지식 재조직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하는 많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1. Total Annihilation과 Supreme Commander는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나에게는 아주 훌륭한 해킹 대상이었다. 게임 내부 데이터를 열어보고 다룰 수 있는 도구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유닛 타입과 가중치 숫자들이 나열된 AI 정의 파일을 보고 어렴풋하게나마 확률의 개념을 생각했었고,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2008/11/09 01:13 2008/11/0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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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놀의 생각

    Tracked from daybreaker's me2DAY 2008/11/09 01:14 Delete

    이 글을 보다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겐도사마의 글을 이어 맥퓨처님께서 이런 글을 남기셨다는 글을 이어 라지엘님께서 이런 글을 썼다는 글을 보고 나도 이런 글을 썼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이거 상당히 심한 떡밥성을 지닌 글이 되겠지만, 내게 억지로 믿음을 강요하거나 무조건적 비판·비난만 아니라면 댓글은 대체로(?) 환영한다.

요즘...이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계속 고민해왔다. 어머니 쪽 집안은 개신교 쪽이고(정확한 종파는 모르겠음) 아버지 쪽 집안은 천주교 쪽인데 어머니가 천주교로 개종하여 명동성당에서 결혼하시고 나는 유아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걸 따지길 좋아하도록 타고난 기질 덕분인지, 아니면 어렸을 때 너무(?) 많이 본 각종 과학책 덕분인지 몰라도 오히려 어렸을 때는 무작정 대놓고 믿었던 기독교에 대해서 지금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친한 친구인 lifthrasiir와 고등학교 시절 종교에 대해 토론해보았다든지, 그 녀석의 최근 글 기독교가 '아닌' 것이라는 글도 보고, 또 날개셋 입력기로 알게된 그 녀석의 절친한 선배인 용묵이 형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각종 신앙 간증 내용도 읽어보고, 또 주말마다 성당에서 미사를 하면서 신부님의 말씀도 들어보고, 대전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한 수녀님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해봤다든지, 또 주변 친구 중에 열렬한 개신교 신자가 몇몇 있어 이야기 및 상담(?)도 해보고, 수원교구청 성서교육자 교육도 받으신 어머니와도 이야기해보는 등 나름대로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서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봤다.

사실 나는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는다'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가톨릭에서는 그렇게 안 보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거꾸로 듣게 되어 놀랍기도 했고, 특히 근본주의파에 가까운 쪽에서는 가톨릭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는 걸 보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사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으면 (논리적으로야 어찌됐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심각하게 교리적 차이에 대해 집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뭐 어쨌거나 나는 기독교 각 종파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차이는 제쳐두고 고민하는 부분들이 또 있다. 상당히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봤지만 딱히 답이 없는 그런 질문인 것도 있고,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자명한데 왜 고민하나 하는 문제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내가 성서를 아주 주의깊게 숙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라서 생기는 것도 있을 것이다. (뭐 기독교인의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비판한다면 인정한다. 어쨌든 사실이니까.)

  •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라는 자아의 개념에 대해서, 과연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동물이나 식물,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도 영혼을 가질까? 가진다면 그들의 '죄'는 어떻게 정의될까? 가지지 않는다면 동물에 대한 어떤 인권(?)을 주장하는 것이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 현재의 weak-AI가 아닌 strong-AI가 구현된다면, 즉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모사하는 무생물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그것도 영혼을 가진다고 봐야 할까? (과학적으로도 이것이 100% 가능하다는 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신앙적 관점에서는 '어쨌든 진짜 사람은 다르다'가 결론이겠지만, 어쨌든 철학적 질문으로서 궁금하다.)
  • 몇몇 사람이 나에게 말하길, 신앙이란 선택의 문제라고 하였다. 자기가 믿기를 선택하고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구원 못 받을 뿐이라고).
  •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나도 몇몇 생명공학 기술들은 사용되지 않아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대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아무래도 공돌이적인 기질 덕분인지 어느 TV 성서 강좌에서 본 모 신부님의 말씀 '똑똑한 사람들은 이것저것 따지는데 그러지 않고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라는 걸 나는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나는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은데, 도무지 과학적 지식과 합리성에 기반한 사고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게 죄인가?
    • 이에 대해 어느 수녀님은 아무리 인간의 지식이 발전해도 그 한계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 한계 너머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는데 인간의 한계라는 부분은 나도 인정하지만 과거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인류 역사를 통해 조금씩 '침범'당해왔고 (낙천적 가정 하에) 앞으로도 그럴 텐데 이에 대해서 종교인들의 입장은 어떤지 궁금하다.
    • 이런 입장에 대해 일부는 '인간의 교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과학으로 신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상태다. 다만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에서는 결론내릴 수 없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어떻게보면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 분명히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기독교는 모순적이다. (신약 성서의 삶에 대한 좋은 가르침들은 논리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허나 신앙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어떤 몰입 등 분명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소위 신앙적 체험은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뭐랄까, 그냥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라는 점은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데, 머리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 그런 상황.
  • 애초부터 과학과 종교는 다른 영역이라며 이런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 -_- 하지만 내 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다른 체계가 충돌을 일으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 앞서 언급했듯 종파에 따라 세부적인 교리에서 차이가 나는데, 서로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며 배척하는 부분들도 있다. 어느 종파에 속해있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신앙을 가진다면 나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신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뭐 어떤 특정 종파에서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행위를 강제적으로 시키거나 유도한다면 몰라도. 여기서 문제는 그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겠다.)
  •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영혼이 존재한다면, 뇌의 신경 활동과 사람의 정신 세계, 그리고 영혼은 어떻게 연동되어 움직이는 걸까? (제발, 여기에 그런 가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의 반론은..-_- 그냥 궁금하다는 거다. 궁금해하는 것도 잘못이라면 할 말 없고.)
  • 적어도 현재의 현실에서는 그리스도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세속 사람들과의 관계와 멀어진다. 주변 몇몇 사람을 통해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보기도 했고. 물론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온전히 하느님께 헌신하면 하느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지만, 그들 자신의 삶은 빛날지 몰라도 주변의 비기독교인 사람들과는 필연적으로 소원해질 수밖에 없고, 분명히 잃는 것들이 생긴다. 모든 기독교인이 그래야만 할까? 혹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래야만 할까?
    • 둘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아주 드문 사람들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한계도 있는 법이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해야 될 것이다. 문제는, 정말 자기가 1분 1초도 아끼지 않고 그러한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때, (단순히 하느님이 채워주신다 이런 거 빼고) 그 사람의 삶은 피곤하지 않을까? 모두가 그러한 피곤을 감내하면서 살아야만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가?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크더라도 잠도 좀 자고 휴식도 좀 취하고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 이상적인 신앙인의 관점으로 금욕적인 생활이 반드시 좋은가? (종파에 따라 역시 요구하는 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욕구도 해소하면서 살아야지 안 그러면 기계 같은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내가 보기엔 신앙인의 이상향을 심각하게 쫓아가면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뭐 본인들이 괜찮다면 할 말 없지만. -_-;
  •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적극적인 자세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마음이 진실하다면 하느님도 받아주실 것 같은데. 뭐 이것도 결국은 어떤 직업을 택하느냐와 같이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니, 하느님이 선택해주시는 건가?;
    • 문제는 나처럼 이러한 질문들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진실하다'에 다가가기 힘들다는 점.
  •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녀에게 권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자녀가 좀더 머리통이 커져서(...) 그 신앙을 부정하게 되고 가족과 마찰을 빚는다면, 사회적으로 봤을 때 온당한 일일까?
  • 가끔, 기독교 내에서 문화상대주의·윤리적상대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성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곧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에 그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전쟁도 좋게 보면 이러한 이유로 발생한 것이겠다.) 예를 들면 자신이 인류학자인 경우와 선교사인 경우를 생각하면 다른 입장을 취하기 쉬울 것이다. 이럴 때 어떡해야 하나? (위에서 말한, '내면의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경우'로 볼 수 있겠다.)
    • 윤리적 상대주의와 관련하여, 종교 없이 인간이 보편적인 도덕률이나 윤리관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종교는 왜 필요하지?
    • 지금까지 서구 사회가 형성해온 제정분리 사회에서 법률은 이러한 보편적 윤리관에 기초하고 있는데(비록 평등 사상의 뿌리가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 다른 지역에 이러한 사상을 전할 때 종교적인 근거가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다행히(?) 지금 서구 사회의 보편적 가치는 기독교적 가치와 거의(?) 충돌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 그 사회의 종교가 보편적 윤리관과 완전히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절대가치이니 따라가야 하는가? 대표적으로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예를 들 수 있겠다.
    •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신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 종교 다원주의--여기서 각 종교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영역과 신앙을 가지고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종교 특성상 논리적으로 서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특히 한국사회처럼 여러 종교가 화합(?)하고 있는 상황은 잘못된 것이다.
    • 초종교(?) 사상, 그러니까 모든 종교는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대표적으로 이슬람과 기독교가 있겠다. 단지 다르게 해석했을 뿐이다?
  • 사실 더 골치아픈 문제로, 결혼을 들 수 있다. 배우자가 같은 종교라면 좋겠지만, 자기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알고보니 전혀 다른 종교일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선 거의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다른 종교의 배우자와 부부생활을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앞으로 나는 배우자를 받아들일 때 꼭 기독교인 사람만 선택해야 하나?
    •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헌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럴 때 가족끼리 서로 자기의 종교를 권한다면 아마 그 집안은...-_-;;;;

혹자는 이런 이상한(?) 질문들을 잔뜩 늘어놓는 나를 보고, '세상 좀 단순하게 살아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머리아프다. 누가 나와서 깔끔 명료하게 내가 이해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믿어라든 믿지 말아라(...)든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결론은 성서공부 열심히 하고 다시 생각하세요? -_-; 혹은 아직까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가지고 고민하지 마세요...인 것도 있을 수 있겠다.

가끔은, 세상을 살면서 생각해야 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요즘 세상이 수많은 정보로 넘쳐나 정신없어 죽겠는데 과학의 발달(?)로 이런 고민까지 떠안고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차라리 내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이딴 거에 관심 없었다면 애초부터 고민하지 않았겠지.) 무엇보다 종교의 특성상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이 절대 가치가 되고 모든 것보다 우선하게 되기 때문에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절대 가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서,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 답답하다. 애초부터 종교는 객관적이 아니니까.. 뭐 이런 식으로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 한도끝도 없어서..;;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 사슬을 끊기 위해 종교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냥 단순하게 '나는 앞으로 하느님을 믿겠다'라고 선택하고 모든 가치와 사고를 그에 따라 재정렬하면 되긴 하다. 심지어 일시적으로는 기독교인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해도 어떻게든지 논리를 돌려서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자기가 순수한 의도를 가지기만 하면 되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가는 제쳐두고.) 그래서 가끔은 무엇이 내가 그 선택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를 고민할 때도 있다. 뭐 이게 흔히 말하는 사탄의 농간이라고 하면 할 말 없고-_-. 다만 나는 어쨌든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최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고 싶고, 또 그렇게 과학과 다른 여러 사상·관점들을 대하고 싶다. 어느 한 종교에 스스로를 예속시키면 언젠가는 충돌이 나게 마련이니까.

2008/08/27 16:31 2008/08/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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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s Faith The Enemy Of Science?

    Tracked from Anything Review Letters 2008/08/27 18:01 Delete

    e-print arXiv를 살펴보고 있으면 이런 류의 글들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주 올라오는 건 아니지만..) 오늘도 새로 나온 preprint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확 띄는 제목의 이런 글이 있어서, 읽어야 할 실제 연구 관련 논문을 제쳐두고 읽어보았다. Richard MacKenzie, " Is Faith The Enemy Of Science?", e-print arXiv:0807.3670 글의 도입부가 상당히 드라마...

  2. religious scientists

    Tracked from Anything Review Letters 2008/08/27 18:01 Delete

    Comment on "Is Faith the Enemy of Science?"의 맨 마지막 결론 부분 인용. 강조 표시는 내가 한 것. 전에 쓴 글에서 소개했듯이 "합의점을 찾으려는" 느낌이고 현실적인 관점(에너지 낭비하지 말자..?)에서 썼다는 느낌이다. But, just for the purposes of discussion, what about doctrinal faith by religious scientists? Even i...

  3. 과학과 종교

    Tracked from ego + ing 2008/09/01 20:04 Delete

    사실 양극화의 원천기술은 과학이다.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세계화도 실은 과학이라는 원천기술에 대한 응용기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과학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과학이 종파와 이념을 초월한 전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이제 과학이라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신앙을 섬긴다. 성직자들은 신앙인이 되었고, 과학자들은 성직자가 되었다.

  4. 영적이라는 것과 종교

    Tracked from ego + ing 2008/09/01 20:04 Delete

    곰곰이영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영적인 것은 신앙인만의 것일까?그렇지 않은 것 같다.인간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삶과 죽음이라는 여정을 걷게 된다.생명이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내포하는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다 쓰지도 못할 돈을 모으려는 것,자식을 낳고, 부모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상속하는 것,유명해지려는 것은 모두짧게 허락된 삶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영적이다.우리 사회에서 종교란영적인 문제를 전담하는 일종의 기관이다....

  5. 공각기동대 - 과학과 종교

    Tracked from ego + ing 2008/09/01 20:09 Delete

    관련글 : 공각기동대 난민과 반도egoing이 전번 글에서 매우 흥분했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에니메이션을 묻는다면 여전히 '공각기동대'이다. 공각기동대는 역사의식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댕강 폄화화하기에는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작품으로써 평가받아야 할 이유도 있는 것이니까. 반도와 난민에 대한 격정은 전번 글로 갈음하는 것이 좋겠다.'자신이 자신인 것은 기억 때문이다.' 오리지널 공각기동대에서 비스듬히 벽에 기댄 소령이...

  6. 컴퓨터, 티벳 그리고 다양성

    Tracked from Forest of the mind: Behind everywhere 2008/09/02 18:15 Delete

    오래간만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서울에 올라간다. 투표 행위를 얼마나 개인적으로 볼 수 있는가는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아주 개인적인 목적이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책임을 다 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새 청와대가 ‘정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을 자세히 읽어 볼 때 마다 숨이 찰 정도로 갑갑해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버스 안에서 컴퓨터를 켰다. 2년전까지 함께 하던 애벌레의 경우에는 막...